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선진국 돈 풀기 경쟁…'환율 전쟁' 불붙였다
총성없는 환율전쟁(currency war)이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자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연쇄적으로 돈을 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국 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환율 이기주의’다. 선진국이 통화가치 떨어뜨리기에 나서자 한국과 브릭스(BRICs) 국가 등도 다급해졌다. 자국 통화가 강세일 경우 수출에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세계는 ‘돈풀기 전쟁’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이 양적완화 주범

국내 사정상 돈을 풀어야 하는 미국이 주범이다. 미국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매우 나빠졌다.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사태’로 금융시스템과 산업 전반이 무너지고, 실업률이 8%를 넘어설 정도로 엉망이 됐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실업률을 낮추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돈 풀기(양적완화ㆍquantitative easing)를 선택했다. 돈을 풀면 달러화 약세로 수출이 늘고, 자금이 투자와 고용으로 흘러들어가 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구조다.

미국중앙은행(Fed)은 세 번에 걸쳐 달러를 찍어냈다. 1차로 2008년 11월~2010년 3월 1조7000억달러를 시중에 공급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부실해진 금융회사 지원이라는 명분을 이용했다. 2차로 2010년 11월~2011년 6월 6000억달러를 또 풀었다. 목표는 디플레이션 저지였다.

두 차례나 돈을 풀었음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실업률이 치솟자 중앙은행은 지난 9월 3차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매달 400억달러 규모의 주택담보대출 증권(MBS)을 무제한적으로 사들이는 방법이 동원됐다. MBS를 사들이면 얼어붙은 주택경기에 군불을 지필 수 있고 결국 자산가격을 밀어올려 경기를 살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 달러가 무제한적으로 공급되면 달러가치가 하락해 수출경쟁력이 생길 것이란 기대도 작용했다.

미국이 달러를 찍어내자 국제적 비난이 일었다.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는 달러의 가치를 지켜야 할 미국이 돈을 찍어내면 어떻게 하느냐는 목소리였다. 기축통화의 지위를 포기하란 비판도 쏟아졌다.

# 일본"우리도 계속 풀겠다"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자 그 여파는 일본 엔화에 즉각적으로 미쳤다. 엔화가치가 치솟았다. 국제적으로 안전자산에 속하는 엔화 가치가 달러화 약세에 힘입어 반대로 오른 것이다. 한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이 실행된 이후 일본 엔화의 가치(2002년 말 대비)는 46%나 올랐다. 브라질 헤알화는 75%, 콜롬비아 페소화는 60%, 중국 위안화는 30% 상승했다.

일본 정부는 글로벌 경기하강 국면에서 엔고로 수출에 타격을 입게 되자 돈을 풀겠다고 나섰다. 엔화를 많이 공급하면 환율시장에서 엔고가 꺾이게 돼 있다. 이른바 일본의 양적완화다. 일본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지난 9월 국채 등을 사는 방법으로 돈을 풀 수 있는 자산매입기금을 10조엔을 늘린 데 이어 10월에 다시 11조엔을 올려 총 91조엔을 만들었다. 이 정도의 자금이면 시장에서 엔화 가치의 지나친 상승(환율 하락)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다.

닛산 자동차의 카를로스 곤 사장은 최근 “엔고가 수출기업에 최대 장벽이며 수출 경쟁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1달러당 100엔으로 환율이 올라야 한다”며 일본정부의 환율시장 개입을 요구했다. 현재 일본 엔화가 달러당 79엔대를 오르내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큰 차이다.

EU도 돈을 풀긴 마찬가지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스페인과 그리스 같은 재정 위기 발생국의 국채를 ECB의 발권력을 동원해 무제한적으로 사주기로 했다. ECB는 풀린 돈이 물가압력이나 환율변동 등에 작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스란히 환수하는 불태화(sterilization)정책을 구사하겠다고 했지만 무제한적 채권매입으로 풀린 돈이 환율을 어지럽히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한국·브릭스국가 피해

주요 선진국들의 양적완화로 인한 피해는 그 아래 경제 단계에 있는 국가들에 고스란히 전가된다. 특히 기축통화인 달러화가 평가절하될수록 한국을 비롯해 중국 브라질 등 브릭스 국가는 환율전쟁에 휘말려 수출에 큰 타격을 입는다. 이른바 ‘근린궁핍화’다.

한국에선 환율이 달러당 1000원대 이하로 내려갈 경우(통화가치 상승) 수출이 급전직하할 것이란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한국도 조만간 외환보유액 3220억달러 중 일부를 채권 매입 등으로 풀어야 하는 입장이다. 달러화에서 비롯된 통화전쟁, 즉 환율전쟁이 일본을 거쳐 브릭스국가와 한국 등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셈이다. 특히 달러화의 약세는 달러로 표시된 원유나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을 올려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위험성도 높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기축통화인 달러가치가 떨어지면 글로벌 경제에선 어떤 연쇄반응이 일어나는지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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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잃은 달러, 수익 찾아 아시아로…

[Cover Story] 선진국 돈 풀기 경쟁…'환율 전쟁' 불붙였다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 중 하나가 아시아 통화의 동반 강세다. 선진국의 기준금리가 ‘제로금리’ 상태여서 갈 곳을 잃은 달러와 유로자금이 아시아 시장으로 수익성을 찾아 몰려 오기 때문이다.

기준금리를 보면 미국은 연 0~0.25%, 일본은 0~0.1%로 사실상 제로금리다. 영국과 유로존은 각각 0.50%와 0.75%여서 대동소이하다. 반면 중국은 6.00%, 한국은 2.75%, 대만은 1.88%, 태국은 2.75%로 아시아 금리는 매우 매력적이다. 특히 중국과 한국은 수익성이 높을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시장이기도 해 해외자금이 선호하는 지역이다. 이런 금리 차이 등으로 인해 국제금융협회(IIF)는 “올해 아시아 시장으로 유입될 민간자금 규모가 5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한다.

문제는 달러의 풍부한 유동성이 아시아 시장으로 몰려들 경우 실물경제와 무관하게 아시아 통화가 강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통화강세가 경기 상승이나 기초여건 개선 등에 의하지 않을 경우 되레 부작용만 낳을 것이란 우려다. 이미 한국과 중국은 경기가 꺾이는 국면에 있고 수출도 하락하고 있어 통화강세가 부담스럽다. 사실 통화가 실물적으로 강세여야 할 조건은 없는 상태다.

또 한국과 브릭스 등 신흥 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해질 수 밖에 없다. 수익성을 찾아 몰려온 해외자금들이 이들 국가에 일시적으로 몰려와 주식시장을 달구거나 환율을 출렁이게 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과 브라질이다. 특히 금융시장 개방도가 큰 한국은 외국자금의 흐름에 따라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춤을 출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