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해이는 많이 벌어진다. 자기 권리와 이익은 칼같이 챙기지만 책임은 나몰라라 하는 세태 탓이다. 남이 볼 때와 안 볼 때 행동이 달라지는 것도 이 범주에 속한다. 경제학적으로는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아는 만큼 상대방이 나에 대해 모를 때(정보의 비대칭) 나는 도덕적 해이의 유혹을 받기 쉽다. 도덕과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자기책임 의식이 탄탄할수록 이런 도덕적 해이가 줄어든다는 점은 곱씹어볼 만하다.
#낡은 차가 거칠다
도덕적 해이는 보험회사들이 가장 고민해온 현상이다. 생명보험에 가입했다고 건강에 신경을 안 쓰고, 화재보험에 들었다고 화재 예방을 소홀히 하면 문제다. 자동차 보험도 마찬가지다. 한 자동차보험의 광고문구는 ‘(보험에 들었으니) 이제 안심하고 운전하세요’이다. 사고가 나도 다 보상해주니 걱정말라는 이야기다. 보험에 든 계약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 광고는 ‘보험에 들었으니 안전에 덜 신경쓰고 운전해도 된다’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이 광고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
낡은 차를 모는 운전자들도 도덕적 해이에 노출된다. 이들은 낡은 차이기 때문에 운전을 대체로 거칠게 하는 경향이 있다. 운전 중 서슴없이 끼어들고 차선을 바꾼다. 뒷차나 옆차가 받아주면 고맙다는 식이다. 사고가 나면 낡은 범퍼와 문짝을 새 것으로 갈아보겠다는 심보다. 학력을 불문하고 예비군복을 입혀 놓으면 껄렁껄렁하게 행동하는 남자들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이런 사례도 있다. 미국에서 유학을 거의 끝내고 귀국하기 직전 중국 유학생은 그동안 몰던 낡은 중고차로 다른 중국 학생 차를 고의로 들이받아 사고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가해자인 자신은 보험에 든 데다 곧 귀국하니 손해볼 게 없다. 반면 피해자인 다른 중국 학생은 차값보다 더 많은 보상금을 받아 모자라는 유학비에 보태는 식이다.
#주인과 대리인 관계에서 발생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서도 도덕적 해이는 목격된다. 기업의 고용주는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지를 일일이 감시할 수 없다. 직원들은 언제나 적당히 ‘농땡이’ 부릴 마음을 갖기 쉽다. 근무시간에 인터넷으로 주식시세를 들여다 보기도 하고 친구와 채팅을 하기도 한다. 대충 시간만 때우다 월급을 타가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이것이 바로 도덕적 해이 사례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인(고용주)과 대리인(직원)의 이해상충 문제다. 앞서 얘기한 보험회사와 보험가입자의 문제도 이에 해당한다. 보험회사는 가입자들이 얼마나 자신의 건강관리와 화재 예방에 신경쓰는지 모른다.
의료분야에서도 사례는 적잖게 나타난다. 고가 의료장비를 들여놓은 병원에 가면 대개 환자들에게 MRI 등 비싼 검사를 권한다. 자연분만이 가능한데도 제왕절개를 권하는 곳도 많다. 치과에서도 과잉수술을 한다. 자기 건강에 대한 정보가 의사나 병원보다 부족한 환자들로선 쉽게 거부하지 못한다. 결국 비싼 진료를 받은 환자들은 의사나 병원에 대해 법적으론 문제 삼기 어렵다. 하지만 의사 등은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않을 것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있다. 부모는 공부하라며 문을 닫아주고 TV도 끄지만, 정작 자녀는 공부를 안 하고 게임만 한다. 자녀의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
#예금자 돈 사금고화
요즘엔 도덕적 해이가 일상화됐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잇따라 문을 닫은 저축은행의 주인들은 예금자의 돈을 개인적으로 펑펑 쓰거나 사업성이 불투명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대출해줘 고객돈을 날렸다. 저축은행 건전성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예금자들은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진 뒤에야 부실정도를 알게 됐고 예금한 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했다. 일부 고위인사는 이 같은 정보를 알고 먼저 자기 예금을 전부 찾아가는 사태도 발생했다. 예금자 입장에서 보면 저축은행 주인과 일부 인사들의 행위는 최악의 도덕적 해이에 다름 아니다.
