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의 창조

도면 위의 곡선을 돌과 콘크리트로 일으켜 세우는 순간, 그 곡선을 어떤 직선으로 분할해 쌓을 것인지, 무수한 형태 가운데 어느 것이 스스로 무너지지 않고 견딜 것인지를 헤아려야 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수학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수학] 상상을 실제로 번역…가우디가 보여준 수학의 힘
“직선은 인간의 영역이고, 곡선은 신의 영역이다.”

조개껍데기의 나선, 바람에 깎인 산등성이, 주변에 널린 작은 돌멩이, 가지 끝에 매달린 열매까지 모두 곡선입니다. 곧게 뻗은 듯한 나무도 자세히 보면 미세하게 휘어 있고,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나 지평선마저도 사실은 지구를 따라 굽은 거대한 곡선의 일부일 뿐입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사는 안토니 가우디는 “곡선이야말로 신이 세상을 빚은 언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프로젝트를 휘어지고 솟아오르며 살아 있는 듯한 곡선으로 설계했습니다.

여기엔 묘한 역설이 숨어 있습니다. “곡선은 신의 영역”이라던 가우디가 정작 그 곡선을 가장 정직한 직선으로 빚어냈다는 사실입니다. 휘어진 거푸집도, 곡선을 그리는 특별한 도구도 없이, 그가 손에 쥔 것은 곧게 뻗은 끈과 막대기뿐이었습니다. 인간의 도구인 직선으로 어떻게 신의 곡선을 세울 수 있었을까요. 그 비밀은 두 가지 수학에 있습니다. 하나는 줄을 매달면 저절로 나타나는 곡선이고, 다른 하나는 직선만으로 빚어지는 곡면입니다.

평면 위 스트링 아트의 원리를 그대로 3차원으로 끌어올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가우디는 이 지점에서 신의 곡선을 인간의 직선으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평면 위에서 직선이 곡선을 만들어냈다면 공간에서는 직선이 곡면을 만들어냅니다. 사실 원리는 단순합니다. 곧은 막대 2개를 나란히 세우고 그 사이를 곧은 실 여러 가닥으로 촘촘히 연결해봅시다. 두 막대가 완전히 평행하면 실들이 만들어내는 면은 평평한 평면입니다. 하지만 한쪽 막대를 살짝 비틀거나 기울이면 어떻게 될까요. 그 실들이 모여 만든 면은 부드럽게 휘어진 곡면으로 변합니다.

이렇게 태어난 곡면이 쌍곡포물면(이미지)입니다. 가운데가 말안장처럼 한쪽으로는 내려가고 다른 쪽으로는 올라가는 부드러운 곡면이지요. 감자칩을 떠올려 보면 그 모양이 정확할 겁니다. 분명히 휘어진 면인데, 그 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곧게 뻗은 직선들이 빽빽하게 숨어 있습니다. 어느 방향에서 보면 우아하게 휘어진 신의 곡선처럼 보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곧은 직선들이 가지런히 늘어선 인간의 격자처럼 보입니다. 같은 면이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곡선이 됐다가 직선이 되는 것입니다. 가우디가 “곡선은 신의 영역”이라 말하면서도 그 곡선을 직선으로 빚을 수 있었던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원리는 단순한 수학적 신기함을 넘어 건축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휘어진 곡면을 돌이나 콘크리트로 직접 깎아 세우려면 그 곡면에 꼭 맞는 휘어진 거푸집을 일일이 만들어야 합니다. 비용도 시간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곡면이 곧은 직선들의 집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곧은 나무판이나 곧은 철근을 조금씩 각도만 틀어가며 늘어놓으면 휘어진 거푸집 없이도 거대한 곡면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천장과 기둥 곳곳에 이 쌍곡포물면을 끌어들였습니다. 보는 이의 눈에는 하늘로 솟아오르는 신비로운 곡면이지만 그 뼈대를 이루는 것은 정직하고 단순한 직선들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막대도 실도 내려놓고 줄 하나만 손에 쥐어봅시다. 양쪽 끝을 잡고 가만히 늘어뜨리면 줄은 저절로 부드럽게 처진 곡선을 그립니다. 이렇게 줄이 제 무게만으로 늘어지며 그리는 곡선을 ‘현수선’이라고 합니다. 이 곡선은 사람이 계산해서 그린 것이 아니라 줄을 매단 순간 중력이 알아서 가장 안정된 모양을 찾아준 것입니다.

가우디는 이 늘어진 줄을 위아래로 뒤집었습니다. 아래로 처졌던 곡선이 위로 솟은 아치가 됩니다. 늘어진 줄은 잡아당기는 힘만 받으며 버티는데, 이 모양을 뒤집으면 그 힘이 고스란히 누르는 힘으로 바뀝니다. 돌과 벽돌은 잡아당기는 힘에는 약하지만, 누르는 힘에는 매우 강하기 때문입니다. 늘어진 줄을 뒤집어 만든 아치는 돌로 쌓아도 스스로를 지탱하는 가장 튼튼한 아치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가우디의 발상이 빛을 발합니다. 그는 성당을 똑바로 그려 설계하지 않고 천장에 수많은 줄을 매단 뒤 성당이 짊어질 무게만큼 작은 모래주머니를 걸었습니다. 그러자 줄들은 저마다 가장 안정된 곡선으로 늘어졌습니다. 사람이 계산하지 않아도 매달린 줄들이 알아서 가장 튼튼한 구조를 찾아준 것입니다. 가우디는 이 거꾸로 매달린 모형을 사진으로 찍어 위아래로 뒤집었고 아래로 늘어졌던 줄들은 하늘로 솟는 기둥과 아치가 돼 그대로 설계도가 됐습니다. 중력이 공짜로 풀어준 방정식을 그저 뒤집어 읽어낸 것입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보는 이를 압도하는 장엄한 조형이자, 가우디가 마음속에 떠올린 신의 곡선을 형상으로 옮긴 한 폭의 구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도면 위의 곡선을 돌과 콘크리트로 일으켜 세우는 순간, 그 곡선을 어떤 직선으로 분할해 쌓을 것인지, 무수한 형태 가운데 어느 것이 스스로 무너지지 않고 견딜 것인지를 헤아려야 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수학이었습니다.

정경호 삼육고 수학교사
정경호 삼육고 수학교사
그래서 수학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곡선을 머릿속에 그리더라도, 그것을 현실의 공간에 구현하는 일은 결국 그 형상에 깃든 질서를 읽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수학은 상상을 실제로 번역하는 언어이며, 그 언어를 익힌 사람만이 자신이 품은 형상을 하늘로 솟는 곡선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