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언어로 사고한다

[아는 만큼 쓰는 논술] (7) 언어와 관념
이번 시간의 주제는 말이나 문자로 표현되는 ‘언어’다. 학생들은 흔히 “생각은 있는데 그걸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라고 말하는데, 매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건 생각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언어를 가지고 사고하기 때문이다. 단어는 단지 사물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관념이다. 언어의 한계는 곧 생각의 한계를 의미한다.

정리하자면 인간은 언어를 가지고 생각하고, 또 역으로 주어진 언어는 인간의 생각을 규정하기도 한다. 여러분 앞에 던져진 언어가 어떻게 여러분의 생각을 미리 정하는지 궁금하다면 지금 주위를 둘러보기 바란다. TV를 보든, 인터넷 웹서핑을 하든, 길거리 현수막을 보든, 아무 광고문구라도 읽어보라. “그녀의 몸에 카제인나트륨이 좋을까? 무지방 우유가 좋을까?” 이 문구를 읽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누구나 저 문구를 접하면 카제인나트륨이 뭔가 유해한 화학합성물이 아닌가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카제인이 정제된 우유단백질이라는 사실을 접한다면 우리는 말장난에 속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이것은 사람의 사고 과정에 언어가 일정한 틀을 씌워 시야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 어떻게 출제될까

2012 한양대 수시 (인문 1) : 언어의 프레임
2012 숭실대 수시 (경상계) : 언어적 왜곡
2012 가톨릭대 수시 (공통문항) : 영상언어
2010 동국대 모의 (A형) : 정치언어 광고언어
2008 서강대 수시 2-1 (인문·사회) 3번 문제 : 인간과 언어 사이의 관계

2012학년도 숭실대 기출 제시문을 보자.
[아는 만큼 쓰는 논술] (7) 언어와 관념
<보기>의 왼쪽 칸에 나타난 표현들의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이 거짓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의도에 따라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만 부각시켜 구성되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언어들이다. 즉 ‘언어 그 자체’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다가는 은연 중에 발화자의 의도대로 관념을 형성하기 쉽다. 언어가 가지는 이러한 기능 내지 성격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것을 ‘프레임 이론’이라고 한다. 프레임 이론에 관한 <한양대 2012년 기출> 제시문을 보자.


프레임의 가장 흔한 정의는 창문이나 액자의 틀, 혹은 안경테다. 이 모두 어떤 대상을 보는 것과 관련이 있다. 프레임은 뚜렷한 경계 없이 펼쳐진 대상들 중에서 특정 장면이나 특정 대상을 하나의 독립된 실체로 골라내는 기능을 한다. 광활하게 펼쳐진 풍경 중 어느 곳에 프레임을 맞춰 사진을 찍을 것인가 고민하는 작가가 양쪽 엄지와 검지로 사각 프레임을 만들어 여기저기 갖다 대보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동일한 장면을 대하고도 작가들마다 찍어낸 사진이 다른 것은 그들이 사용한 프레임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식도 이와 같다. 우리는 마음의 창, 곧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하여 프레임은 우리로 하여금 특정한 방향으로 세상을 보도록 이끄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레임은 새롭게 접하는 사태마다 매번 새로운 관점을 마련해야 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존재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프레임은 우리가 보는 세상을 제한하는 검열관 역할도 한다. 마치 건물 어느 곳에 창을 내더라도 그 창만큼의 세상을 보게 되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라 프레임을 통해 채색되고 왜곡된 세상을 우리는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프레임을 형성하는 데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가 언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 하지만 언어 체계가 동일하다 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동일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며 저마다 다른 종류의 담론을 가질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담론이란 동일한 언어 체계를 서로 다르게 사용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예컨대 ‘자유’라는 단어를 놓고 보면 이 단어는 자본가나 노동자에게나 동일한 언어 기호로서 주어지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입장, 곧 프레임에 따라 전자에게는 ‘경영의 자유’를, 후자에게는 ‘노조 활동의 자유’를 의미할 수 있다. 즉 같은 언어도 어떤 담론적 실천을 거치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가 사용된 의도와 맥락에 주목하면 그 프레임이 지니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추론할 수 있다.


▧ 언어는 솔직하지 않다

누군가의 언어적 표현에는 대개 그 누군가의 주관적 의도가 들어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순진한 학생들은 ‘표현 자체’에만 주목하곤 하는데 이 시간 이후로는 화자의 ‘의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람은 항상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추론해서 조각을 맞추어야 올바른 이해가 가능하다. 급훈으로 ‘합격은 성공의 어머니’, ‘10분 더 공부하면 배우자가 바뀐다’, ‘그 등수에 잠이 오냐’ 같은 문구들을 적어 놓은 학교가 있다면 학생들은 그곳에서 어떤 가치들을 배우게 될까. 반면에 ‘더불어 숲’과 같은 급훈을 가진 학교라면 어떨까. <한양대 2012년 기출문제>는 이것을 묻고 있다. 위의 표에서 본 <숭실대 2012 기출문제> 역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사고하면 될 것이다.

1) 주어진 표현을 분석하기
2) 그 표현을 하는 사람의 의도를 추론하기
3) 그 의도를 비판하기, 혹은 그 표현을 비판하기


▧ 언어는 완벽하지 않다

그런데 발화자가 꼭 의도적 내지는 악의적으로 일정한 프레임을 씌우는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해 종합적으로 사고해 객관적으로 표현을 했는데 그것이 단편적 주관적인 언어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발화자를 탓할 문제가 아니다. 언어 자체가 우리의 사고를 표현하는 데 있어 완벽하거나 정밀한 도구가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표현수단으로서 언어는 표현하는 대상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원빈은 잘생겼어’라는 언어적 표현은 실제로 존재하는 ‘원빈’의 정확한 외모와 상태를 그대로 담아낼 수 없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좌우가 대칭을 이루는 인간은 사물을 자신의 형상대로 이분법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인식일 뿐 실재는 이와 다를 수도 있다. 좌우 대칭이 아닌 생물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강대 2008년 기출문제>도 위와 같은 언어와 인식의 한계를 다루고 있다.

대상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실재하는 수많은 정보들이 버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압축과정은 타인과의 의사소통에서 기본적인 의미공유라는 원래의 목적 이외에 자신의 경험과 느낌에 의한 자의적 해석이라는 일종의 의미 왜곡을 초래한다. 이런 측면에서 언어는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효과적인 수단인 동시에 왜곡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수단인 것이다.

▧ 정리하자면…

언어가 솔직하지 않은 이유는, 발화자가 솔직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언어 그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려운 논술문제는 이 두 가지 사항을 섞어 놓기도 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주어진 언어를 분석하면서 ‘의도적 왜곡’인지 ‘불가피한 왜곡’인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 ‘불가피한 왜곡’의 사례라면 당연히 의도를 비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지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1@han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