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영화계의 최대 이슈는 ‘한 해 영화관객수 1억명’을 기록하느냐 여부다. 올 들어 9월 말 현재 누적 관객수는 8162만여 명.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이 당시 520만 명을 기록 중이었던 점과 연말 특수 등을 감안하면 1억명 달성은 무난할 것이란 게 영화진흥위원회의 전망이다. 이미 달성된 첫 기록도 있다. 7~9월 3개월 연속 1000만 관객 돌파다. 2007년 전국 극장 관객 수를 영화관 통합전산망으로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 있는 경사다. 예전에 1000만 관객을 기록한 달은 2011년 8월, 2009년 8월, 2007년 8월, 2006년 8월과 10월이 전부다.
한국 영화 시장은 어떻게 성장한 것일까? 영화 전문가들은 단연 스크린쿼터 축소가 가져온 ‘도전과 응전’의 메커니즘을 꼽는다. 개방과 수요 증가, 투자 확대, 성장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개방해야 산다
스크린쿼터(한국 영화 의무상영일수) 축소는 수출 주도형인 한국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해외 시장을 끊임없이 개척해야 하는 한국으로선 내부 시장도 개방해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다. 2006년 당시 정부는 최대 시장인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면서 필수적으로 두 시장을 개방해야 했다. 소고기와 영화 시장이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대외 의존도가 70%가 넘는 우리나라로서는 범 세계적인 무역자유화 대열에 동참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며 스크린쿼터 축소정책을 발표했다. 극장들의 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를 연간 106일에서 73일로 줄여 외국영화가 더 많이 상영될 수 있도록 했다.
영화계는 발칵 뒤집혔다. 영화 배우와 종사자들은 “한국문화 죽는다” “문화는 교역 대상이 아니다”며 거리로 나왔다. 배우 최민식 씨는 정부가 수여했던 훈장을 문화관광부에 반납하기도 했다.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들도 가세해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면 한국영화가 종말을 맞을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파이가 커졌다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 목소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극장 주인들은 내심 반겼다. 이들은 의무상영 일수를 지키느라 인기 없는 한국영화를 상영해야 했다. 인기작이 나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자주 한국영화를 바꿔 가며 시간을 채워야 했다.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 외국영화가 증가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스크린쿼터 축소 후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2002~2006년 53%에서 2007~2011년 44%로 감소했다. 의무 상영일수가 줄어든 이상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절대 관람객이 줄어든 탓은 아니었다. 같은 기간 동안 한국영화를 본 관객 수는 2300만명, 외국영화를 본 사람은 8000만명 늘었다. 외국영화의 유입이 한국영화 시장을 자극했고 전체 파이가 커지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외국영화 수입은 한국영화의 반격으로 이어졌다. 시장이란 앉아서 죽는 법이 없어서 도전이 있으면 응전의 몸부림이 있게 마련이다. 먼저 제작편수가 늘었다.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영화제작이 급감할 것이라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외국 영화수입으로 관객이 늘자 국내 제작자들도 “우리도 할 수 있다”며 제작을 늘렸다. 그 결과 같은 기간 평균 82편에 불과했던 제작 편수가 126편으로 증가했다. 수입영화 편수가 272편에서 402편으로 늘었지만 한국 영화도 경쟁심을 보인 것이다. 관객 100만명 이상 작품이 수두룩하게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영화 내용면에서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스크린쿼터 축소 이전에는 할리우드 영화를 본뜬 작품이 대형작품이라는 이유로 인기를 끌기도 했으나 축소 이후에는 한국적 스토리로 무장한 신인감독과 시나리오가 나오면서 영화에도 한류바람을 일으켰다. 부러진 화살, 아저씨, 도가니, 써니, 국가대표, 과속스캔들, 공모자들, 도둑들, 광해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투자급증+높아진 몸값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강해지면서 대기업 투자도 늘어났다. 제작비 지원은 물론 멀티플렉스관 확대가 이뤄졌다. KT와 CJ가 대표적인 투자자다. 100억대 제작비는 이제 일반화돼 있다. 배우들의 몸값도 시장이 커지면서 급등했다. 시장 확대와 투자 증가, 좋은 영화제작은 관객 증가로 선순환되고 있다. 이제 관객 100만명이 넘는 영화는 흔해졌다. 여기에다 비즈니스가 되면서 한국영화를 집중적으로 배급하는 전문배급사도 등장했다.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같은 예술영화가 설 땅이 좁아졌다는 비판이 없지 않지만 개방 확대가 영화 시장 자체를 성장시킨 것만은 분명하다. 오정일 경북대 교수는 “스크린쿼터 후 한국영화가 궤멸된다는 주장은 괴담에 불과했다는 점이 입증되고 있다”고 말했다. 개방으로 시장은 더 커졌고 소비자 편익도 증가했을 뿐이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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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1000만 돌파한 한국영화 뭐가 있지?
