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공약은 무담보, 찍은 표는 환불 없다 - 한국경제신문 12월3일자 A38면

대책없는 반값등록금·원전폐기 등…사탕발림 공약 유권자가 가려내야

[오피니언] 공약은 무담보, 찍은 표는 환불 없다 등
박빙 대선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약좌판은 넘쳐나고 호객행위도 요란하다. 무상복지, 반값 등록금, 두 배 기초노령연금을 띄운 플래카드가 사방에 걸렸지만 돈 나올 구석은 깜깜하다. 공약이 약속대로 이행되는 비극이 닥치면 국가재정 파탄에 앞서 대학부터 거덜나게 됐다.

대학재정 대부분을 국가가 책임지는 독일, 프랑스와는 달리 한국은 등록금과 기부금으로 겨우 꾸려가는 사립대학이 많다. 사립대학 등록금을 절반으로 깎아 정부예산으로 메워주기란 재정여건상 불가능하다. 설령 세금을 대폭 올려 재원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전기가 끊겨 촛불 켜고 자다 화재로 일가족이 참변을 당하고 밀린 집세에 짓눌려 동반자살로 마감하는 비극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상위계층 대학생에게까지 등록금 절반씩을 안겨주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의 대학재정은 지금보다 열악했고 장학금도 훨씬 적었다. 당시 필자는 학과장을 맡고 있었는데 재학생 1500명 학과에 성적장학생 10명이 배정되는 형편이었다. 성적순으로 수혜자가 결정되기 때문에 형편이 다급한 학생을 위해 성적우수자 중에서 양보를 받아내야 했다.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학부모 직업에 대한 기록은 없었고 생활수준 자기평가에 ‘하’로 표시한 학생 이외에는 일일이 불러 양보를 종용했다. 부친이 공기업 임원임을 밝힌 학생이 먼저 양보했다. 그 학생은 지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다.

시골 출신 학생이 부모님 허락을 받겠다며 말미를 달라고 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그 학생이 연구실로 뛰어와 부모님이 허락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한참 세월이 흐른 후 그 학생 늦장가에 주례를 맡았는데 예식장에서 부친을 처음 대면하고 깜짝 놀랐다. 부친은 경상남도에서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류승휴 선생이었는데, 장학금 양보 당시에는 대학생 세 자녀를 둔 평교사였다. 주례사에서 필자는 아름답지만 어려웠을 귀한 양보에 대한 깊은 감사를 전했다. 류 교장댁 막내는 지금 모건스탠리은행 상무다.

대학 등록금은 1990년부터 해마다 대폭 인상됐다. 학생회가 정치 이슈 대신 등록금 투쟁으로 돌아서자 정부는 자율결정을 핑계로 슬쩍 빠졌다. 대학은 장학금 확충을 내걸고 학생회 간부에게 특별장학금을 떠안기는 수법으로 인상행진을 이끌었다. 학생회 간부는 학사경고를 받아도 장학생이 되는 묘한 관행이 정착됐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첫 해부터 대학을 눌러 등록금을 동결시켰다. 대학은 재원부족으로 죽을 맛인데 여야 대선후보는 반값 등록금을 합창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소득과 상관없이 모든 대학생에게 균일한 반값을 약속했고 새누리당은 소득수준에 따라 전액 또는 반액을 지원하지만 상위계층에는 혜택이 없는 차등적용을 내세웠다. 반값 영향으로 대학진학률은 더 높아지고 교육은 부실해질 것인데 졸업생은 어떻게 일자리를 잡을지 걱정이다.

덜 다급한 계층은 어렵더라도 조금 양보하고 취약계층 장학금은 확충해야 한다. 교육을 위한 기부금 모금에 세제지원과 함께 사회적 열정을 집결시켜야 한다. 장학생의 최저 성적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해 대졸 학력이 살아가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될 위험을 막아야 한다. 저소득층에 대한 무조건 장학금이나 무분별한 무상복지가 자립의지를 약화시켜 ‘노력하는 보람’을 앗아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

명분만 그럴싸한 공약이 초래할 재앙도 걱정이다. 비리와 사고 속출로 인한 국민적 공분과 불안에 편승해 원자력발전사업을 폐기하고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공약까지 등장했다. 원전보다 생산원가가 적어도 두 배, 많게는 열 배 이상인 신재생에너지 전력체계가 초래할 요금폭탄을 서민이 감당하긴 어렵다. 비싼 전기료가 우리 제품 생산원가를 끌어올려 경쟁력을 잃은 기업의 연쇄 도산과 대량 해고가 속출할 것이 뻔하다.

