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지진 예측못한 과학자는 유죄"…21세기 갈릴레오 재판?
천재지변 예측에 실패한 과학자들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

이탈리아 법원은 최근 지질학자 6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수백명의 사망자를 낸 대지진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과학자들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바람에 지진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계는 자연재해를 정확히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며 이번 판결로 과학자들의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크게 반발했다. “과학자들의 안일한 태도에 대한 경종”이라는 의견과 “과학을 희생양으로 삼은 정치적 판결”이라는 비판이 맞부딪치며 논란이 일고 있다.

#이탈리아 법원, 6명에 징역형

이탈리아 라퀼라 지방법원의 마르코 빌리 판사는 지난달 22일(현지시간) 국립재난예측·대책위원회 소속 과학자 6명과 공무원 1명에게 “2009년 라퀼라 대지진 예측에 실패해 300여명을 숨지게 했다”며 과실치사혐의를 적용해 징역 6년을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한 징역 4년보다 높은 형량이다.

빌리 판사는 “이들은 불완전하고, 서투르며, 부적절한 정보를 제공해 형사법상 범죄를 저질렀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또 지진 희생자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며 “피고인들은 지진 피해액 1020만달러(약 113억원)를 배상하고 재판 비용도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이탈리아 법률상 항소를 거치지 않으면 유죄가 확정되지 않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바로 수감되진 않았다.

로마에서 북동쪽으로 95㎞ 떨어진 도시 라퀼라가 폐허로 변한 것은 2009년 4월6일 새벽이었다. 7만명의 주민은 잠든 사이에 변을 당했다. 309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천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1254년 건설된 이탈리아의 첫 계획도시 라퀼라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돼버렸다.

문제는 지진이 일어나기 전 6개월 동안 이 지역에 수백 차례의 작은 지진이 지속적으로 감지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명 지질학자들로 구성된 재난위원회는 지진 경보를 발령하지 않았다. 2009년 3월31일 회의에서 계속된 지진에 대해 논의하긴 했지만 “대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이들 중 일부는 시민들에게 “와인이나 한잔 마시면서 여유를 가지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대지진이 일어난 것은 그 6일 뒤였다. 전문가들을 믿고 안심했던 주민들 중 상당수는 사망하거나 재산을 잃었다. 재판에 나온 한 증인은 “평소 지진이 발생하면 바로 피신했지만, 당시 안심하라는 재난위원회의 말을 듣고 집안에만 있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의 잘못된 예측으로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11명의 원고를 대변하는 와니아 델라 비그나 변호사는 “모든 희생자들을 위한 역사적 선고”라고 이번 판결에 의미를 부여했다. 한 유족은 “정의가 이뤄졌다”며 “자신의 직무를 소홀히 한 공직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로페이크 하버드대 교수는 “과학이 문제가 아니라 공포에 질린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게 문제였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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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정당치 못한 판결"

과학계는 이번 판결에 크게 반발했다. “완벽한 지진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과학자를 처벌하는 것은 정당치 않다”는 것이다.

미국과학진보협회는 “지진예측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지질학자인 브룩스 핸슨 사이언스지 부편집장은 “이탈리아에선 작은 지진이 수없이 일어나지만 모두 대형 지진으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1998년 이탈리아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규모 지진의 2%만이 대규모 지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핸슨 부편집장은 “진동이 있을 때마다 지진 경고를 한다면 큰 혼란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학자 5200여명은 이탈리아 정부에 공개 항의서를 보냈다. 세스 스타인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이번 판결은 과학이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라고 비판했다. 크리스 골드핑거 오리건주립대 교수도 “공공정책의 책임을 과학자에게 지우겠다는 생각은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지구과학위원회의 샤를로트 크라브지크 지진학분과 대표는 “모든 과학에 대항하는 재판 결과가 나왔다”며 “이번 판결에 연루된 과학자들이 절대 감옥에 갇히는 일이 없도록 강력한 성명으로 반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과학자들도 법원의 결정에 실망감을 나타냈다. 재난위원회에 참여했던 엔조 보스키 전 이탈리아 국립지구과학·화산학연구소장은 “무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매우 낙담했다”며 “아직도 내가 왜 기소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베르나로도 데 베르나르디니스 전 재난위원회 부소장도 “난 신과 인류 앞에 결백하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일부 언론에선 ‘제2의 갈릴레이 재판’이라는 지적을 내놨다. 지동설을 옹호했다가 교황청의 재판을 받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경우에 빗댄 것이다. 과학계는 이번 판결로 연구자들이 자연재해에 대해 대중 앞에 의견을 내놓는 것을 꺼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토머스 조던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지구과학과 교수는 “많은 과학자들이 입을 다무는 법만 배울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로저 뮈손 영국 지질학연구소장도 “과학자들이 흑백 논리에 맞는 답만을 강요받는다면 사회는 패닉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은이 한국경제신문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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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과도한 지위" vs "확률 개념 이해못한 처사"

과학자 처벌 찬반논란'후끈'

“오늘날 과학은 과도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영국 유명 칼럼니스트인 사이먼 젠킨스의 지적이다. 그는 최근 지진 예측에 실패한 이탈리아 과학자들이 실형을 받은 데 대해 “그동안 과학자들은 책임에서 벗어나 있었다”며 “그들에게만 너그러운 법률은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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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킨스는 그동안 과학이 누려온 특별한 지위를 꼬집었다. 그는 “과학자는 외교관의 면책특권과 교황의 무오류성을 모두 누리고 있었다”며 “돼지독감 예측 실패, 각종 인프라 수요 예측 실패 등으로 수조원이 낭비됐을 때도 정보를 제공한 과학자들은 책임을 지는 법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젠킨스는 비교를 위해 요리사와 열차 수리공의 예를 들었다. 요리사가 실수로 사람들을 식중독에 걸리게 하거나 열차 수리공이 열차를 제때 수리하지 못해 사고가 났을 때 이들은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실수는 이와 달리 용인되는 경우가 많다. 젠킨스는 “일반인과 지식인 사이에 다른 법이 적용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며 “예측의 대가로 봉급을 받아온 과학자들은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젠킨스는 또 “과학자들이 정말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라면, 약을 팔기보단 입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스티븐 커리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교수는 “요리사와 과학자에게 필요한 책임은 다른 종류”라며 “젠킨스는 ‘확률’이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반박했다.

그는 그러나 “과학계가 대중에게 의견을 전달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젠킨스의 지적은 수용할 만하다”며 “반과학주의에 대해 과학계가 할 수 있는 대처는 증거에 기반한 반박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