2003년 한국 영화에 신기원이 열렸다. ‘실미도’가 관객 1000만명을 뚫고 1100여만명을 기록한 것이다. 북파 공작원 얘기를 다룬 실미도는 전대미문의 작품이라고 평가됐다. 하지만 1년 뒤 기록은 바뀌었다.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가 1170만명으로 최고 영화 자리를 꿰찼다. 2005년 ‘왕의 남자’는 다시 1200만명을 돌파했다. 2006년 ‘괴물’은 1300만명을 기록하는 괴력을 보였다. 미국 영화 ‘아바타’(1330만명)를 제외하곤 최고 기록이다.
스크린쿼터가 축소된 이전엔 한 작품이 대박을 터뜨렸다면 축소 이후엔 1000만 관객 작품과 수백만 관객 작품이 골고루 나타났다는 점이다. 2009년의 ‘해운대’와 2012년의 ‘도둑들’이 각각 1130만명, 1298만명을 기록하는 성공을 거둔 가운데 ‘국가대표’ ‘과속스캔들’ ‘써니’ ‘최종병기 활’ ‘아저씨’ 등이 600만~800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 관객들의 반응은 한 가지다. 볼 만한 한국영화가 많아졌다는 것. ‘괴물’과 ‘태극기 휘날리며’는 할리우드식 괴물영화와 라이언일병 구하기를 닮은 영화였다. 반면 ‘최종병기 활’ ‘써니’ ‘국가대표’ 등은 고전과 추억, 스포츠를 주제로 관객과 친숙한 주제를 다뤘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대규모 블록버스터형보다 결코 화려하지 않는 영화가 대박을 터뜨렸다는 점도 주목된다. ‘써니’는 잊혀진 과거를 불러일으킨다는 구조로 된 단순한 스토리였지만 386세대의 감정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 영화 시장은 어떻게 성장한 것일까? 영화 전문가들은 단연 스크린쿼터 축소가 가져온 ‘도전과 응전’의 메커니즘을 꼽는다. 개방과 수요 증가, 투자 확대, 성장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개방해야 산다
스크린쿼터(한국 영화 의무상영일수) 축소는 수출 주도형인 한국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해외 시장을 끊임없이 개척해야 하는 한국으로선 내부 시장도 개방해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다. 2006년 당시 정부는 최대 시장인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면서 필수적으로 두 시장을 개방해야 했다. 소고기와 영화 시장이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대외 의존도가 70%가 넘는 우리나라로서는 범 세계적인 무역자유화 대열에 동참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며 스크린쿼터 축소정책을 발표했다. 극장들의 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를 연간 106일에서 73일로 줄여 외국영화가 더 많이 상영될 수 있도록 했다.
