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여론의 '함정'…무조건 믿어도 될까?
1948년 미국 대선에서 트루먼의 역전승은 미국 정치사상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선거운동이 시작된 9월 초 공화당 후보 토머스 듀이는 여론조사에서 현직 대통령인 민주당 트루먼을 13%포인트나 앞섰다. 언론, 여론조사 기관,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듀이의 압승을 점쳤다. 승부가 뻔한 대선에 불필요한 비용만 들어간다고 판단한 갤럽 등 여론조사 기관은 투표일 수주일 전 여론조사를 아예 중단했다. 시카고트리뷴은 개표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듀이가 트루먼을 패배시키다’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 신문을 찍어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트루먼은 49.6%의 득표율로 듀이(45.1%)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확보한 선거인단 수는 303명으로, 듀이의 189명을 압도했다. 모두의 예상을 깬 트루먼의 역전승은 ‘여론의 함정’을 논할 때 자주 언급된다.

정치학자 파리드 자카리아가 ‘20세기 최후의 승자’라고 단언한 민주주의는 여론이 근본이다. 왕이나 귀족이 아닌 일반 시민이 주권을 가진 민주주의는 결국 여론(투표)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권이나 자유 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정치 체제다. 여론은 시대의 키워드인 소통과도 맥을 같이한다. 여론의 흐름을 잘 읽는 것은 최고의 선거전략이고, 정책을 펴는 데도 여론은 핵심 가이드다. 오는 12월 1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나 정치권이 여론조사 결과에 웃고우는 이유다.

하지만 여론이 항상 옳은가는 의문이다. 개인의 의견이 모아진 것이 여론인데, 현실적으로 개인이 의견을 표출할 땐 공익(公益)보다 사익(私益)을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복지 확대는 찬성하면서 세금 인상은 반대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따라서 공익과 사익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이른바 ‘교양시민’이 많아야 여론도 참된 의미가 있는 것이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주의에 다소 비판적이었던 것도 공익보다는 사익만을 앞세우는 ‘대중의 어리석음’(衆愚)을 경계하고, 집단적인 사익 추구가 민주주의를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으로 변질시킬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다.

여론은 조사 방식에 따라서도 수치의 변화가 심하다. 어떤 형식으로, 어떤 질문으로, 누구를 대상으로 조사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확연히 달라진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보수·진보의 여론조사 결과가 다르다. 국가의 지도자가 ‘여론의 함정’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모세 시대에 여론조사가 있었더라면 모세도 유대민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킬 것인지 끝내 결정하지 못했을 것”(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이라는 말은 무조건 여론을 좇는 것이 지도자의 덕목이 아님을 시사한다.

이 같은 ‘여론의 함정’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민주주의의 안내자다. 바른 여론은 민주주의를 바른 길로 이끌지만 왜곡된 여론은 민주주의를 왜곡시킨다. 4, 5면에서 민주주의와 여론, 여론의 함정 등을 상세히 살펴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