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다수의견은 항상 옳다?…私益 강해 왜곡 가능성
‘여론에 물어보자’라는 말은 정치권의 단골메뉴다. 정치적 득실이 애매할 때는 여론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여론이 불리할 때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지지여론을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쓴다. 정치인에게 여론은 공격의 무기이자 방어의 수단이다. 여론은 민주주의를 유지·발전시키는 받침대이다. 하지만 개인의 의견이 모아져서 형성된 여론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다. 공익과 사익이 충돌할 때 개인의 의견은 사익 쪽으로 손을 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론이 왜곡되는 것도 문제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때론 여론조사 기관의 의도에 의해 여론이 왜곡되면 ‘민의(民意)’라는 명분으로 민주주의가 궤도를 이탈할 우려가 크다.

#여론은 민주주의 나침반

여론은 한마디로 국민의 뜻, 즉 ‘민의’다. 민주주의는 주권이 국민 모두에 있는 만큼 여론은 민주주의를 이끄는 안내자인 셈이다. 국가 최고 지도자를 뽑는 선거도 결국 여론 지지도가 높은 사람이 누구냐를 가리는 것이다. 프랑스 절대군주 루이 14세가 한 말로 전해지는 ‘짐은 곧 국가다’는 국가의 절대권력자가 여론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증손자인 루이 16세 때(1789년)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은 국가 권력자를 여론 아래에 두자는 민의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자유와 평등 등 오늘날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인간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여론이 절대권력을 압박한 결과다.

여론은 민주주의를 인도하는 ‘나침판’이다. 여론은 ‘소통’과도 맥을 같이한다. 소통의 통로가 막히면 참다운 여론이 형성되기 어렵다. 북한 등 폐쇄국가의 여론이 참된 민의를 반영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은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소통의 통로가 차단됐기 때문이다. 사회나 국가가 건강해지려면 여론이 자유롭게 형성될 수 있는 토대가 강해져야 한다.

#밴드왜건 효과와 투표의 역설

하지만 여론이 항상 옳은가에 대해선 이론(異論)도 많다. 무엇보다 대중의 의견은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밴드왜건(band-wagon) 효과’가 여론에서도 나타난다. 대열 앞에서 행렬을 선도하는 악대차를 뜻하는 밴드왜건이 연주를 하면서 지나가면 사람들이 무엇 때문인지 궁금해하며 몰려들고 시간이 갈수록 무작정 따라가는 군중들이 늘어나듯 여론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어떤 재화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면 사람들이 그 재화를 더 선호하게 되는 ‘편승효과’라는 것이 있는데, 밴드왜건 효과와 같은 의미다. 다중의 의견이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강한 것은 때론 정략가의 타깃이 된다. 정략가일수록 여론을 조작하기 쉬운 대상으로 여긴다. 한 사람을 설득하는 것보다 대중을 움직이는 것이 더 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냄비처럼 쉬 끓고, 쉬 식는 군중들의 심리는 여론이라는 함정이 때론 오히려 사회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가게 만든다.

다수결이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로는 프랑스 대혁명 시대의 정치가이자 수학자인 콩도르세의 이른바 ‘투표의 역설’이 유명하다. 세 후보 A B C에 대해 사전 여론조사를 한 결과 유권자의 3분의 1은 A>B>C 순으로 후보를 선호하고 다른 3분의 1은 B>C>A로 순으로, 나머지 3분의 1은 C>A>B 순으로 후보를 선호한다고 하자. 이 경우 A대 B에서는 A가 과반득표를 하고, B대 C에서는 B가 과반을 득표하게 된다. 그러면 A와 C가 대결하면 어떻게 될까? A>B이고 B>C이니 당연히 A>C일 것 같지만 B가 빠진 A대 C에서는 C가 과반을 득표하게 된다. 이런 역설은 선거에서 당선되는 후보라면 다른 어느 후보와의 1 대 1 대결에서도 이길 것이라는 착각 때문에 발생한다.

#공익과 사익의 딜레마

공익과 사익 간의 충돌도 여론을 왜곡시키는 요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공익과 사익에서 선택권이 주어질 때 사익 쪽을 선택한다. 복지와 세금에선 복지를 선택하고, 군복무는 단축을 선호하고, 주변에 화장터 등 혐오시설이 들어서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일반적 심리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숙고(熟考)된 합리성을 통한 질서정연한 사회’를 민주주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숙고된 합리성이란 공익과 사익에서 적절한 균형이 잡힌 생각을 말한다. 균형이 깨진 매몰적 사고는 민주주의나 사회발전을 저해한다는 의미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주의를 경계한 것은 이러한 대중의 어리석음(衆愚)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도 결국은 공익보다는 사익을 좇는 대중의 심리를 이용해 정치권이 표를 얻고자 하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재원조달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복지’라는 슬로건만 흔들어대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국가 지도자는 이러한 ‘여론의 함정’을 꿰뚫어보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인터넷 문화가 ‘디지털 포퓰리즘’이라는 또 다른 바이러스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끼리끼리만 뭉치는 ‘생각의 무리짓기’가 건전한 여론 형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여론은 민주주의 발전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토론해보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피력한 이유를 ‘여론의 함정’과 연관지어 논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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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어떻게 발전해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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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에는 한때 2~3년마다 시민들의 가치관을 조사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현대사에서 여론이 정치적 힘으로 등장한 것은 18세기다. 학자들은 대체적으로 프랑스 혁명(1789년)을 여론이 본격적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시점으로 본다. 오늘날과 같은 과학적인 방식으로 여론조사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 미국에서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최초의 여론조사는 1824년 미국 대통령 선거다. 해리스버그 펜실베니언이라는 신문은 당시 4명이 출마한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현장 여론을 청취해 그 결과를 신문에 처음으로 발표했다. 여론조사에선 잭슨 후보가 최선두였으나 대통령엔 아담스가 당선됐다. 기록으로 남겨진 최초의 여론조사가 빗나간 것이다. 1880년에는 실제 투표결과와 예측 사이의 차이를 비교함으로써 조사의 정확성에 대한 성찰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 들어 미국의 여론조사는 한층 정확도가 높아졌다. 1932년 로빈손은 그동안의 선거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 7가지 요인을 뽑아냈고, 1935년 조지 갤럽은 조사 결과를 매주 발표하는 갤럽리포트를 발간하면서 조사 과정을 공개하고 그 절차를 구체화하는 선례를 남겼다. 이로써 여론의 정확도는 좀 높아졌지만 ‘여론의 함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우리나라 선거 여론조사는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처음 시도됐다. 하지만 여론조사 기관마다 결과가 다르고 실제와 차이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정책 등에 대한 여론조사에선 여론조사 주체에 따라 결과가 들쭉날쭉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균형 잡힌 사회를 위해선 균형 잡힌 여론과 합리적인 여론조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