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중국 최고지도자 오른 시진핑…넘어야 할 산은?
중국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집권한 지난 10년간 연평균 10.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6위에서 2위로 뛰어 올랐다. 외환보유액도 3조2800억 달러로 세계 최대다. 2008년 올림픽, 2010년 엑스포를 개최했다. 올해 유인우주선을 우주에 쏘아 보냈고 항공모함도 건조해 세계 군사강국으로서 위상도 높였다. 그래서 관영언론들은 후진타오(胡錦濤) 집권 10년을 ‘황금 10년’이라고 칭송한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중국의 이같은 압축 성장의 뒤에는 많은 폐해들이 누적돼 있다. 부정부패의 만연, 빈부격차 확대, 법치주의 미비, 소수민족 갈등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문제는 이미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왔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래서 새로 출범하는 시진핑(習近平) 체제는 이런 사회 모순을 해소하는데 주력하면서 양적인 성장보다는 질적인 성장을 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휘청대는 경제 바로세울까?

시진핑은 지난 15일 후진타오로부터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중국의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은 7.4%로 7분기 연속 둔화됐다. 중국은 수출과 투자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최대 수출시장인 유럽과 미국의 경기침체, 일본과의 영토분쟁 등으로 수출 증가율은 올들어 한 자릿수 증가에 그쳤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 4조 위안의 자금을 풀어 경기를 부양했지만 이후 물가가 치솟아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시진핑 체제가 지속적인 성장력을 확보하려면 먼저 수출과 투자중심의 경제구조를 소비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런 성장방식의 전환은 후진타오 집권기에도 꾸준히 제기됐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소비중심의 경제체제를 만들려면 국민들의 소비 수준이 높아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중국에서는 국가 경제는 성장했지만 국민은 여전히 가난한 국부민궁(國富民窮)현상이 심화됐다. 국민들이 소비를 하려고 해도 돈이 없다. 중국은 GDP에서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9년 현재 8%에 불과했다. 미국의 58%, 한국의 44%, 필리핀의 27%에 비하면 세계 최저 수준이다. 중국 소득 상위계층 10%와 하위계층 10% 간 격차는 1988년 7.3배에서 지난해 23배로 크게 벌어졌다.

이런 현상은 국유기업의 비대화와 무관치 않다. 경제적 이익을 독점 국유기업들이 싹쓸이하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지역·계층 간 빈부격차가 확대돼 사회 불안을 야기하는 메커니즘이 구축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진핑 체제 경제개혁의 제1과제는 국유기업의 특권을 없애고 소득분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국유기업의 독점 영역에 민간기업의 진입을 허용하고, 정부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비효율적인 국유기업들을 통폐합하는 것이다.

#민주화·민족문제 해결도 숙제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가 핵심이다. 후진타오 주석은 이미 중국이 서방의 정치체제와는 다른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따라서 중국공산당 1당 지배체제를 흔들거나 전면적인 보통선거를 도입하는 파격은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촌 단위에서 시험적으로 보통선거를 도입하고, 당 대표나 전국인민대표 등에 농민공(농촌출신의 도시근로자)이나 여성의 비율을 늘리는 방안 등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특권층의 권리를 대폭 줄이고 법치주의를 확립해 사회평등을 실현하는 방안도 추진해야한다.이와함께 공직자 재산공개 등 부패를 척결을 위한 방안도 논의될 전망이다.

민족문제도 골칫거리다. 18차 당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티벳트인 9명이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했다. 중국은 티벳 신장위구르 네이멍구자치구에서 빈발하고 있는 독립시위에 대해 강경 진압을 고수,세계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기득권 집권층 저항이 관건

후진타오 정권은 국정이념으로 ‘허셰’(和諧·조화)를 내걸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렇다면 시진핑 체제는 이런 개혁과제들을 달성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시각은 회의적이다. 중국의 원로 재야학자인 마오위쓰(毛于軾) 톈저(天測)경제연구소 명예이사장은 “지난 10년간 태자당(혁명원로들의 자제) 세력의 힘이 세졌다”며 “이들은 기득권층이기 때문에 개혁에 소극적일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장 내년 3월이전에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 수입분배 개혁방안이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수입분배 개혁방안은 국유기업의 독점이익 회수, 근로자 임금인상, 근로소득자 세금감면, 사회보장 강화 등의 내용이 광범위하게 포함될 것으로 기대됐었다. 그러나 최근 국유기업의 임금 등을 공개하는 임금조례가 폐지되고 수입 분배 방안도 구체적 내용이 없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중국 전문가인 로데릭 맥파커 하버드대 교수는 시진핑 주석에 대해 “그는 후진타오 주석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정책적 문제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해왔다”며 “전임자보다는 개혁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지만 과감한 개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김태완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twkim@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경제가 성장하면 반드시 사회 각 부문에서 민주화 요구가 거세집니다. 경제성장과 정치발전 간의 상관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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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당 출신…문화혁명 휘말려 곤욕 치르기도

시진핑은 누구인가

시진핑은 소위 태자당(太子黨 · 공산당 고위 간부 자제들) 출신이다. 그의 부친 시중쉰은 선전특구 지정을 덩샤오핑에 건의한 ‘개혁전도사’로 한때 자오쯔양과 당총서기 자리를 다투던 거물이었다.

명문가 출신이지만 그의 성장기는 의외로 파란만장하다. 아버지의 실각으로 성장기의 대부분을 농촌에서 고된 노동으로 보냈다. 부친의 복권 후에도 중앙보다는 지방에서 주로 경력을 쌓았다.

그는 1953년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시중쉰은 그가 5살 때 국무원 부총리 겸 비서장에 오른 혁명 1세대다. 어머니 치신은 공산당과 팔로군 여전사 출신의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시중쉰이 반당활동의 배후인물로 지목돼 모든 직책에서 해임되자 시진핑도 베이징에서 쫓겨나 허난성에서 초 · 중등학교를 다녔다. 문화혁명 때는 산시성 옌촨현의 산촌에서 6년간 고된 삶을 살았다. 너무 힘들어 3개월 만에 탈출을 시도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1975년 칭화대 입학을 허가받아 베이징으로 돌아온 그는 대학 졸업 후 겅뱌오 중앙군사위원회 비서장의 비서를 맡아 군인으로 중앙무대에 데뷔를 했다. 시진핑은 겅뱌오가 좌천되자 지방 공무원 근무를 자원했다. 빈곤지역인 허베이성 정딩현에서 그는 CCTV의 드라마 ‘홍루몽’의 촬영장소인 룽궈푸를 개발, 관광 수입을 크게 늘리는 수완을 발휘했다. 이후 그는 푸젠성 푸저우시 서기, 푸젠성장,저장성 서기,상하이 서기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