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기업 생존을 위해 종업원을 해고할 수 있는 제도
경영 악화와 정리해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노동자 92명이 전원 재취업했다.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된 생산직 직원 92명에 대해 9일 인사발령을 냈다. 한진중공업 측은 “지난해 10월 국민과 한 약속에 따른 것”이라며 “정리해고된 생산직 직원 94명 중 정년퇴임한 1명과 재취업을 포기한 1명을 제외한 92명이 일하던 부서로 복귀했다”고 말했다. - 11월9일 연합뉴스

☞ 배를 만드는 한진중공업(한진중) 부산 영도조선소의 해고 근로자 92명이 극심한 노사분규가 타결된 지 1년 만에 일터로 돌아왔다. 크레인 농성과 ‘희망버스’ 시위, 그리고 국회 청문회를 거치면서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는 정치권의 압박에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해고 근로자를 1년 후 복직시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러나 2010년 12월 정리해고를 당한 이후 거의 2년 만에 회사로 돌아온 근로자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감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진중의 도크에는 딱 한 척의 군함만 건조되고 있다. 2008년 이후 상선(商船)을 단 한 척도 수주하지 못해서다. 그래서 생산직원 700여명 중 500여명이 돌아가면서 유급 휴직(회사로부터 일정 봉급을 받으면서 쉬는 것)을 하는 실정이다. 해고 근로자 92명도 곧바로 유급 휴직에 들어가야 할 형편이다. 한진중이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회사의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해운회사 같은 소비자들이 한진중이 만든 배를 사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한진중은 국내에서 배를 만들어선 수지가 맞지 않고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주도 힘들다고 판단해 2007년 필리핀 수비크로 생산거점을 옮겼다. 또 2010년 12월 영도조선소의 정리해고도 단행했다. 몸집을 줄여 어떻게든 살아보자는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영도조선소 근로자 400명 중 94명이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았고, 노조는 총파업을 벌이며 맞섰다. 한진중 근로자도 아닌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35m 크레인에 올라가 309일간 고공 농성을 벌이며 한진중 분규를 정치투쟁의 장(場)으로 몰고 갔다.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김씨를 지원한다며 이른바 ‘희망버스’를 조직해 회사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조 회장을 청문회장으로 불러내 “정리해고자 복직 권고안을 수용하라”고 압박해 결국 항복을 받아냈다.

정리해고란 경영이 악화된 기업이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을 할 때 종업원을 해고할 수 있는 합법적인 제도다. 하지만 기업들이 아무 때나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생존을 위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을 때에만 정리해고를 단행할 수 있다. 정리해고를 하려면 사전에 근로자들에게 충분히 상황을 설명하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해야 하며, 해고 50일 전에 해당자에게 알리고 고용노동부에도 신고해야 한다. 노동법은 근로자들에게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 3권을 보장하는 대신 사측엔 정리해고나 공장폐쇄(직장폐쇄) 등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정리해고에 대해 노동단체 등은 ‘해고는 일종의 살인’이라며 강하게 반대한다. 이에 대해 기업 측에선 정리해고를 해서라도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결국은 회사가 망해 모두가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한다.

쌍용자동차도 정리해고가 이슈다. 지금도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덕수궁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리해고를 둘러싼 논란은 ‘기업 경영 부실은 누구 책임인가’ ‘정치권이 특정 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게 옳은 일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돼 있다. 노조와 일부 사회단체는 부실의 책임은 전적으로 경영자와 사측에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엔 노사는 자기 이익을 위해 서로 투쟁하는 집단이라는 시각이 깔려 있다. 반면 사측과 기업단체는 노사는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로 회사가 부실해지는 책임은 경영진뿐만 아니라 근로자들에게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한진중이 극한투쟁으로 허비했던 시간에 노사가 뭉쳐 허리띠를 졸라맸더라면 그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란 입장이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기업 생존을 위해 종업원을 해고할 수 있는 제도
또 정치권은 한진중과 쌍용차 사태에 개입해 해결을 약속하면서 나쁜 선례를 남겼다. 과연 정치권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해 도태된 기업의 근로자들을 직접 지원하려 나서는 게 옳은 일일까? 그렇다면 왜 문을 닫는 수많은 중소기업 근로자들과 자영업자들은 직접 지원하지 않을까? 정치권이 특정 부실기업 근로자를 돕는 건 옳지 않다. 고용보험 같은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방식이 훨씬 공정하고 효율적이다.

