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벽하나 사이로 빈부 갈린 나라들…왜?
지구상에는 왜 부자 나라가 있고, 가난한 나라가 있을까? 한 나라가 부유하고 가난하게 되는 데 어떤 패턴이 있을까? 문화적 차이 때문일까? 지리적 차이 때문일까? 지적수준이 낮기 때문일까? 어떤 경제·정치적 제도 차이 때문일까? 이런 의문을 갖게 해주는 사례, 즉 미국 애리조나주 노갈레스와 멕시코 소노라주 노갈레스, 한반도의 남북한, 서유럽과 동유럽 등지로 떠나 보자.

# 노갈레스 1만弗 vs 3만弗


미국 애리조나주의 노갈레스와 멕시코 소노라주의 노갈레스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원래 이곳은 문화적·인종적·지리적으로 1821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멕시코 땅이었다. 하지만 1853년 미국의 멕시코 땅 매입(개즈던 매입) 이후, 미국 애리조나와 함께 팔려온 노갈레스와 멕시코 쪽에 남은 노갈레스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됐다.

담장의 북쪽, 그러니까 미국 노갈레스의 연평균 가계 수입은 3만달러가 넘는다. 청소년은 거의 학교에 다니고 성인은 대부분 고교 졸업장을 땄다. 65세 이상 주민은 공공건강보험(메디캐어)을 적용받는다.

반면 담장 너머 남쪽은 사정이 180도 다르다. 소노라주의 노갈레스는 연평균 가계 수입은 미국 노갈레스의 3분의 1도 안된다. 성인 대다수는 고교 졸업장이 없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도 부지기수다. 공중보건이 열악해 영유아 사망률도 높다.

모든 것이 같았던 노갈레스. 왜 한쪽은 부자, 다른 쪽은 가난한 지역이 됐을까.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문화적·지리적·지적 수준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사유재산 보호, 권력의 분산, 창조적 파괴(혁신)를 보장하는 포용적 경제·정치제도의 유무가 운명을 결정했다고 봤다.

남북한을 보자. 수년 전 남북한의 실상을 한눈에 보여주는 인공위성 촬영사진이 공개된 적이 있다. 사진은 대낮같이 밝은 남한의 밤과 칠흑같은 북한의 어둠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북한의 생활 수준은 남한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북한 주민의 수명은 남한보다 평균 10년 짧다. 남자 평균키도 남한이 북한보다 거의 10㎝ 크다.

이런 차이가 오래전부터 생긴 것은 아니다. 남북한은 대표적인 같은 문화, 같은 지역, 같은 지적 수준을 지닌 한 나라였다. 1945년 이 차이가 발생하는 결정적 분기점이 잉태됐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뒤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소련과 중국이 관리했다는 사실이다.

남한은 1961년 박정희의 등장과 새로운 경제 및 정치제도의 도입으로 북한을 앞서기 시작했다. 북한에선 열심히 일해도 보상이 주어지지 않은 착취적 경제와 소수특권(김일성 독재) 정치체제로, 남한에선 인센티브를 강조한 사유재산권 보장, 자유, 권력분산(민주화) 쪽을 택한 차이만 있었다.

#닫힌 중국-열린 일본

이런 비교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가능하다. 문화적·역사적으로 중국은 오래전 아시아의 대국이자 선진국이었다. 그에 비해 일본은 1853년 미국 배를 보고 화들짝 놀란 후진국이었다. 지리적·문화적·기후적으로 중국과 일본은 비슷하다. 차이는 일본과 중국이 완전히 다른 경제·정치제도를 가진 뒤부터 발생했다. 일본은 포르투갈과 미국 등에 개방하면서 개인의 권리와 무역을 통한 이익, 권력분산을 장려한 반면 중국은 마오쩌둥의 공산화 이후 이와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금 많은 스페인 뒤처진 이유

영국과 스페인도 마찬가지다.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을 다퉜던 영국과 스페인 중 영국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특허제도가 도입돼 부국이 됐다. 반면 스페인은 페루 등지에서 빼앗은 막대한 금과 은에도 불구하고 선진대열에서 뒤처졌다. 차이는 1688년 발생한 명예혁명으로 영국은 권력이 왕에서 시민으로 넘어가 개인의 자유와 이윤추구가 가능해졌고 특허권도 왕과 소수 귀족에서 일반 시민으로 확대됐다.

러시아의 전신 소련이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했던 폴 새뮤얼슨(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예측이 완전히 빗나간 것도 지리적·문화적·지적 차이가 아닌 포용적 경제·정치제도 차이란 것이 정설화되고 있다. 새뮤얼슨은 1961년 자신이 발간한 경제교과서에서 소련의 국민소득이 1984년쯤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새뮤얼슨은 소련의 경제·정치제도가 착취적이어서 현상유지는 되지만 창조적 파괴로 인한 혁신이 없어 성장에너지가 급격히 떨어진다는 점을 간과했다. 부자나라, 가난한 나라의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같은 지역, 같은 문화를 공유한 나라 중 왜 한쪽은 가난하고 다른 한쪽은 부유할까요? 어떤 역사적 배경과 제도가 이런 차이를 만드는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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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이 부자나라, 가난한 나라 갈랐다?

[Cover Story] 벽하나 사이로 빈부 갈린 나라들…왜?
쥐벼룩이 옮기는 흑사병(페스트)은 1346년 실크로드를 여행하는 상인을 따라 중국에서 유럽으로 퍼졌다. 흑사병은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동유럽 등지를 휩쓸었다. 인구의 절반이 죽어나가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페스트는 봉건제도를 뒤흔들었다. 봉건제도는 왕 밑에 영주가 있고 가장 아래층에 소작농이 있는 구조다. 소작농은 노예 신분이었기 때문에 농노라고 불렸다.

페스트가 번지자 소작농이 급격하게 줄었다. 이는 곧 노동력의 급감을 의미했다. 봉건기반이 흔들린 것이다. 노동력이 귀해지자 소작농의 몸값이 치솟았고 요구사항이 늘어났다. 이를 계기로 소작농은 변화를 요구할 파워가 생겼다. 예를 들어 잉글랜드에서는 노동자들의 힘이 강해져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켰다. 농민반란이 일어났고, 강압적인 노동자법이 무력해졌다.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포용적 노동시장이 생겨나고 임금도 상승했다. 봉건적 세금이나 벌금,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지기도 했다.

반면 흑사병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동유럽 영주들은 소작농을 더욱 예속시키려 했다. 동유럽 영주들은 더 많은 토지를 장악해 서유럽 영주보다 규모가 큰 사유지를 확대해갔다. 도시도 서유럽보다 미약하고 인구도 적어 동유럽 소작농들은 흑사병 충격에도 불구하고 서유럽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그나마 있던 자유마저 동유럽에서는 더 침탈당했다.

그 이후 페스트가 가져온 양측의 변화가 부자와 가난으로 갈랐다는 분석이 있다. 잉글랜드는 착취적 제도의 고리를 끊은 반면 지금도 가난한 동유럽은 그대로 유지했다. 페스트가 조성한 ‘결정적 분기점’이 지금도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