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양 vs 물가 안정

유럽 재정위기의 영향이 확산되는 아시아 신흥국에서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금융정책에 개입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저지하려는 금융당국과 마찰을 빚는 사례가 두드러지고 있다. 태국과 인도에서는 정부가 금리인하를 요구하면서 중앙은행과의 견해 차이가 표면으로 드러났다. -10월8일 일본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경기 살리기 먼저?…亞 신흥국 정부-중앙은행 갈등
☞ 태국의 잉락 정부는 지난해 8월 출범 직후부터 금리를 올리려는 태국 중앙은행을 강하게 견제해왔다. 태국 정부는 중앙은행 측에 기준금리를 낮추라는 압력을 가하는 한편으로 약 170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허물어 내수 부양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태국 중앙은행 관계자는 “정부 개입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위협하고 국가의 신뢰를 훼손시킬 뿐”이라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인도에서도 정부와 중앙은행 간 대립 구도가 선명하다. 인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지난 6월 아난드 샤르마 상공부 장관은 “금리동결 결정에 실망했다”며 “중앙은행 총재에게 즉시 금리인하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13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0%로 동결하는 결정을 내리자 기획재정부는 “지금의 경제 상황이나 정부의 노력에 비해 한은의 태도는 너무 소극적”이라는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한은은 결국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2.75%로 낮췄다.

왜 이처럼 정부와 중앙은행이 나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일까. 이는 기본적으로 정부와 중앙은행이 현 경제를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부분적으로는 중앙은행의 설립 목적과도 관련이 있다.

경제정책(economic policy)은 한 나라의 정부나 공공단체가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민경제의 전체 또는 일부의 활동에 영향을 끼치려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정책의 목표로는 △성장(일자리 만들기) △물가 안정 △국제수지 균형 등을 들 수 있다. 이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수단으로는 크게 △재정정책 △금융·통화 정책이 있다. 때론 조세정책과 외환정책이 가미되기도 한다.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 정부는 지출을 늘리거나 시중에 돈을 푸는 통화완화 정책으로 경기부양을 꾀한다. 가계 소비나 기업 투자가 부진하니 정부가 나서서 총수요를 확충시키는 것이다. 또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인하 △지급준비율(은행 예금 중 반환 요구에 대비해 일정 비율 이상 보유해야 하는 현금) 인하 △공개시장 조작(시중은행이 갖고 있는 국공채의 매입) △은행에 대한 대출 확대 등을 통해 시중 통화량을 늘린다. 미국이나 일본, 영국, 유럽중앙은행(ECB)처럼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활용해 시중에 직접 돈을 푸는 양적완화 정책도 활용된다. 이처럼 유동성을 증가시키면 돈을 빌리는 대가(이자)가 싸져 가계나 기업이 소비나 투자를 늘릴 유인이 생기고, 이는 경기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에 과열된 경기를 진정시키고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정부가 재정지출을 줄이고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지급준비율 인상 △공개시장 조작(중앙은행이 가진 국공채를 시중은행에 매각) △대출 축소 등의 정책을 취하게 된다.

위에서 보듯 경제정책은 목표가 경기부양이냐 물가안정이냐에 따라 정반대의 조치가 취해진다. ‘맨큐의 경제학’이 경제학 10대 원리 중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를 제1원리로 내세우는 것처럼 경제정책의 선택에도 대가가 따른다. 경기를 우선하면 물가가, 물가를 우선하면 경기가 희생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경제정책에서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경기 살리기 먼저?…亞 신흥국 정부-중앙은행 갈등
그러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정부와 중앙은행은 현재 무엇을 최우선 경제 과제로 꼽는 것일까. 대체로 정부는 경기부양,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을 우선하고 있다. 정부는 물가보다는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우선하는 반면 중앙은행은 돈(통화) 가치의 안정이 시급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시각 차이가 정부와 중앙은행간 갈등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이는 또한 중앙은행의 설립 목적이 물가안정에 있는 데서도 비롯된다.

경기부양이 먼저냐 물가안정이 우선이냐를 정하는 건 사실 어려운 문제다. 과도한 정부지출과 통화완화 정책은 시차를 두고 물가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경기침체기에 시중 유동성을 줄이는 건 나라경제 전체를 망가뜨리는 자살행위일 수 있다. 정부와 중앙은행간 긴밀한 협의와 정책 미세조정(파인 튜닝)이 그래서 필요하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

계열사에 일감 몰아준다고?… 그럼 기업 경쟁력은?


내부거래에 대한 오해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사회적 비판에도 30대 재벌 계열사 5곳 중 1곳 꼴로 내부거래 비율이 7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자산 순위 30대 그룹 소속 1165개사의 지난해 계열사 간 매출 내용을 조사한 결과 내부거래 비율이 70% 이상인 계열사는 18.1%인 211개사였다. 이는 전년보다 21개사(11.1%)가 늘어난 것이다. - 10월16일 연합뉴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경기 살리기 먼저?…亞 신흥국 정부-중앙은행 갈등
☞ 내부거래는 같은 기업집단에 속한 회사(계열사) 간에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고파는 거래행위를 말한다. 기업들이 내부거래를 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자동차 한 대를 만들려면 대략 2만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 많은 부품을 현대자동차 한 회사가 만들 수 없다. 그래서 현대차는 현대모비스라는 부품 전문업체를 세우고 현대모비스로부터 각종 부품을 납품받아 자동차를 조립해 완성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산업이 걸음마 단계였을 때 부품 국산화와 경쟁력 확보는 최대 과제였다. 현대차가 현대모비스라는 계열사를 세운 이유는 바로 부품을 국산화하고 자동차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현대차는 또 현대제철로부터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철강제품을 공급받는다. 이 같은 거래가 모두 내부거래다. 부품 개발과 생산에서부터 완성품 조립까지 하나의 라인처럼 제품을 만들어내는 수직계열화는 국내 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 원동력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구조를 갖춘 결과 △핵심 기술과 부품을 개발하고 △생산비를 낮춰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며 △제때 필요한 부품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테크윈 삼성코닝 등 부품전문업체들과의 협력과 거래를 통해 경쟁력을 키워왔다. 일관 생산체제를 갖춘 삼성과는 달리 경쟁사인 애플은 수많은 부품업체들로부터 필요한 부품을 납품받는다. 그래서 안정적인 품질과 공급, 높은 기술수준 확보 등이 애플의 큰 과제가 되고 있다.

물론 내부거래에는 △제품가격·거래조건 등에서 계열회사에 유리하게 하는 차별거래 △임직원에게 자사 제품을 사거나 팔도록 강요하는 사내판매 강요행위 △납품업체에 자기 회사 제품을 사도록 떠맡기는 거래강제 △정당한 이유 없이 비계열사와의 거래를 기피하는 거래거절 등 부당거래도 일부 있을 수 있다. 내부거래를 통해 부실 계열회사를 도와주거나 대기업 오너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당내부거래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을 받는다.

내부거래를 모두 부당거래로 간주하고 재벌들이 여전히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기업 경영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다. 요즘은 계열사라 해도 무조건 제품을 사주지 않는다. 현대모비스 부품의 가격과 성능이 떨어질 경우 현대차는 외국의 부품업체로부터 부품을 구매한다. 그렇지 않고선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기 때문이다. 부당한 내부거래에서도 시장이 엄격한 심판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