[Cover Story] 성공의 역사를 실패의 역사로…심각한 '역사 비틀기'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가는 단지 주어진 사실만을 받아적는 존재가 아니다’고 강변한다. 동일한 역사적 사실(fact)을 놓고 사람마다 시각이 다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들 간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언은 대화하는 주체에 따라 역사의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음을 함의한다. ‘사실은 역사를 구성하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라는 말 또한 동일한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다양할 수 있음을 뜻한다. 역으로 올바른 역사·국사 교육의 중요함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딛고 불과 반세기 만에 민주화와 경제대국을 일군 것은 분명 ‘성공의 역사’지만 일부에서 지나치게 부정적인 사실을 확대·왜곡해 ‘실패의 역사’로 몰아가려는 것은 우려스런 대목이다.

#엇갈리는 건국대통령 평가

흔히 ‘성공한 자가 역사를 쓴다’고 하지만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도, 패자에 의해서도 쓰여진다. 승자의 뒷면은 바로 패자이기 때문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대한민국 건국은 기나긴 민주주의 여정의 출발점이었고, 경제적 번영의 시작점이었다. 항일 독립운동가였던 그는 1948년 건국 직후부터 일제로부터 짓눌린 주권회복에 힘을 쏟았다. 애국과 독립운동에의 헌신은 그의 삶의 궤적을 잘 설명한다. 그가 초석을 놓은 대한민국이라는 뿌리가 건국부터 깊고 단단하지 못했을지라도 큰 나무로 자라는 씨앗을 뿌린 것만은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지금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는 젊은 세대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깊이 기억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부정선거, 독재자, 친미주의자 정도의 인식이 박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무조건 과거를 부정하려는 심리, 왜곡된 학교 교육, 표를 얻기 위한 정치권의 ‘역사 비틀기’ 등이 원인이다. 국가적 행사때에도 초대 대통령의 묘소를 찾지 않는 일부 정치권은 ‘역사 편가르기’의 한 단면이다. 하지만 ‘역사 바로보기’의 시작은 공(功)과 과(過)를 함께 보는 것이다. 공적의 두께와 실수의 부피를 나란히 저울질해야 한다는 의미다. 부정적인 평가에만 기준을 맞춘다면 균형 잡힌 역사인식이 자리잡기 어렵다.

#5·16을 보는 대립적 시각들
5·16 역시 역사적 평가가 극명히 엇갈린다. 민주·복지국가 기틀을 놓고 산업화를 앞당긴 ‘혁명’이라는 시각과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인권을 유린한 ‘쿠데타’라는 견해가 맞선다. 혁명에 비중을 두는 시각은 중화학공업 육성, ‘수출입국’으로 민주주의의 바탕인 ‘먹거리’를 해결했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라는 뿌리가 빠르게 뻗어나간 것은 5·16에 의한 경제적 풍요가 근간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쿠데타’적 시각은 다르다. 5·16으로 무엇보다 소중한 인권이 유린됐다고 강변한다. 정치적 민주화가 늦어지고 언론탄압, 노조활동 제약 등으로 민주주의를 쇠퇴시켰다는 것이다.

미국을 보는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에선 미국의 원조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마중물’ 역할을 했고, 민주주의 발전 속도를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측에선 미국에 지나치게 종속돼 국가라는 주권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안보·외교·무역 등에서 상반된 시각은 수시로 충돌한다. 하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을 보는 관점이 한쪽으로만 매몰되면 역사를 보는 사고가 균형을 잃는다.

#사실을 왜곡하는 지식검색

역사인식의 근간이 되는 ‘사실’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자주 왜곡되는 것도 문제다. 자극적인 허위 정보나 추측성 글이 삽시간에 퍼지고 ‘사실’로 포장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남한에서는 어떠한 형식의 토지개혁도 이뤄지지 않았다’(네이버 지식iN) ‘미국에서는 24개월 미만의 소고기만 먹는 것으로 알고 있다’(다음 지식)…. 스토리K가 대표적 포털 지식검색에 올라온 토지개혁이나 광우병과 관련해 잘못된 답변으로 지적한 대표적 사례들이다. 남한은 해방 후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농지개혁을 단행했고, 미국은 가공식품에 30개월 이상의 소고기를 넣는다는 ‘사실’이 왜곡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상당수 지식왜곡의 배경엔 단순오류가 아닌 의도성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역사·경제·이념에 대한 시각차가 객관적 사실마저 부정하고 왜곡된 진실을 참인 양 포장해 유포하는 것이다. 올바른 역사관은 합리성, 사실적 근거가 바탕이다. 사실이 빠진 지식은 단순한 신념일 뿐 참지식이 아니다. 이런 지식에서 형성된 역사관 역시 참된 역사관이 아니다. 베이컨은 기억, 상상, 추론이 조화를 이룰 때 합리적 사고가 형성된다고 강조했다. 올바른 역사관 확립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구체적 사실을 인식하고, 여기에 시대적 배경 등을 감안해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공한 대한민국을 실패한 대한민국으로 몰아가려는 일부 왜곡된 역사관이 위험한 이유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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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 역사학 입문서 '역사란 무엇인가'

[Cover Story] 성공의 역사를 실패의 역사로…심각한 '역사 비틀기'
영국의 정치학자이자 역사가 에드워드 카(1892~1982)의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는 역사학 입문의 필독서다. 논술을 위한 기초소양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되는 대표적 교양서다. 카는 19세기 역사학계 주류였던 랑케의 실증주의 학풍과 이에 반발한 딜타이, 콜리우드 등의 주관주의 학풍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한 역사학자다.

그의 역사관은 기본적으로 영웅이 역사를 창조하는 선각자라는 영웅사관이 아닌 민중이 새 역사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입장이다. 프랑스혁명은 2500만명의 굶주림과 추위, 억압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역사가가 단지 주어진 사실만을 받아적는 존재라는 주장엔 반대한다. 사실(fact)이라는 것은 역사를 이루는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역사가가 수많은 사실 중에서 어느 한 사건을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주관이 개입된 것이고, 같은 사실에 대해서도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개인과 사회를 전혀 다른 두 개체가 아닌, 유기적 관계를 맺고 상호 작용하는 개체들로 이해한다. 역사와 과학도 유사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둘 다 가설을 설정하고 합리적인 방식과 검토를 통해 그 결과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과학과 역사의 결정적 차이는 도덕성 내포문제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해석은 언제나 도덕적 판단, 그리고 가치판단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에서 진보와 진화의 차이점도 설명하고 있다. 유럽의 아이가 중국에 맡겨져 자란다면 그는 중국 사람이지 유럽 사람이라고 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즉 역사에서 진보는 자연계에 있어 진화와는 달리 습득된 자산을 토대로 한다는 것이다. 카의 역사관은 한마디로 그의 명언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로 요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