대선공약은 선거가 끝나면 책임을 물을 담보장치가 없다. 표를 찍고 나면 되돌릴 환불장치가 없는 것이다. 국민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사탕발림 공약을 가려내야 한다. 국민을 공갈젖꼭지 물고 좋아하는 젖먹이로 취급하는 후보를 솎아내는 것이 국가의 주인으로서 막중한 책임이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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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찬호 "도전이 나를 항상 지탱해줬다" - 한국경제신문 12월 1일자 A23면

박찬호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어제 은퇴 기자회견장에 투수로서 처음 공을 던진 중학생 시절부터 마지막 한화이글스까지 입었던 유니폼 13장을 들고 나왔다. 하나하나 사연이 깊다. 그는 “나 스스로에게 수고했다, 장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뭔가를 이뤘기 때문이 아니라 잘 견뎌왔기 때문이다. 도전이란 단어는 항상 나를 지탱해줬다”고 했다. 메이저리그 124승보다 쓰러지거나 포기하지 않고 버텨낸 것을 스스로 더 자랑스러워한 것이다.

박찬호는 박세리와 더불어 외환위기로 한껏 움츠러든 국민의 어깨를 확 펴게 만든 진정한 한국 스포츠의 별이다. 하지만 영광스런 은퇴에 이르기까지 그가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과 심신의 고통을 감내했는지를 우리는 잘 안다.

그는 늘 도전했고 넘어질지언정 결코 물러서진 않았다. 국가와 야구에 대한 한없는 열정으로 버텨낸 19년 야구역정이다. 온 국민의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며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야구선수 박찬호가 우리 사회에 던진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그는 도전하는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새삼 일깨워줬다. 요즘 우리 사회는 집단무기력증에 빠져 있고, 모든 세대가 한결같이 내 탓보다는 남 탓, 세상 탓부터 한다. 그 어떤 경제위기보다 심각한 정신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미래인 젊은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에코세대(1979~1985년생)의 46.5%가 취직 전까지 부모가 경제적으로 돌봐야 한다고 답했다. 물론 극심한 취업난에 실망하는 젊은이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젊은 날 도전하지 않고 좌절을 맛보지 않는다면 언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겠는가.

김우중 전 대우 회장도 “5년만 해외에서 빡세게 굴러보라”고 조언했다. 세상은 넓고 도전할 대상은 많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박찬호처럼 진취적으로 도전에 나서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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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우중의 실험에 청년실업 답이 있다 - 한국경제신문 12월 4일자 A39면

글로벌 창업가를 키우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실험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 것 같다. 베트남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자며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양성해온 글로벌 청년사업가 1기생 전원이 해외 취업에 성공했다는 소식이다. 국내 대기업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은 2년 전 대우그룹 창립 43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향후 20년 동안 20만명의 청년을 ‘세계인’으로 양성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현역 시절 그가 강조했던 ‘세계경영’의 또 다른 버전인 셈이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아주대 강연에서도 대학생들에게 국내에서 어렵게 일자리를 찾으려 하지 말고 해외로 나가 멀리 보고 성공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5년만 빡세게 굴러보라는 게 그의 조언.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신념으로 일찌감치 해외로 나가 곳곳에 대우 깃발을 휘날렸던 그다. 청년들에게 알량한 위로의 말을 들려주는 가짜 멘토들이 넘치는 세상에 그야말로 참다운 멘토 아닌가.

지금 청년들의 취업난은 실로 심각하다. 국내에서 원하는 일자리를 갖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가짜 멘토들은 그것이 오로지 사회 탓인 양 몰아가며 청년들에게 아부하기에 바쁘다. 대선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집권하면 청년들에게 필요한 일자리를 다 만들어줄 것처럼 거짓말을 남발하기 일쑤다. 반값등록금 운운하는 걸 보면 오히려 청년실업자만 더욱 양산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눈을 해외로 돌리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도전의지와 모험정신이다. 국내 일부 공기업들이 해외 자원개발 투자를 크게 늘리고, 이를 위해 정원까지 더 배정받았지만 정작 해외에 나가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물론 일본에서도 실직상태인 청년들이 해외에 나갈 생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1인당 국민소득이 4만달러를 훨씬 웃도는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이제 겨우 2만달러밖에 안 되는 우리 상황에서 벌써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김 전 회장의 말대로 과감하게 밖으로 나가 꿈을 이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