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불을 선물한 프로메테우스가 치르는 죗값(?)은 너무 참혹하다. 코카서스의 바위에 묶여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는 인간에겐 불(문명)의 전파자이지만 신화의 세계에선 비운의 주인공이다. 제우스는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를 왜 그리 가혹하게 벌했을까. 신의 전유물이었던 불을 인간이 공유하면서 인간과 신의 격(格)이 같아지는 것을 두려워한 것은 아닐까. 불은 에너지의 원천이자 문명의 씨앗이다. 불의 사용으로 인간은 비로소 어둠을 헤치고 광명으로 거대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전기는 ‘제2의 불’이다. 불이 열어준 신천지에 문명을 꽃피운 원천은 바로 전기다. 전기의 기원은 설(說)이 분분하지만 상업적 목적에 사용된 것은 불과 100여년에 불과하다.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1847~1931)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덕에 인류는 어둠에서 해방됐다. 우리나라엔 고종 임금 시절인 1887년 경복궁에 처음으로 전등이 켜졌다. 진정한 의미의 산업화는 전기가 있어 가능했다. 오늘날 인간이 누리는 풍요로운 삶도 전기가 일등공신이다.
[Cover Story] 펑펑쓰는 전기…'블랙아웃 공포' 잊었나
대한민국 전력 수급이 아슬아슬하다. 이달 초엔 예비전력이 크게 낮아져 8개월 만에 ‘관심단계’가 발령됐다. 관심은 예비전력이 400만㎾ 아래로 떨어지면 전력당국이 발령하는 관심-주의-경계-심각의 첫 단계다. 지난해 9월 블랙아웃(대규모 동시 정전) 때는 최악인 심각이 발령됐었다. 현재는 에너지 사용제한 조치가 시행 중이다. 대형건물은 실내온도를 26도 이상으로 유지하고, 가게나 상가가 에어컨을 가동할 때는 출입문을 닫아야 한다. 위반 땐 과태료도 부과된다. 지난 21일에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정전대비 위기대응 훈련’이 실시됐다. 올여름에도 블랙아웃 공포가 재연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다.

전력 부족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공급 측면에선 근본적으로 발전능력 자체가 부족하다. 원전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전력 인프라 구축이 늦어진 영향도 크다. 정부는 대형 발전소가 준공되는 2014년까지는 전력 부족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펑펑 써대는’ 소비행태도 문제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전력소비는 연평균 5.3%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평균의 5배를 웃도는 수치다. 반면 전기요금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 정부가 물가관리라는 명분으로 전기요금을 공급원가 이하로 억제해온 결과다. 한마디로 공급은 부족한데 싼맛에 전기를 흥청망청 써온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경제강국인 우리나라가 여름철마다 블랙아웃 공포에 떠는 것은 아이러니다. 원천적으로 전력공급 능력을 키우고 절전의 생활화로 전기부족 위기를 넘겨야 한다. 4, 5면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전력수급 상황 등을 상세히 살펴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