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실명제 반대…악플 춤추는 온라인
인터넷 본인확인제(인터넷 실명제)가 폐기돼야 할 이유는 많다. 우선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또 개인정보를 공개하든 안하든 그것은 ‘정보의 자기결정권’에 해당해 국가가 강제할 수 없다. 비실명(익명성)으로 인한 비방·모독 등으로 피해가 발생해도 기존의 민법(손해배상 등)과 형법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 특히 2007년 실명제가 도입된 이후 명예훼손, 모욕, 비방 건수가 도입 전보다 줄었다는 증거는 없어 실명제의 효과가 미미하다.
조목조목 살펴보자. 헌법 제21조 제1항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란 사상 또는 의견을 자유롭게 표명하고(발표의 자유), 그것을 전파할 자유(전달의 자유)다. 이 두 가지 자유의 근간에는 자신의 신원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을 자유가 깔려 있다. 표현의 자유는 매체가 무엇이든 적용된다. 인터넷 게시판 역시 마찬가지다. 게시판은 의사를 표현하고 전파하는 하나의 매체다. 이런 점에서 게시판 제공자에게 실명제를 강제하는 것도 여론을 형성·전파하려는 서비스 제공자의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
실명제는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도 침해한다. 인터넷 본인확인제를 규정한 정보통신망법은 개인정보를 수집해 보관할 의무를 게시판 제공업체에 지우고 있다. 하지만 업체가 개인정보를 수집, 보관, 처리, 이용하도록 하는 것은 개인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권리인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 개인정보는 개인들의 것이다.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인터넷 실명제를 통해 언어폭력, 명예훼손 등을 줄이겠다는 공익적 목적이 크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 등이 좁게 해석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명제가 도입되지 않으면 무차별적인 언어테러와 신상털기, 연예인 자살, 정치왜곡 등과 같은 역기능이 판을 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런 역기능이 발생한다손 치더라도 인터넷 실명제는 헌법상 ‘과잉입법의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 이 원칙은 입법목적에 정당성이 있어야 하고 수단에도 적합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원칙에서 보면 건전한 인터넷 문화조성이라는 인터넷 실명제의 입법목적은 기본권을 제한하지 않고도 달성될 수 있다. 실명제를 안하면 가해자를 잡기 어렵다고 하지만 인터넷 위치추적, 확인 과정을 통해 가해자를 잡을 수 있다. 가해자가 남의 컴퓨터나 아이디를 이용할 경우 가해자를 찾기 어렵다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명제 아래에서도 가해자가 남의 주민등록번호와 명의를 도용할 경우 가해자 추적은 마찬가지로 어렵다. 이런 것들은 다른 불법행위에서도 나타나는 흔한 경우다.
# "손해배상 등 기존법으로 처벌"
피해자에 대한 구제는 기존의 법률 아래에서도 가능하다. 실명제 규정이 아니더라도 기존의 손해배상과 형사처벌 등을 통해 구제는 달성될 수 있다. 현행법으로도 본인확인제가 달성하려는 목적 이상으로 예방효과를 거둘 수 있다.
본인확인제를 규정한 해당 법률조항들(정보통신망법 44조의 5 제1항 제2호와 시행령 제29조, 제30조 제1항)은 게시판 이용자의 범위를 너무 폭넓게 규제하고 있기도 하다. 44조의 5 제1항은 본인확인 대상으로 게시판 이용자를 들고 있다. 이는 글을 쓰는 게시자뿐만 아니라 단순히 열람하는 사람도 본인확인 대상으로 삼고 있다. 열람하는 사람은 정보게시자와 달리 남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없는데도 실명확인 대상이 됐다.
본인확인제는 일일 이용자가 10만명 이상인 사이트를 운영하는 서비스 제공자에게 부과돼 있었다. 하지만 이용자 수를 산정할 때 외국인이나 국외에 있는 한국인 이용자가 포함되는지 불분명하다. 또 동일인이 여러 번 이용하는 경우도 계산에 들어가는지도 분명치 않다. 이는 본인확인제의 적용범위와 기준이 불명확한 것으로 법집행자의 자의가 개입될 여지가 농후하다.
#열람만 하는 사람도 실명요구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 등의 제한이 정당화되기 위해선 공익의 효과가 명백해야 한다. 이른바 ‘법익의 균형성’이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시한 자료에서 보더라도 본인확인제 이후 명예훼손, 모욕, 비방 목적의 게시물이 줄어들었다는 증거는 없다. 인터넷은 전세계 컴퓨터 통신망을 잇는 개방성이 특징이다. 무엇이 금지되는 표현인지도 분명하지 않은 현실에서 규제하고 처벌하는 것은 정당한 의사표현을 막는 과도한 제한이다.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외국인과 재외국민의 게시판 접근을 봉쇄해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본인확인제, 즉 실명제는 기본권을 제한함으로써 달성하려는 공익이 기본권 침해로 나타나는 불이익보다 크다고 할 수 없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실명제가 어떻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지, 어떻게 과잉입법 금지의 원칙에 위반되는 지를 법률적 시각에서 바라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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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개방성은 인터넷 본질… 외국에도 선례 없어"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3일 인터넷 본인확인제(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 5 제1항 제2호와 시행령 제29조, 30조1항에 대해 위헌을 선고했다.
헌재는 실명제에 대해 표현의 자유와 언론자유 침해 등의 이유를 들어 위헌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헌재는 특히 결정문에서 인터넷의 개방성과 외국 입법 사례의 유무를 지적했다. 헌재는 인터넷상 불법·유해정보 규제와 관련, 외국의 입법례를 살펴봤다. 결정문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인터넷상의 유해 정보에 대한 규제를 원칙적으로 업계 자율에 맡기고 있다. 그야말로 시장에 맡긴다는 것. 자칫 국가가 개입할 경우 기본권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민간 주도의 자율규제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선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제한이나 면책요건을 정해주는 정도로 법령을 손보고 있다. 헌재는 일본의 사례도 들었다. 불법·유해 정보가 게시되는 경우 민관이 협조해서 사후적으로 대처하도록 규율하고 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주요 국가, 즉 개인의 자유와 시장 자유를 중시하는 나라에선 본인확인제와 같은 적극적인 게시판 이용 규제가 없다. 인터넷의 개방성으로 인해 모욕, 비방, 허위사실 유포 등이 우려되지만 이것 때문에 자유가 위축되어선 안된다는 점을 헌재는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