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87> 현대적 기업 구조는 철도 때문에 완성됐다
시장경제가 발달하면서 다양한 형태와 구조를 갖춘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전문경영인, 주주들의 유한책임, 관료적 조직 등은 현대 기업을 구성하는 전형적인 요인들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대기업이 이와 같은 형태를 취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철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인류가 처음 철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그 이전까지 대표적인 운송수단이었던 말의 가격이 급등하면서부터다. 18세기 말께 프랑스와 주변 국가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면서 많은 말들을 전쟁에 징용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말 가격이 폭등하였고, 광산에서 채광한 광물을 운송할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철도는 화물 운송의 수단으로 개발되었지만 동물이 아닌 기계가 운송수단으로 사용된다는 혁신을 당시 사람들은 쉽게 수긍하지 못했고 결국 커다란 관심을 끌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조지 스티븐슨(1781~1848)은 보다 개선된 13짜리 증기기관차를 1829년 발명하였고, 그 다음 해인 1830년 리버풀과 맨체스터 사이를 화물과 승객을 싣고 시속 12마일로 달리게 된다.

철도가 인류에 선물한 혁신


철도가 유럽과 미국 각지에 보급되면서 인류는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가장 먼저 철도정거장을 위주로 새로운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항구에서 너무 멀어 이전에는 발전하지 못했던 지역들도 쉽게 항구로 생산물을 운송할 수 있게 되어 발달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 남북전쟁 이후 4년 뒤에 대륙횡단 철도가 개통되면서 동부 항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서구 지역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철도 개발로 우리 인류는 다양한 혜택을 누리게 되었지만 철도가 우리 인류에게 선사한 가장 큰 혁신 중 하나는 현대화된 기업구조를 구축하는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점일 것이다.

철도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정확성을 요구하고, 상호 긴밀한 협조가 가능한 조직 구조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것은 철도의 정시 출발과 정시 도착 때문이었다. 철도의 정기 출발과 정기 도착을 유지 관리해 줄 기술자, 승무원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생겼으며, 이는 특정 역에서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달성될 수 있는 성과가 아니라 모든 철도역에서 함께 공조해야 달성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조직 전반적인 장악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다양한 기술적 정밀함을 갖추지 못할 경우 철도는 커다란 재난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조직 장악력은 철도회사에는 필수불가피한 역량이었다.

결국 철도회사는 철도 수리공, 기관장, 역장 등을 가장 체계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 조직화된 지위체계를 고안하게 되었는데, 당시까지 가장 조직장악력이 높았던 조직체인 군사 조직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지위 계급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조직 전체가 움직일 수 있는 군사 조직처럼 철도를 원활히 유지 관리할 수 있는 계급구조를 고안한 것이다. 즉 현대적인 관료제가 탄생한 것이다.

또한 철도 산업이 지속되면서 기존의 직원들에 대한 처우 문제 역시 고민하게 되었다. 철도회사는 기존에 일하던 직원들과 신규 채용한 직원들 간의 관계 설정에 있어, 기존 직원들의 업무 노하우와 경험을 높이 사는 것이 경영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기존 직원들을 승진 시 먼저 고려하는 연공서열 제도를 구축하게 된다.

전문경영인제도 탄생 시켜


현대적 의미의 전문경영인 제도 역시 철도산업에서 시작되었다. 초기의 철길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어 개통되었다. 따라서 초창기 철도 산업은 특정 지역만을 대상으로 운행되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차원에서 관리가 가능하였다. 하지만 점차 철도가 특정 지역을 넘어, 국가 더 나아가 대륙을 횡단하는 수준까지 확대되면서 더 이상 소규모 개인 철도회사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각각의 열차가 시간 충돌 없이 운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지역의 기차역과 여러 열차들을 효율적으로 운영 관리할 방법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에 고안된 개념이 전문 경영인제도다.

과거처럼 사장이 중앙에서 각 지점에 있는 모든 일들을 직접 통제 관리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쉽게 깨달았다. 그로 인해 지역마다 해당 지역을 관리할 권한이 부여된 관리자를 두었으며, 그들은 해당 지역 내지 부분에 대해서는 특별한 보고 없이 직접 의사결정할 수 있었다. 이는 오늘날 전문경영인의 모습이다.

1880년대 들어 철도 운행량이 더 증가됨에 따라 대규모 철도회사들은 전부 전문경영인제도를 도입하게 되었고 회사 운영에 필요한 회계, 기술 지원 부분에 대해서도 각각의 전문성을 부여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오늘날 많은 회사에서 재무, R&D 부서가 별도의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그 맥을 같이한다.

철도산업은 주식의 개념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철도산업이 점차 거대화되면서 개인의 자금만으로는 운영이 어렵게 돼 수천명의 투자자를 모집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철도회사는 유한책임제를 도입한다. 철도산업이 파산한다 하더라도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한 금액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도록 한정시킴으로써 많은 투자자를 모집할 수 있었다. 이는 오늘날 주식회사의 주주들이 회사에 대하여 자신의 지분에 대해서만 의무를 지는 것과 같다. 오늘날 영문 회사 명에서 ‘limited’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 표현이 유한책임회사라는 것을 뜻한다.

기업구조 초석 다진 철도산업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87> 현대적 기업 구조는 철도 때문에 완성됐다
19세기 말 가장 크게 발달한 산업이 철도산업이었고, 이러한 철도회사의 성장을 지켜본 많은 여타 다른 분야의 회사들 역시 철도회사들의 경영 방식을 차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다른 분야 산업에서도 소규모 개인 회사를 벗어나 대규모 회사로 거듭날 수 있는 방법을 학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철강왕 카네기 역시 대규모 철강 회사를 운영하기 직전 철도회사에서 일한 경험을 갖고 있었으며,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를 운영할 수 있었다.

물론 철도 건설이 인류에 기여만 한 것은 아니다. 철길을 놓기 위한 땅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원주민의 땅을 헐값에 매입하거나 무상으로 매입하게 되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원주민과의 무력충돌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기업구조의 초석이 철도산업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


경제 용어 풀이 - 유한 책임

투자자들이 자신이 출자한 지분에 한해서만 책임을 지는 제도를 말한다. 즉, 투자자들은 회사가 파산한다 하더라도 출자한 지분 이외의 추가적인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투자에 참여하기 수월해진다. 오늘날 주식회사의 주주가 회사에 대해 자기가 인수한 주식의 인수가액을 한도로 재산상의 출자 의무를 지는 것이 대표적인 유한책임의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