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자유무역이 유리하다"…한국이 입증했다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 축소 반대시위는 공포감의 확대 재생산에서 출발했다. “개방은 영화대국 미국에만 유리하다. 개방하면 한국영화 산업이 다 죽는다”는 궤멸론이다. 하지만 스크린쿼터 축소 6년, 즉 개방 6년은 영화 시장을 키우고 한국 영화 산업도 획기적으로 성장시켰다.

다른 분야는 어떨까. 일반적으로 시장이 개방되면 해당 산업은 반발하게 마련이다. 특히 국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유치산업 종사자들은 극렬히 반대한다. 하지만 시장을 개방하고 자유롭게 무역을 하면 모두에게 이롭다는 사실은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됐다. 경제학자 리카르도도 비교우위론으로 이를 설명한다. 개방도와 자유도가 떨어진 나라(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점점 가난해지고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밀은 비교우위에 있다

비교우위는 나라마다, 개인마다, 기업마다 특정 분야에선 경쟁 대상자보다 상대적으로 더 효율적이라는 의미다. 가령 한국에서 한 명의 노동자가 일년에 쌀 5섬 또는 옷 5벌을 생산하는 데 반해 말레이시아 노동자는 쌀 4섬 또는 옷 2벌을 생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치자(옷 한 벌과 쌀 한 섬의 가격은 1만원으로 동일하다고 가정). 얼핏 보면 한국 노동자가 쌀과 옷을 모두 생산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노동자가 말레이시아 노동자에 비해 절대우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역을 한다면 한국과 말레이시아가 모두 이로울 수 있다 즉, 한국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더 많이 생산하는 옷에 특화하고 말레이시아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더 많이 생산하는 쌀에 특화한 후 양측이 교환하면 서로 이득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 노동자는 쌀 한 섬을 더 생산하려면 옷 한 벌을 포기해야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옷 2분의 1벌만 포기하면 되므로 한국은 옷, 말레이시아는 쌀을 집중 생산해 교환하는 게 이득이다.

자유무역으로 얻는 이득은 크다. 우선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노동자가 10명씩 있다고 가정하자. 만일 한국의 노동자가 옷 50벌을 만들고 말레이시아 노동자가 쌀 40섬을 생산하면 두 나라는 90만원(각 1만원이므로) 소득을 올린다. 반면 자유무역을 하지 않고 두 나라가 각각 노동자를 반으로 나눠 쌀과 옷에 각각 투입하면 한국은 옷 25벌과 쌀 25섬을, 말레이시아는 쌀 20섬과 옷 10벌을 생산하게 된다. 따라서 두 나라의 소득은 80만원으로 줄어든다.

#왜 우리만 쌀을 생산하냐고?

말레이시아의 입장에서 이런 얘기가 나올 수 있다. 한국은 좋은 옷을 생산하는데 왜 우리만 고생하면서 쌀을 생산하는가라는 의문이다. 또 언제까지 이래야 하며 이런 구조가 굳어지는 게 아니냐는 질문도 가능하다. 상대적 열위에 있는 국가의 국민이라면 이런 의문이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다. 한국도 말레이시아처럼 “미국은 첨단제품을 만들어 우리에게 파는데 우리는 왜 옷만 만들어야 하느냐”고 반대할 수도 있다.

이런 주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때 중남미 국가에서 인기를 얻었다. 저개발 국가는 아무리 경제개발을 해도 선진국을 따라갈 수 없고 선진국에 경제가 종속되어 착취당하는 구조가 될 것이라는 종속이론이다. 중남미를 중심으로 확산되던 이 이론은 1970년대 이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발전으로 더 이상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특히 한국이 소위 한강의 기적으로 불릴 정도의 초고속 경제발전을 하면서 환상이 완전히 깨졌다. 1950년대 최빈국이었던 한국은 가발산업에서 시작해 신발, 섬유, 가전을 거쳐 반도체, 자동차 산업을 일으켰다. 물론 수출 중심의 개방 정책을 폈다. 1994년 개방된 가전시장이 대표적이다. 당시 관련 업계는 물론 정치권도 반대했다. 가전 강국 일본의 소니 마쓰시타가 몰려 오면 한국시장은 식민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도전과 응전의 결과, 20년이 채 안 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신기술을 앞세워 TV 냉장고 등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유통시장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중반 미국의 월마트, 프랑스의 까르푸가 밀고 들어오면 토종 유통업체들의 씨가 마를 것이라고 했다. 결과는 딴판이었다. 토종브랜드인 이마트, 롯데마트에 밀려 월마트와 까르푸는 한국에서 철수했다. 1998년 이뤄진 일본 대중문화 개방도 우려와 달리 지금은 한류가 역으로 일본에 상륙하는 토대가 됐다.

#전면 개방해야 하는가?

시장은 항상 개방돼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유치산업은 일정 기간 보호해야 한다는 유치산업 보호론이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시장을 개방하지 않았다. 농업은 물론 신발, 섬유 같은 산업의 기업들이 당시 제대로 성장하지 않아 개방하지 않았다. 어느 나라든 그런 분야가 있다. 그렇다고 영원히 시장 개방을 막을 수는 없다. 개방으로 산업이 강해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산업을 보호해서도 득이 안 된다. 한정된 자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쓸 수 있는 전략이라는 얘기다. 수출 주도형 국가인 한국은 자유무역에 길이 있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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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와 FTA…한국에 '도전과 응전'을 선사하다

경제 국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세계는 차별 없는 교역을 원칙으로 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속에서 자유롭게 무역을 한다. 유럽연합(EU)은 이미 국경을 초월해 지역시장을 통합했다. 각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무역을 늘리느라 혈안이 돼 있다. 모두 개방을 뜻하는 코드들이다.

[Cover Story] "자유무역이 유리하다"…한국이 입증했다
WTO는 자유무역을 상징한다. 1995년 출범한 이 체제는 무역규범을 다루는 유일한 국제기구다. 1948년 탄생한 ‘관세 및 자유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대체한 기구로 상품교역은 물론 서비스와 지식재산권 문제까지 다룬다. GATT와 달리 WTO는 회원국에 대해 구속력을 갖는다. WTO가 규정하고 있는 자유무역을 위반할 경우 제재를 받는다.

또 WTO 체제는 최혜국 대우를 원칙으로 삼는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특정 상품에 대해 관세율을 낮게 적용한다면 나머지 회원국에도 전부 같은 관세율을 적용해야 한다. 바로 차별 없는 교역원칙이다.

FTA는 양국 간 또는 제한된 역내 국가 간 관세 철폐를 근간으로 하는 무역자유화 협정이다. 협정 당사국 간에는 관세 및 무역장벽을 철폐해 무역을 늘릴 수 있다. 이 점은 WTO와 다른 점이다.

FTA가 확산된 것으 1990년대 들어서다. FTA에 소극적이던 미국이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서면서 전세계로 확산됐다. 한국은 미국과 칠레 EU 등과 FTA를 맺었다. 수출 주도형 국가인 한국은 FTA로 수출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도 그만큼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지만 미국과 같은 큰 시장에 유리한 조건(관세철폐 등)으로 수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