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난수표 같은 경제전선을 뚫고…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반세기…국내외 경제환경 더욱 어렵지만 이제 더불어사는 세상 만들 때”

[오피니언] 난수표 같은 경제전선을 뚫고… 등
새해 새 아침이다.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라고 일찍이 박두진 시인이 노래한 ‘해’를 우렁차게 합창하고 싶은 아침이다. 우리들도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푸른 희망과 약속, 다짐의 날개를 펼치는 시간이다.

누구도 승리를 예측할 수 없었던 살얼음판의 치열한 대선에서 국민은 51 대 48의 절묘한 대비로 승자와 패자를 가름했다. 이제 새롭게 출발하는 박근혜 정부에 눈과 귀가 쏠리는 것은 여야가 다투어 공약한 시급한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갈까 하는 것이다.

그 가장 큰 화두는 경제민주화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보릿고개를 넘겼던 반세기 저쪽에서 “잘 살아보세” 구호를 외치며 우리는 너 나 없이 땀흘리며 일했고 억척스럽게 딛고 일어서서 오늘의 세계열강과 어깨를 겨루게 됐다. 그러나 고속성장의 그늘 속에서 경제력의 양극화가 팽창되고 최근 몇 해에 이르러서는 중산층의 붕괴라는 심각한 사회 현상에 직면하게 됐다.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나라 밖의 여러 환경과 안으로는 정치논리에 함몰돼 경제 정의의 실천에는 손을 놓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좀 더 일찍 서둘렀더라면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가 아닌 트랙터쯤 빌려야 할 것 같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조항이 헌법 제119조 2항에 명시됐음에도, 24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선거의 쟁점으로 부각되고 국민적 관심사가 된 까닭도 자유경제 체제라 할지라도 시장원리에만 맡겨서는 더불어 잘 사는 공동체의 균형발전을 이루기 어렵기 때문이라 해석된다.

성장이냐 분배냐를 놓고도 빵을 더 키워야 나눌 수 있다는 쪽과 키움과 나눔을 함께 가자는 논리도 팽팽하게 맞서왔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불거진 무상 급식과 반값 등록금 문제에 대해서도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던 여당이 이번 대선에선 한 발 물러섰다. 노인대책, 청년실업, 의료비 부담 등 쓸 곳은 많은데 거둘 곳은 어딘지 솔로몬의 지혜가 있어야겠다.

“첫 숟가락에 배부르랴”라고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도 했다. 한국을 일구어 낸 주인은 정치가도 기업인도 아닌 국민이었다. 그러나 한편 대기업은 한국 경제를 싣고 달리는 기관차이다. 세계경제가 비틀거리고 있는 틈새에서도 오히려 거슬러 올라 국가 등급을 상승시키며 국력을 키워냈다. 그래서 국민은 어려움 속에서도 대기업이 한 층 더 높은 마력으로 질주해 줄 것을 바란다. 그러자면 어른답게 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데도 힘을 쏟고 골목시장 상권도 신장해주는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흉년이 들면 시골 부자들도 곳간을 풀어 마을에서 굴뚝연기가 오르지 않는 집이 없게 했다. 거세게 몰아닥칠 세계경제 한파와 싸워 이기기 위해 신발 끈을 졸라매는 일의 하나가 먼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고 따르게 하는 기업정신의 실천이다.

북한은 장거리 로켓발사의 성공에 이은 핵실험을 위협하고 동해와 남해에서는 독도와 센카쿠열도를 에워싸고 한일, 중일 간의 파고가 동북아의 긴장을 몰아오고 있다. 너와 내가 없이 하나가 돼서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야 할 때인데 남북이 갈라진 것도 모자라 동서로 나뉘고 이제는 20-40과 50-60이 편을 가르는 지경에 이른다면 우리가 바라는 바를 어찌 이루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인류 앞에 언제나 불가능한 것을 가능으로 바꾸어 온 저력이 있다. 저 어둡던 시대에서 민주화의 횃불을 들어 올려 새벽을 열었고 올림픽, 월드컵의 성공에 이어 문화 한류가 오대양 육대주로 번져나가고 있다. 그리고 경제와 문화는 새의 두 날개처럼 함께 펼쳐야 날아오를 수 있다.

