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나만 잘되면 되지?…이기심이 도덕적 해이 '뿌리'
도덕적 해이를 의미하는 모럴 해저드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제도적 허점의 합작품이다. 인간은 속성상 공익보다는 사익에 민감하기 때문에 제도점 허점이 보일 때마다 이를 악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선진사회일수록 모럴 해저드가 싹틀 여지를 제도적으로 차단한다. 법과 제도가 합리적일수록 모럴 해저드의 여지는 줄어든다. 지나치게 느슨해도, 지나치게 억압적이어도 도덕적 해이가 극성을 부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회 전반의 도덕심이 높아지고 교양시민이 늘어나면 모럴 해저드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진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모럴 해저드의 천적이다.

#모럴 해저드 부르는 정보 비대칭


경제학적으로 모럴 해저드는 주로 정보의 비대칭이 야기한다. 정보 비대칭은 계약 당사자 중 어느 한쪽의 숨겨진 정보로 인해 다른 쪽 계약자가 추가적 비용을 부담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자신의 병력을 숨기고 보험에 가입하면 보험사의 손실이 커지고, 이런 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전반적인 보험료를 인상하면 다른 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모럴 해저드의 개념을 정립한 케네스 애로 교수는 정보가 비대칭인 상황에서 주인(principal)을 위해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는 대리인(agent)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모럴 해저드란 용어를 사용했다.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한 모럴 해저드는 보험시장이나 중고시장에서 흔히 나타난다.

모럴 해저드는 정보의 비대칭에 흔들리는 양심이 결합해 만든 결과물이다. 도덕적 해이의 근인(根因)은 인간의 이기심이다. 법적 허점이나 상대방의 약점, 정보의 비대칭 등을 이용하거나 악용해 가능한 한 사익을 추구하려는 본성이 모럴 해저드를 부추기는 것이다. 연금을 타려고 호적 나이를 고치거나 사망신고조차 미루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는 우리 사회에 복지 모럴 해저드가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양심이 무너지는 사회

모럴 해저드의 극성은 한마디로 사회의 양심이 무너진다는 얘기다. 신용불량자 채무 탕감, 재무구조가 악화된 기업들의 무분별한 법정관리 신청, 저축은행 사태, 스포츠 승부조작, 연금 목적의 호적 고치기, 의료보험금을 더 타내기 위한 의사의 과잉 진료 등은 우리 사회의 ‘도덕지수’가 그리 높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모럴 해저드는 맹자의 성선설보다 순자의 성악설이 더 적용되는 대목이다. 공동체나 이웃을 배려하기보다 내 잇속부터 먼저 챙기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 강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모럴 해저드다.

도덕적 수준은 선진국의 진정한 지표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 도덕 수준이 높아진다는 분석도 있지만 교육을 통해 ‘공동의 선’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도자는 ‘도덕경’에서 도(道)를 만물의 근원에 존재하는 보편적 원리라고 강조한다. 도를 체득함으로써 겸손 양심 질박 무욕의 정신이 몸에 익혀진다는 것이다. 노자가 강조한, 다소 거창하게 들리는 도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 양심이 살아나야 모럴 해저드의 기세가 꺾인다. 양심은 교육을 통해, 시스템을 통해 어는 정도 컨트롤이 가능하다.

#도덕적 해이 막는 법과 제도

모럴 해저드의 개념을 정립한 애로 교수는 도덕적 해이의 예방을 노자가 강조한 도덕보다 순자적 관점에서 찾으려 했다. 모든 사람의 양심에만 맡기기보다 인간의 속성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차단해 공동의 선을 추구할 수 있도록 제도(시스템)를 정립하면 도덕적 해이를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스템이 배제된 상황에서 도덕만을 강조하면 위험한 사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선진사회는 사회질서를 결코 도덕에만 호소하지 않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도덕적으로 나태해질 여지를 줄인다는 뜻이다. 법과 제도를 치밀하게 운용하면서 도덕은 단지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시스템은 무엇일까. 은행에서 운용되는 ‘순번 대기표’가 한 사례다. 대기표가 생기면서 은행에서 새치기하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청원 경찰도 줄어들었다. 합리적인 시스템은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개인적 욕심을 채우려는 ‘도덕적 나태’를 상당히 막아준다.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법이나 제도가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지나치게 억압된 규제는 오히려 모럴 해저드를 부추긴다. 제도가 잘 정비된 선진국보다 독재국가에서 도덕적 해이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것은 흔히 목격되는 사례다.

정보가 잘 소통되면 모럴 해저드의 공간이 좁아진다. 도덕적 해이의 상당 부분은 정보의 비대칭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역선택’도 정보의 불균형이 원인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처럼 사회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회복은 ‘양심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모럴 해저드가 발생하는 이유를 인간의 본성과 제도적 측면으로 구분해 설명해보자. 도덕적 해이를 막으려면 교육과 제도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를 논리적으로 토론해보자.

--------------------------------------------------------------------------------

'노블레스 오블리주'… 세금 먼저 바치고 전쟁터 달려가고

[Cover Story] 나만 잘되면 되지?…이기심이 도덕적 해이 '뿌리'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사회의 지도층이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를 일컫는다. 초기 로마의 왕과 귀족들은 도덕적 책무에서 평민들보다 솔선수범했다. 세금을 평민보다 앞서 받쳤고, 전쟁 때에는 기꺼이 싸움터로 달려갔다. 특히 포에니전쟁 때에는 전쟁세를 신설, 재산이 많은 원로원들이 많은 비용을 부담했다. 기부를 먼저하기 위해 수레에 돈을 싣고 국고에 갖다 받쳤고, 이를 지켜본 평민들도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했다.

전쟁이 발발하면 지도층은 평민들보다 먼저 전쟁터로 달려갔다.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전쟁을 벌일 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는 전쟁에 참가했고, 2008년엔 해리 왕자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합동최종공격통제관’으로 근무했다.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중세와 근대사회에서도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의 표본이 됐다. 조선시대 ‘최부자집’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 사례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재산은 만 석 이상 모으지 마라’ ‘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등의 가훈은 이른바 가진 자의 철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로마제국시대 특수한 신분질서로 파트로네스와 클리엔테스가 있다. 파트로네스는 지방의 유력자, 후원자, 보호자로 당시 유력한 귀족을 나타내는 말이며 클리엔테스는 파트로네스의 보호와 후원을 받는 대신 그를 지지하는 평민세력을 일컫는다. 당시 파트로네스는 클리엔테스를 도와줄 의무가 있었으며 클리엔테스는 자신의 파트로네스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조차 아까워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