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의 두 얼굴…기술촉진 vs 진입장벽

태양 아래 특허가 아닌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누가 먼저 특허를 내느냐가 관건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일까. 지식재산권 중 산업재산권에 속하는 특허는 늘 시비를 낳는다. “네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는 분쟁이다.

요즘 삼성-애플 간 ‘세기의 특허전쟁’이 초미의 관심거리지만 이전에도 이에 못지않은 치열한 특허싸움이 벌어졌다. 가장 뜨거운 전쟁터 중 하나가 전기전자 분야다.

‘벨의 전쟁’으로 불리는 전화기 특허분쟁은 특허의 중요성을 일깨운 대사건이었다. 미국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1847~1922)은 전화기 특허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600회에 걸쳐 법정투쟁을 했다. 이 특허를 기반으로 그가 설립한 회사가 바로 미국 통신시장을 100년 이상 지배하고 있는 AT&T다.

벨과 가장 치열하게 특허전쟁을 치른 사람은 또 다른 미국인 엘리샤 그레이(1835~1901). 그레이는 금속진동판을 사용해 전선으로 신호를 보내는 장치를 발명했다. 하지만 그레이는 ‘착상이 재미있지만 사용가치가 없다’는 전신분야 전문잡지의 평가를 받고 전화기 발명을 잠시 접었다.

[Cover Story] 新기술 둘러싼 세기의 특허전쟁…기업 운명 바꿨다

# 2시간 차이로 '웃고 울고'

이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사람이 바로 벨. 그는 기술자를 고용해 1876년 가죽진동판을 사용한 전화기를 잽싸게 특허 출원했다. 벨의 출원 소식을 듣고 놀란 그레이는 급히 서류를 작성해 특허 정지신청을 제출하러 갔다. 하지만 그레이는 벨보다 2시간 늦게 도착했고 결국 특허는 벨에게 돌아갔다.

두 사람 간 특허전쟁은 계속됐다. 특허장이 발부된 지 3일 후 열린 벨 전화기 시연회에 나타난 전화기는 가죽진동판이 아닌 금속진동판 전화기였다. 그레이는 현장에서 이를 보고 벨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2년간의 재판이 이어졌으나 전화기 특허권은 벨에게 영원히 귀속됐다.

#자살로 끝난'FM 분쟁'

FM 방송 방식을 발명한 에드윈 암스트롱(1890~1954)과 미국 라디오 방송사 RCA 간의 싸움도 유명하다. 이 사건은 결국 암스트롱의 투신 자살로 막을 내린 비극적 사건으로 종결됐다. 1933년 암스트롱은 전파에 소리를 실어나르는 무선통신 기술인 AM 방식(발명가 레지널드 페센든)에 자극받아 회로가 간단하면서도 음질은 더 좋은 주파수 변조(Frequency Modulation) 방식을 발명했다. 그의 기술은 2차대전에 참전한 군장비로 보급되면서 각광받았다. 하지만 AM 방송에 투자를 많이 했던 RCA는 정부에 로비를 벌여 FM 주파수 대역을 바꿔 버렸다. 이 때문에 기존 FM방송국의 장비와 일반 청취자의 라디오 수신기가 쓸모없게 됐다. 이후 RCA는 새로운 주파수 대역에 맞는 장비를 개발했다. 암스트롱은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자금력에 밀려 암스트롱은 패소하고 말았다.

#소설'소나기'의 꽃도 특허

천연물 신약 시장에서도 특허권 싸움이 치열하다. 소년과 소녀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 에 나오는 갈꽃밭의 갈대는 비만 치료를 목적으로 11건의 특허가 출원됐다. 소년이 달아나던 메밀밭의 메밀에선 혈전치료제가, 소년이 소녀에게 전해준 들국화, 싸리꽃, 도라지꽃 등에선 아토피, 염증치료제가 개발돼 나왔다. 분쟁은 식물에서 추출한 물질을 혼합한 경우 발생한다. 2008년 모바일 기기용 소프트웨어 업체인 엠포메이션테크놀로지는 블랙베리 제조업체인 RIM(Research in Motion)를 특허 침해로 제소했다. 회사가 원격으로 직원 스마트폰의 보안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고 비밀번호를 바꾸고 분실 시 데이터를 지우는 기능을 허락없이 탑재했다고 주장한 것. RIM은 블랙베리 1대당 8달러씩 총 1840만대 분의 특허사용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국내 MP3 특허 땅치고 후회

특허 얘기가 나오면 땅을 치는 사례가 있다. 바로 MP3 기술이다. MP3의 원천기술은 1997년 국내 벤처기업인 디지털캐스트가 처음 개발했다. 2001년 이 회사는 국내외에 MP3 플레이어에 대한 특허 등록을 했다. 이후 MP3 제품이 봇물을 이뤘다. 경쟁 기업들은 디지털캐스트의 특허를 무효화시키는 소송을 제기했다. 자금력이 없던 디지털캐스트는 소송에 전략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후 권리 범위가 축소됐고 급기야 국내 특허료 미납으로 특허가 소멸됐다.

해외에선 미국의 특허괴물인 ‘텍사스 MP3 테크놀로지’가 MP3 특허를 모두 매입해 소유권이 완전 이전돼버렸다. 제값을 받지도 못했다. 미국 회사는 이 기술특허로 3조원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허전략만 제대로 세웠다면 디지털캐스트는 수조원의 특허료를 챙길 수 있었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특허분쟁 사례를 분야별로 알아 두면 글쓰기가 쉬워집니다. 무한한 가치를 지닌 특허싸움에서 지면 결과는 비참하다는 점을 느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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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굽는 팔… 삼성은 특허 애국주의 '희생양'

[Cover Story] 新기술 둘러싼 세기의 특허전쟁…기업 운명 바꿨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에서 배심원단 평결이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지적이 미국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나오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특허법 전문학자들조차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팔이 안으로 굽은 결과라는 지적이다. 러브 교수와 예니케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이나 뉴욕타임스, 내셔널법률저널 등 미국 언론들이 주요 특허사건에 대한 논평을 받는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다.

러브 교수는 “손해배상액 10억달러는 지나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따져 보면 삼성전자가 판매한 스마트폰 1개당 48달러의 손해배상액을 결정했다”고 지적했다.러브 교수는 스마트폰에는 평균 25만개의 특허가 사용된다고 설명한 뒤 “특허권자들이 애플과 같은 로열티를 요구할 경우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을 개당 200만달러에 팔아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고 꼬집었다.러브 교수는 또 “특허법은 특허를 침해당한 회사에 대한 손실보상 차원에서 배상액을 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도 배심원들이 삼성전자에 징벌을 주기 위해 대규모 배상액을 결정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배상액을 부과했다’는 배심원단 대표의 발언이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예니케 교수는 “배심원단이 결정한 배상액을 판사가 깎는 사례가 자주 있다”고 말했다. “특허침해에 따른 손실 규모를 뒷받침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을 때가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러브 교수도 “배상액 산정에 관한 법 규정이 아주 애매하고 불명확하다는 비난을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상당수 특허소송의 배상 평결이 이의신청을 거친 뒤 판사에 의해 번복되거나 항소심에서 뒤집어진다고 말했다.

워싱턴=장진모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