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펑쓰는 전기…'블랙아웃 공포' 잊었나

지난해 9월 우리나라를 공포에 떨게 한 블랙아웃(대규모 동시정전) 악몽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올 여름에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최악의 전력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지식경제부는 올 가을과 겨울철 예비전력도 아슬아슬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력난 해소를 위해선 근본적으론 발전 능력을 높여야 하지만 당장은 절전을 실천해 고비를 넘겨야 한다. 집안에 도둑이 들어왔으면 문단속 책임을 따지기보다 온 가족이 힘을 합쳐 도둑을 쫓아내는 게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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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불안, 겨울까지 간다


정부에 따르면 올 8월까지 수요 관리 등 특별한 조치가 없으면 예비전력이 400만kw를 밑돌 전망이다. 하루 전력 공급 대비 여유분이 5%에 머물러 비상상황이 계속된다는 의미다. 예비전력 5%는 통상 전력수급 불안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수치다. 정부는 전력난이 가을과 겨울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겨울철에 대비해 다수의 발전소들이 예방정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지난 5월 여름철 전력수급 대책을 발표하면서 9대 화력발전소 예방정비를 미룬 탓에 가을철 예비전력은 300만~500만kw로 여름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같은 비상상황은 지난달부터 계속되고 있다. 더위가 일찍 찾아오면서 전력 수요가 예년보다 300만kw 정도 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온이 1~2도 오르면 전력 수요는 150만kw 정도 늘어난다.

전력 공급 부족이 심각해지는 이유는 당초 계획한 발전설비 준공이 미뤄졌기 때문이다. 지자체 및 주민들의 반대로 서울복합화력발전소 1,2호기, 양주복합화력발전소 1호기 등 올해 예정이던 450만kw의 발전설비 준공이 지연되거나 취소됐다. 정부가 지난달부터 산업체 수요 관리를 통해 150만~200만kw를 줄이고 있지만 역부족인 이유다. 정부는 올 겨울 최저 예비전력이 ‘심각’ 단계인 93만kw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전력은 국가 인프라의 핵심

전력은 모든 사회인프라의 핵심이다. 산업활동의 기반이 전력인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전력부족은 사회·경제 시스템의 마비를 의미한다. 상습적인 전력부족은 산업의 생산성을 저하시키고 제조업의 해외 이전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산업생산 중단은 물론 유통·금융 등 전반적인 경제 인프라가 붕괴된다. 국가경제에 전기가 부족해지면 인체의 심장이 조금씩 멎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력부족으로 일반 국민이 겪는 고통은 설명이 필요없다.

전력부족은 중국 인도 등 신흥개발국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만성적인 전력부족이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린다는 분석도 많다.

지난해 3월엔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상당수 일본 공장들이 가동을 중단했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9월 대규모 순환정전 때 전기의 중요성을 피부로 실감했다. 정부는 신규 발전소가 지어지는 2014년부터는 전력난이 다소 완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단기간에 준공할 수 있는 신규 발전소를 조기 건설해 전력난을 해소한다는 방안도 마련했다.

#'아~싸, 가자!'동참을

문을 열어 놓은 채 에어컨을 켠 상점들…. 전력수급에 비상이 걸렸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진이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의 절전의식이 희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기를 펑펑 써대는 데는 절대적으로 싼 전기요금이 한몫한다는 지적도 많다. 정부는 물가관리라는 명분으로 원가이하로 전기료를 낮추고 대신 보조금을 통해 이를 보전해 주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공급이 부족한 데도 가격이 낮은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 여름 블랙아웃의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개인 기업 정부 등 경제주체가 ‘절전’에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대한상의, 업종협회(백화점 호텔 의류 등), 이동통신사, 커피전문점, 화장품 등 다중이용 서비스업 대표는 지난 18일 대한상의에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발전소’ 건설운동에 적극 동참할 것을 선언했다. 국민발전소는 일상 생활에서 에너지를 절약하면 실질적으로 발전소 하나를 건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상징적 의미다. 참석자들은 절전 4대 실천요령인 “아~싸, 가자!” 캠페인을 실천하기로 했다. “아~싸, 가자!”는 ‘아끼자 25시’ ‘사랑한다 26도’ ‘가볍다 휘들옷’ ‘자~뽑자 플러그’를 구호로 만든 것이다. 서울시도 문을 연 채 에어컨을 켜는 가게에 과태료를 부과키로 했다. 국민발전소 건설주간이 끝났지만 ‘아~싸, 가자!’ 구호는 계속 외쳐져야 한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우리나라 전력수급이 불안한 이유를 정리해 보자. 전기가 인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구체적으로 토론해 보자. 하룻동안 전력이 끊긴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를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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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적자 '눈덩이'…전기료 인상은 '3者 3色'

[Cover Story] 전력 수급 '아슬아슬'…에너지도 다이어트 하세요!
전기요금 인상을 둘러싸고 한국전력과 전력관리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 물가 소관부처인 기획재정부 등 3개 관련 기관이 미묘한 갈등을 빚고 있다.

살얼음판을 걷는 전력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지만 인상 수준에 대해서는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전은 두 자릿수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이사는 “원가에 못 미치는 전기요금으로 4년간 쌓인 8조여원의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소 10% 이상의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전이 예년과 달리 정부를 상대로 계속 ‘버티기’를 하는 배경에는 소액주주들이 한전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일 13.1%의 한전 요금 인상안을 반려한 지경부는 한전과 재정부 사이에서 절충을 시도하고 있지만 한전의 태도가 워낙 강경해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지경부 고위 관계자는 “전기요금 인상의 공은 한전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인상 때마다 적정 수준을 놓고 지경부와 마찰을 빚었던 재정부는 상대적으로 느긋한 입장이다.

최근 국제유가가 완연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고율의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약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지경부와 재정부는 적정 전기요금 인상률을 평균 4~7%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