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포퓰리스트’ 차베스가 남긴 교훈들
“샤워 중 노래를 부르지 마라. 샤워는 3분 만에 끝내라.” “악마가 어제 여기 왔었다. 아직도 유황 냄새가 진동한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자체로부터는 극복될 수 없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

14년간 베네수엘라를 이끌며 남미 좌파 블록 형성의 선봉에 섰던 우고 차베스 대통령. 60세를 못 넘기고 지난 5일 암으로 사망한 차베스는 독단적 통치스타일과 독설·기행으로 집권기간 내내 화제에 오른 인물이다. 세계 2위 원유 매장국인 베네수엘라가 그의 통치 기간 줄곧 전기와 물 부족에 시달린 것도 아이러니지만 ‘수돗물 절약을 위해 샤워 중 노래를 부르지 말라’는 발상 역시 독특하다. 2006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을 악마에 비유하며 ‘유황 냄새가 풍긴다’고 일갈하고, 2009년 유엔총회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사회주의 편에 와서 ‘악의 축’에 합류하라”고 희롱하는 등 그의 튀는 언행은 수없이 뉴스를 탔다.

철저한 반미주의자로, 세계 석유자원 맹주를 노린 차베스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가난한 민중’은 그에게 비교적 후한 점수를 준다. 절대 빈곤층이 줄어 든 것은 대다수가 인정하는 그의 공(功)이다. 빈곤율과 극빈곤 가구는 그의 재임 기간 중 상당히 줄었다. 문맹률 역시 낮아졌고,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8년 0.49에서 2011년 0.39로 하락했다. 지니계수가 낮아진 것은 소득불평등 정도가 그만큼 완화됐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선 그가 주창한 사회주의가 나름 실현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분배에만 초점을 맞춘 베네수엘라 경제는 곳곳에서 근간이 허물어지고 있다. 만성화된 전력난은 베네수엘라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베네수엘라 경제의 근간인 석유산업 국유화로 경쟁력과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 것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외세배척’이라는 정치적 슬로건을 앞세워 자본주의라는 외부와 장벽을 친 결과 국가 영속성을 좌우하는 펀더멘털이 취약해졌다는 것이다. 세계은행은 올해 베네수엘라 경제가 1.8% 성장에 그치고 내년에는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가지도자가 파이는 키우지 않고 ‘나눠먹기’로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에 편승한 결과 평등이라는 외형적 지표는 호전됐지만 속병은 깊어지고 있는 셈이다. 고질화된 ‘영국병’을 인기 편승보다 근본적 개혁으로 돌파한 ‘대처리즘’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차베스 죽음은 권력의 무상함을 새삼 일깨워준다. 더불어 지도자의 인기가 반드시 국가를 이끄는 능력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 글로벌 시대에 장벽을 높이면 스스로의 경쟁력은 그만큼 낮아진다는 사실, 공존의 시대에 지나친 이념매몰은 고립만을 자초한다는 점, 자원이 결코 부국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은 석유맹주를 노린 포퓰리스트 차베스가 남긴 몇가지 교훈들이다. 4, 5면에서 베네수엘라 경제상황과 ‘자원의 저주’ 등을 상세히 알아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