영화계는 발칵 뒤집혔다. 영화 배우와 종사자들은 “한국문화 죽는다” “문화는 교역 대상이 아니다”며 거리로 나왔다. 배우 최민식 씨는 정부가 수여했던 훈장을 문화관광부에 반납하기도 했다.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들도 가세해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면 한국영화가 종말을 맞을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파이가 커졌다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 목소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극장 주인들은 내심 반겼다. 이들은 의무상영 일수를 지키느라 인기 없는 한국영화를 상영해야 했다. 인기작이 나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자주 한국영화를 바꿔 가며 시간을 채워야 했다.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 외국영화가 증가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스크린쿼터 축소 후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2002~2006년 53%에서 2007~2011년 44%로 감소했다. 의무 상영일수가 줄어든 이상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절대 관람객이 줄어든 탓은 아니었다. 같은 기간 동안 한국영화를 본 관객 수는 2300만명, 외국영화를 본 사람은 8000만명 늘었다. 외국영화의 유입이 한국영화 시장을 자극했고 전체 파이가 커지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외국영화 수입은 한국영화의 반격으로 이어졌다. 시장이란 앉아서 죽는 법이 없어서 도전이 있으면 응전의 몸부림이 있게 마련이다. 먼저 제작편수가 늘었다.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영화제작이 급감할 것이라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외국 영화수입으로 관객이 늘자 국내 제작자들도 “우리도 할 수 있다”며 제작을 늘렸다. 그 결과 같은 기간 평균 82편에 불과했던 제작 편수가 126편으로 증가했다. 수입영화 편수가 272편에서 402편으로 늘었지만 한국 영화도 경쟁심을 보인 것이다. 관객 100만명 이상 작품이 수두룩하게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영화 내용면에서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스크린쿼터 축소 이전에는 할리우드 영화를 본뜬 작품이 대형작품이라는 이유로 인기를 끌기도 했으나 축소 이후에는 한국적 스토리로 무장한 신인감독과 시나리오가 나오면서 영화에도 한류바람을 일으켰다. 부러진 화살, 아저씨, 도가니, 써니, 국가대표, 과속스캔들, 공모자들, 도둑들, 광해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투자급증+높아진 몸값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강해지면서 대기업 투자도 늘어났다. 제작비 지원은 물론 멀티플렉스관 확대가 이뤄졌다. KT와 CJ가 대표적인 투자자다. 100억대 제작비는 이제 일반화돼 있다. 배우들의 몸값도 시장이 커지면서 급등했다. 시장 확대와 투자 증가, 좋은 영화제작은 관객 증가로 선순환되고 있다. 이제 관객 100만명이 넘는 영화는 흔해졌다. 여기에다 비즈니스가 되면서 한국영화를 집중적으로 배급하는 전문배급사도 등장했다.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같은 예술영화가 설 땅이 좁아졌다는 비판이 없지 않지만 개방 확대가 영화 시장 자체를 성장시킨 것만은 분명하다. 오정일 경북대 교수는 “스크린쿼터 후 한국영화가 궤멸된다는 주장은 괴담에 불과했다는 점이 입증되고 있다”고 말했다. 개방으로 시장은 더 커졌고 소비자 편익도 증가했을 뿐이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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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1000만 돌파한 한국영화 뭐가 있지?
2003년 한국 영화에 신기원이 열렸다. ‘실미도’가 관객 1000만명을 뚫고 1100여만명을 기록한 것이다. 북파 공작원 얘기를 다룬 실미도는 전대미문의 작품이라고 평가됐다. 하지만 1년 뒤 기록은 바뀌었다.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가 1170만명으로 최고 영화 자리를 꿰찼다. 2005년 ‘왕의 남자’는 다시 1200만명을 돌파했다. 2006년 ‘괴물’은 1300만명을 기록하는 괴력을 보였다. 미국 영화 ‘아바타’(1330만명)를 제외하곤 최고 기록이다.
스크린쿼터가 축소된 이전엔 한 작품이 대박을 터뜨렸다면 축소 이후엔 1000만 관객 작품과 수백만 관객 작품이 골고루 나타났다는 점이다. 2009년의 ‘해운대’와 2012년의 ‘도둑들’이 각각 1130만명, 1298만명을 기록하는 성공을 거둔 가운데 ‘국가대표’ ‘과속스캔들’ ‘써니’ ‘최종병기 활’ ‘아저씨’ 등이 600만~800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 관객들의 반응은 한 가지다. 볼 만한 한국영화가 많아졌다는 것. ‘괴물’과 ‘태극기 휘날리며’는 할리우드식 괴물영화와 라이언일병 구하기를 닮은 영화였다. 반면 ‘최종병기 활’ ‘써니’ ‘국가대표’ 등은 고전과 추억, 스포츠를 주제로 관객과 친숙한 주제를 다뤘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대규모 블록버스터형보다 결코 화려하지 않는 영화가 대박을 터뜨렸다는 점도 주목된다. ‘써니’는 잊혀진 과거를 불러일으킨다는 구조로 된 단순한 스토리였지만 386세대의 감정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