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됐다고 뒤늦게 문제 삼아선 안돼"

"교과서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할 수 있어"

[시사이슈 찬반토론] 정치인의 문학작품 교과서에 둬야 할까요
민간에서 개발한 검정 교과서를 심사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중학교 국어 과목의 검정 교과서에 실린 도종환 민주통합당 의원의 작품을 뺄 것을 권고해 논란이 되고 있다. 평가원은 지난달 26일 검정 심사를 통과한 중학교 국어 교과서 16종에 대한 수정·보완 의견을 출판사에 보내면서 이 가운데 도 의원의 시와 산문이 실린 8종에 대해 작품을 교체하는 등 게재에 신중해줄 것을 요청했다.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학계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과거 정치인이 아닌 시절에 썼던 문학작품을 뒤에 정치인이 됐다고 소급해서 교과서에서 빼내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마침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법 위반 여부를 질의한 결과 위반이 아니라는 해석을 받아 이 문제는 일단 없던 일로 하기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앞으로도 유사한 사례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두고두고 논쟁거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현역 정치인의 문학작품을 교과서에 실어도 좋은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도종환 시인의 작품이 실린 교과서를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측은 과거 정치와 무관했던 시절 작품을 뒤늦게 문제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도종환 시인이 속한 한국작가회의는 이 문제가 불거진 직후 성명을 내고 “교과서에 실린 시들은 정치인 도종환 이전에 시인 도종환의 작품”이라며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한국 시의 중요한 성과로 회자될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추방하려는 시도는 시인을 추방하려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며 평가원의 조치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작가 이문열 씨도 “시인이 작품을 쓸 당시 이념적인 편향이 없었던 작품에 대해 그 시인의 신분이 바뀌었다고 해서 뒤늦게 문제삼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교육과정평가원은 수정 권고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로 시인 신경림 씨도 “이번 일은 말도 안 되는 발상이어서 길게 논평할 가치도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문인협회의 정종명 이사장도 “도종환 시인의 작품이 이미 이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난 10년간 검증을 받았기 때문에 교과서에 수록돼 온 것”이라며 “교육과정평가원이 자체 규정을 근거로 삭제를 요구한다면 그 규정을 폐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도 시인이 야당 의원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 아니냐며 이런 것도 일종의 정치 탄압으로 비쳐질 수 있다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반대

정치인, 특히 현역 국회의원의 이전 저작물이 교과서에 실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측은 이미 특정 정당에 소속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는 사람의 작품을 교육에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측은 “교과서 검정 규정에 따르면 정치적 중립성을 감안해 현역 정치인의 경우 수록을 배제하도록 하는 게 원칙”이라며 “이에 따라 도 의원의 작품을 교과서에 실은 출판사에 관련 내용을 통보했다”고 말했다. 평가원은 “도 의원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의 경우에도 영화 ‘완득이’ 관련 사진을 교과서에 수록한 출판사에 대해 수정·보완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평가원은 공정성의 원칙, 객관성의 원칙, 일관성의 원칙, 합의의 원칙 등을 토대로 교과서를 심사한다고 밝혔다. 이 중 객관성 확보를 위해 교육 내용이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심사한다는 설명이다. 평가원의 초·중등학교 검정 교과용 도서 검정 기준에 있는 ‘교육의 중립성 유지’에도 ‘정치적·파당적·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거나, 특정 종교 교육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된 내용이 있는가’라는 항목이 있다. 또 편찬상의 유의점으로는 ‘교육 내용은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공정하고 교육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돼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기

이번 일은 평가원이 선관위에 질의한 결과 별문제 없다는 답변이 나와 일단락되기는 했다. 하지만 도 시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은 일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생각할 문제다. 당장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만 해도 그렇다. 안 원장의 경우 지난해 교과부가 초·중·고 교과서를 확인한 결과 11권에서 언급됐고 ‘진로와 직업’이나 ‘나의 꿈’을 다룬 내용에서 긍정적으로 서술되고 있다고 한다. 평가원의 논리대로라면 만약 그가 대선에 출마하기라도 한다면 그의 이야기를 실은 교과서들은 모두 수정돼야 한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정치인의 문학작품 교과서에 둬야 할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정치적 중립성으로 보느냐는 것이다. 단지 현역 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과거 작품이 교과서에 실린 사실 자체가 정치적 중립성을 해쳤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과거의 작품이라도 그것이 현재 그의 정치적 성향과 연관돼 있고 그 작품에서 그런 정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면 이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교과서 수록 시점 역시 중요하다. 이미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면 작품이 정치성을 띠고 있는지 여부를 떠나 정치인의 작품을 교과서에 싣는 것은 부적절할 수도 있다.

결국 교과서 수록 시기, 작품이 정치성을 띠는지 여부, 어디까지를 정치인으로 볼 것인지 여부 등에 대한 복잡한 해석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차제에 평가원은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구체적인 검정 기준을 다양한 여론 수렴 과정을 통해 만드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