오랜 힘든 기간을 보내고 다시 회사에 들어온 한진중의 한 근로자는 “아침마다 출근할 수 있는 일터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기업의 경쟁력은 경영진에만 달려있는 게 아니다. 노사가 신뢰와 타협의 토대 위에서 힘을 합쳐 피와 땀을 흘려야만 하는 것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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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진 않는다

비만세의 운명

덴마크 정부가 도입 1년 만에 비만세를 폐지하기로 했다고 AFP통신 등이 10일 전했다. 설탕이 포함된 제품에 세금을 부과하려던 계획도 취소했다. 사민당이 이끄는 중도 좌파 연정은 내년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일부 야당과의 협의를 거쳐 이같이 결정했다. - 11월12일 한국경제신문

☞ 지난해 세계 최초로 고지방 식품에 비만세를 도입해 관심을 모았던 덴마크가 1년 만에 이를 폐지키로 결정했다. 국민 건강도 중요하지만 경제와 일자리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임 우파 정부는 지난해 10월1일부터 지방 함량이 2.3%를 초과하는 고지방 식품에 대해 포화지방 1㎏당 16덴마크크로네(약 3400원)의 비만세를 부과했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기업 생존을 위해 종업원을 해고할 수 있는 제도
국민의 47%가 과체중이고 13%가 비만인 상황에서 고지방 식품에 세금을 부과해 섭취를 줄이려는 의도였다. 세금이 부과되자 버터 가격은 14.1%, 올리브유는 7.1% 올랐다. 그러자 피자, 우유, 식용유, 고기, 조리식품 등의 가격도 줄줄이 뛰었다. 하루아침에 식습관을 바꿀 수 없었던 국민들은 보다 싼 식품을 사기 위해 독일 국경을 넘었다. 문을 닫는 덴마크 식품가게들이 증가했고 실업자 또한 늘어났다. 당초 덴마크 정부는 비만세를 물리면 국민의 지방 섭취량이 10% 줄고 버터 섭취량은 15% 감소해 비만 인구의 비율이 낮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또 세수(세금수입)가 약 15억덴마크크로네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덴마크는 세계 최초로 트랜스지방 사용을 금지하는 등 국민 건강을 위해 선도적인 모습을 보인 나라였다. 하지만 비만세의 부작용은 만만치 않았다. 덴마크의 비만세는 세금이 좋은 의도로 부과되더라도 당초의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쁜 결과를 초래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선의(善意)가 꼭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진 않는다. 정치인들이 선거철에 무수하게 외치는 공약 가운데도 비만세와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게 상당수다.

1696년 프랑스 루이 14세와의 전쟁 자금이 필요했던 영국 윌리엄 3세는 주택 창문 개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창문세를 도입했다. 그러자 종국에는 창문 없는 집까지 등장했다. 프랑스는 창문의 폭에 따라 세금을 매겼다. 프랑스 국민은 폭이 좁은 창문을 만들고 창문을 출입문으로 사용해 세금을 피했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나라 곳간을 채우기 위해 귀족들이 목숨처럼 아끼는 수염에 세금을 매기자 귀족들은 수염을 모두 밀어버렸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관계없이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보편적 복지도 당초 의도와는 달리 국민들의 일할 의욕을 꺾고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 정부의 정책이나 정치인의 ‘착한 공약’이 ‘나쁜 결과’를 낳지 않으려면 책상머리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