몇 년 전 발생한 구제역(발굽이 있는 동물에게 발생하는 전염병) 사건 때에도 축산농가의 도덕적 해이가 입방아에 올랐다. 구제역 예방에 최선을 다해야 할 축산농가 중 일부가 구제역이 발생한 외국을 방문하고서도 제대로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피해가 발생하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발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기초연금, 전관예우
최근엔 노인기초연금이 문제가 됐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매달 20만원씩 지급하기로 했으나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때문에 제동이 걸렸다. 노인이 돼서 매달 20만원을 받으려면 국민연금의 경우 매달 19만원 정도를 10년간 부어야 한다. 반면 기초연금은 내는 것 없이 그냥 받는다. 누가 국민연금을 붓겠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꼴이다.
전관예우도 빼놓을 수 없다. 판사나 검사, 정부 고위직을 지낸 사람들이 퇴직 후 거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로비스트나 해결사 역할을 하는 경우다. 능력에 따라 연봉이 달라지는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퇴직 후 바로 퇴직 전 공무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것은 그렇다는 것이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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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MBA, 금융위기 이후 도덕적 해이 책임론
2008년 미국 경제를 뒤흔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 내에서도 도덕적 해이 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됐다. 특히 미국 금융 및 산업계에서 큰 인맥을 차지하고 있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MBA(경영학석사) 출신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위기의 주범이 하버드 출신들이라는 비판은 과장이 아니다. 파산 위기에 처해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인수된 뒤에도 자기 사무실을 꾸미는 데 130만달러나 들인 존 테인 전 메릴린치 CEO와 부실 경영의 책임을 지고 제너럴모터스(GM)에서 쫓겨난 릭 왜고너 전 GM CEO 등이 바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출신이다.
하버드에 대한 비판은 MBA 과정에도 쏠렸다. 하버드가 단기적인 고수익과 기계적인 자산분석 기법에 지나치게 치중한다는 비판이다. 또 엘리트주의에 따른 과도한 자신감을 키웠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MBA 학위는 내게 ‘주홍글씨’와도 같은 부끄러움이 돼 버렸다.” 2006년 하버드 MBA를 딴 한 동문은 영국 일간지 선데이타임스에 이렇게 썼다. 하버드대는 이런 여론을 반영해 MBA 과정에 사회적 책임과 위험관리를 가르치는 새로운 커리큘럼을 선보이기도 했다.
인디애나주 노트르담대의 캐롤린 우 경영대학장은 최근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금융위기는 높은 인센티브만을 추구하며 금융권에 대한 규제 감독을 소홀히 한 데 따른 것”이라며 “비즈니스 교육계의 전반적인 재점검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고 밝혔다.
#낡은 차가 거칠다
도덕적 해이는 보험회사들이 가장 고민해온 현상이다. 생명보험에 가입했다고 건강에 신경을 안 쓰고, 화재보험에 들었다고 화재 예방을 소홀히 하면 문제다. 자동차 보험도 마찬가지다. 한 자동차보험의 광고문구는 ‘(보험에 들었으니) 이제 안심하고 운전하세요’이다. 사고가 나도 다 보상해주니 걱정말라는 이야기다. 보험에 든 계약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 광고는 ‘보험에 들었으니 안전에 덜 신경쓰고 운전해도 된다’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이 광고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
낡은 차를 모는 운전자들도 도덕적 해이에 노출된다. 이들은 낡은 차이기 때문에 운전을 대체로 거칠게 하는 경향이 있다. 운전 중 서슴없이 끼어들고 차선을 바꾼다. 뒷차나 옆차가 받아주면 고맙다는 식이다. 사고가 나면 낡은 범퍼와 문짝을 새 것으로 갈아보겠다는 심보다. 학력을 불문하고 예비군복을 입혀 놓으면 껄렁껄렁하게 행동하는 남자들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이런 사례도 있다. 미국에서 유학을 거의 끝내고 귀국하기 직전 중국 유학생은 그동안 몰던 낡은 중고차로 다른 중국 학생 차를 고의로 들이받아 사고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가해자인 자신은 보험에 든 데다 곧 귀국하니 손해볼 게 없다. 반면 피해자인 다른 중국 학생은 차값보다 더 많은 보상금을 받아 모자라는 유학비에 보태는 식이다.
