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규정 따른것… 문제 없어"

"당선 가능성 없는 후보가 토론 망쳐"

[시사이슈 찬반토론] 지지율 1%도 안되는 후보가 TV 토론 나와야하나
제18대 대통령후보 간 TV토론이 지난 4일 처음으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통합진보당 이정희 세 후보가 나와 약 2시간 동안 토론을 벌였다. 하지만 토론회가 끝난 뒤 상당수 사람들이 이런 식의 토론회가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토론회 본래의 취지인 정책대결이나 후보자의 자질 검증 등은 실종되고 인신공격이 난무하는가 하면 상식 이하의 발언으로 토론회 자체가 완전히 망가졌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지지율이 1%도 채 안 되는 후보가 나와 지지율 40%대를 넘은 후보들과 똑같은 자격으로 같은 시간을 배정받아 토론에 참여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이 후보의 경우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대선에 나왔다”고 말하는 등 토론보다는 독설로 일관해 토론 진행 방식에 대해서도 개선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견해가 적지 않다. 현행 대선 후보 TV토론 방식을 둘러싼 찬반 양론을 알아본다.

찬성

토론회를 마련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지난 17대 대선과 달리 각 후보가 1 대 1일로 3분씩 총 6분간 반론과 재반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국민공모 질문 후 자유토론 방식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방송토론위원회는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1%에도 못 미치는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문재인 후보와 함께 TV 토론에 참가한 데 대해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른 것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82조의2 4항 1호는 대선 후보의 TV토론 참여자격을 △국회 5석 이상 정당 추천 후보자 △직전 대통령선거, 비례대표 국회의원선거, 비례대표 시·도의원선거, 비례대표자치 구·시·군의원선거에서 전국유효투표 총 수의 100분의 3 이상을 득표한 정당 추천 후보자 △최근 선거기간개시일 전 30일부터 개시일까지 실시해 공표한 여론조사 결과 평균 지지율이 100분의 5 이상 후보자 중 한 가지를 충족하는 사람으로 정하고 있다. 방송토론위원회는 이 후보가 세 가지 요건 중 첫 번째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 만큼 박, 문 두 후보와 같은 자격으로 TV토론에 나선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방송토론위원회 측은 이번 토론 방식이 여야와 KBS, MBC, 경실련, 대한변협, 언론학회, 방송통신심의위, 선관위 등이 추천한 11명으로 구성된 선거방송토론위가 회의를 열어 확정한 것이며 후보자 간 충분한 토론 기회를 부여하지 못한 점은 있지만 국민이 궁금해하는 다양한 주제를 놓고 상호토론이 진행될 수 있도록 결정한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반대

첫 TV토론을 지켜본 사람 중에는 무엇보다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1%도 안 되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사실상 토론을 종횡하면서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등 유력 후보를 검증할 기회가 사실상 사라졌다며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토론 직후 박선규 새누리당 대변인은 “자기 신분과 역할을 잊은 분별력 없는 후보에 의해 난장판이 된 민망한 토론회였다”며 선관위에 진행자의 통제 등 특단의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인영 민주당 공동상임선대본부장은 “재질문 없는 토론방식은 토론을 요식절차로 만들었다. 박 후보조차도 양자토론의 필요성, 재질문과 반박이 반영되는 토론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라며 선관위 토론과는 별도의 양자토론을 제안했다.

첫 TV토론 직후 선관위 홈페이지에는 현행 방식에 불만을 토론하는 누리꾼들의 글들이 줄을 이었다. “국민이 후보의 토론 능력, 논리력, 통찰력을 파악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구조다” “갖고 나온 자료 읽는 시간으로 반 이상을 써버리는 게 토론인가” “사회자의 개입이 잦고 말도 길어 흐름이 끊긴다” “국회의원 몇 명 있다고 출마해 ‘대통령 떨어뜨리겠다’는 말로 시작해 끝낸다면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란 불만을 쏟아냈다.

일각에서는 미국처럼 유력주자 2명이 후보 간 치열한 공방을 통해 자질과 정책을 검증받는 방식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여론조사 업체인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심도 있는 토론이 되려면 미국처럼 실제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 간 양자토론으로 진행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생각하기

TV 토론 방식 중 어떤 것이 최선인지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각 정당 역시 정치적 이해득실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쉽사리 그 방식을 변경하자고 나서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현 공직선거법에서 대선 후보 중 TV토론 참가자격을 정하고 있는 제82조의2 4항 1호가 이번에 이정희 후보의 경우에서 보듯이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개정해야 하는 것 역시 여야 정치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국회라는 점을 생각하면 쉽사리 개선안이 마련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지지율 1%도 안되는 후보가 TV 토론 나와야하나
하지만 지지율이 40%를 넘는 후보와 1%도 안 돼 당선 가능성이 사실상 없는 후보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토론시간을 배정받아 TV토론을 벌인다는 것은 전파낭비요 국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라는 목소리에는 분명히 귀를 기울일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공직선거법에 정하고 있는 대선 TV토론 참가자격을 실제로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로 압축하는 법개정은 꼭 필요해 보인다.

물론 지지율이 낮은 후보들에게도 기회는 주어져야 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방송토론위 측은 박종선, 김소연, 김순자 후보 등에 대해 별도로 5일 TV 후보토론회를 마련했다. 이 후보처럼 지지율이 낮은 후보는 이들 군소후보와 함께 토론회를 벌여도 좋을 것이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