올해는 난수표 같은 경제 민주화의 화두가 슬기롭게 풀려 나라와 국민의 삶이 나아지고 복지문화가 꽃피는, 그래서 더불어 행복한 그런 날이 되기를 아침 해에 띄운다. ☞ 한국경제신문 1월1일자 A35면


이근배 <시인 lkb4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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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칼럼] 당선인, '공약준수'만이 능사 아니다

장밋빛 약속 추진땐 부작용 속출…중산층 늘리는 정책에 집중해야
집단이기주의 넘어선 대타협 필요


[오피니언] 난수표 같은 경제전선을 뚫고… 등
2013년 계사년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여망과 꿈을 안고 새 정부가 들어서는 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처럼 ‘모든 국민이 먹고 사는 것 걱정하지 않고 청년들은 즐겁게 출근하는 100% 행복한 나라’ ‘70% 국민이 중산층인 나라’에 대한 희망과 꿈을 안고 출발한다.

국민의 행복은 모든 민주국가 지도자들의 꿈이요 이상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국민이 행복하다고 하는 나라는 드문 게 현실이다. 국민을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에 대한 진단이 제각각이고, 진단을 올바르게 한 경우에도 처방이 틀리거나 효과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설상가상으로 이해당사자 그룹 간 집단이기주의 대립까지 가세하면 올바른 대책 추진은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이해당사자 그룹은 여야 정당, 사용자단체, 노동조합, 직능단체, 시민단체 등 다양하다. 이런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이해하고 타협하지 않는 한 문제해결은 어렵다. 1990년대 위기 때 스웨덴 독일이 노·사·정·여·야 대타협으로 위기의 고비를 넘긴 것이 빛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학자들도 사상과 이념의 포로가 돼 진단과 처방을 잘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정 정당 편에 선 폴리페서들의 주장이 때때로 객관성을 잃어 위험해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가지되 진단과 처방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해야 한다는 알프레드 마셜의 ‘따뜻한 가슴과 차가운 머리’ 권고를 다시금 되새겨볼 때다.

정치인들은 집권을 위해 온갖 장밋빛 구호를 외친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구호들이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 문제다. 결코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1990년대 중반 우루과이라운드 논쟁이 한창일 때 한국의 어느 대통령은 “농업을 보호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양보해도 좋다”는 주장을 폈다. 약자와 고향을 보호하고 식량안보도 지키고자 하는 얼마나 아름다운 주장인가.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농업에 280여 종의 보조금과 쌀 의무수입 등 연평균 10조~2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오늘날 농업은 보조금 없이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보호 없이는 생존도 어려운 실정이다. 농업보호 대가로 금융시장은 완전히 개방돼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는 선거 때 주장된 많은 공약들이 거침없이 추진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하다. 선거 때 마련된 공약들이 제대로 된 공청회나 세미나 등 검토를 거치고 결정된 것이 얼마나 되는가. 공약준수는 대국민 신뢰문제이기 때문에 추진하도록 노력하면서 한편으로는 현실여건, 파급영향, 재정 지속 가능성, 실효성 등을 하나하나 면밀히 따져서 우선순위를 정해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 경제는 지금 벼랑 끝에서 마지막 희망의 끈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1992년 76%까지 올라갔던 중산층 비율이 2008년에는 66%까지 추락했다. 2009년 이후 다소 반등하긴 했지만 2011년 현재 68%에 머물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서민생활 사정이 이번 대선에서 좌파정권을 향한 표가 48%나 됐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1992년 이후 중산층이 붕괴된 데는 1963~91년의 연평균 9.5%의 고성장기를 마감하고 1992~2011년의 연평균 5.2% 중성장기로 주저앉아 그만큼 좋은 일자리가 줄어든 점이 근본적인 이유다. 문제는 최근 들어 성장률이 2011년 3.6%, 2012년 2% 내외 추정, 2013년 2% 후반 전망 등 3년 연속 2~3%대를 지속하고 있는 점이다. 유럽 재정위기 등 대외악재가 큰 요인이지만 대내적으로도 부채디플레이션 심화 등 한국 경제가 저성장기에 진입하고 있지는 않은지 면밀한 검토와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해 새 정부에서 성장률을 회복시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지 못하면 중산층 비율은 다시 낮아지고 좌파지지 기반이 확산되면서 한국 경제는 성장률 하락, 중산층 추락, 경제사회 혼란 가중의 악순환에 빠져들 가능성이 커진다. 더 이상 중산층이 붕괴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새 정부 5년은 사실상 한국 경제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 한국경제신문 1월2일자 A38면

오정근 <고려대 교수·경제학, 아시아금융학회장 ojunggun@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