#주인과 대리인 관계에서 발생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서도 도덕적 해이는 목격된다. 기업의 고용주는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지를 일일이 감시할 수 없다. 직원들은 언제나 적당히 ‘농땡이’ 부릴 마음을 갖기 쉽다. 근무시간에 인터넷으로 주식시세를 들여다 보기도 하고 친구와 채팅을 하기도 한다. 대충 시간만 때우다 월급을 타가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이것이 바로 도덕적 해이 사례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인(고용주)과 대리인(직원)의 이해상충 문제다. 앞서 얘기한 보험회사와 보험가입자의 문제도 이에 해당한다. 보험회사는 가입자들이 얼마나 자신의 건강관리와 화재 예방에 신경쓰는지 모른다.
의료분야에서도 사례는 적잖게 나타난다. 고가 의료장비를 들여놓은 병원에 가면 대개 환자들에게 MRI 등 비싼 검사를 권한다. 자연분만이 가능한데도 제왕절개를 권하는 곳도 많다. 치과에서도 과잉수술을 한다. 자기 건강에 대한 정보가 의사나 병원보다 부족한 환자들로선 쉽게 거부하지 못한다. 결국 비싼 진료를 받은 환자들은 의사나 병원에 대해 법적으론 문제 삼기 어렵다. 하지만 의사 등은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않을 것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있다. 부모는 공부하라며 문을 닫아주고 TV도 끄지만, 정작 자녀는 공부를 안 하고 게임만 한다. 자녀의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
#예금자 돈 사금고화
요즘엔 도덕적 해이가 일상화됐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잇따라 문을 닫은 저축은행의 주인들은 예금자의 돈을 개인적으로 펑펑 쓰거나 사업성이 불투명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대출해줘 고객돈을 날렸다. 저축은행 건전성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예금자들은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진 뒤에야 부실정도를 알게 됐고 예금한 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했다. 일부 고위인사는 이 같은 정보를 알고 먼저 자기 예금을 전부 찾아가는 사태도 발생했다. 예금자 입장에서 보면 저축은행 주인과 일부 인사들의 행위는 최악의 도덕적 해이에 다름 아니다.
몇 년 전 발생한 구제역(발굽이 있는 동물에게 발생하는 전염병) 사건 때에도 축산농가의 도덕적 해이가 입방아에 올랐다. 구제역 예방에 최선을 다해야 할 축산농가 중 일부가 구제역이 발생한 외국을 방문하고서도 제대로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피해가 발생하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발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기초연금, 전관예우
최근엔 노인기초연금이 문제가 됐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매달 20만원씩 지급하기로 했으나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때문에 제동이 걸렸다. 노인이 돼서 매달 20만원을 받으려면 국민연금의 경우 매달 19만원 정도를 10년간 부어야 한다. 반면 기초연금은 내는 것 없이 그냥 받는다. 누가 국민연금을 붓겠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꼴이다.
전관예우도 빼놓을 수 없다. 판사나 검사, 정부 고위직을 지낸 사람들이 퇴직 후 거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로비스트나 해결사 역할을 하는 경우다. 능력에 따라 연봉이 달라지는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퇴직 후 바로 퇴직 전 공무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것은 그렇다는 것이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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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MBA, 금융위기 이후 도덕적 해이 책임론
2008년 미국 경제를 뒤흔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 내에서도 도덕적 해이 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됐다. 특히 미국 금융 및 산업계에서 큰 인맥을 차지하고 있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MBA(경영학석사) 출신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위기의 주범이 하버드 출신들이라는 비판은 과장이 아니다. 파산 위기에 처해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인수된 뒤에도 자기 사무실을 꾸미는 데 130만달러나 들인 존 테인 전 메릴린치 CEO와 부실 경영의 책임을 지고 제너럴모터스(GM)에서 쫓겨난 릭 왜고너 전 GM CEO 등이 바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출신이다.
하버드에 대한 비판은 MBA 과정에도 쏠렸다. 하버드가 단기적인 고수익과 기계적인 자산분석 기법에 지나치게 치중한다는 비판이다. 또 엘리트주의에 따른 과도한 자신감을 키웠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MBA 학위는 내게 ‘주홍글씨’와도 같은 부끄러움이 돼 버렸다.” 2006년 하버드 MBA를 딴 한 동문은 영국 일간지 선데이타임스에 이렇게 썼다. 하버드대는 이런 여론을 반영해 MBA 과정에 사회적 책임과 위험관리를 가르치는 새로운 커리큘럼을 선보이기도 했다.
인디애나주 노트르담대의 캐롤린 우 경영대학장은 최근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금융위기는 높은 인센티브만을 추구하며 금융권에 대한 규제 감독을 소홀히 한 데 따른 것”이라며 “비즈니스 교육계의 전반적인 재점검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