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펑쓰는 전기…'블랙아웃 공포' 잊었나

일본의 여름은 덥다. 한국보다 대부분 위도가 낮고 섬나라의 특성상 습도가 높다. 푹푹 찌는 가마솥 더위. 그래서 일본에서는 한여름 한창 더울 때 ‘찐다’는 뜻의 ‘무시(蒸し)’와 ‘덥다’는 의미의 ‘아쯔이(暑い)’를 한데 묶어 ‘무시아쯔이’라는 표현을 쓴다. 올여름엔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내 원자로가 모두 멈춘 탓에 대대적인 절전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사무실 에어컨 온도가 높아지는 건 기본이고, 전철이나 버스 등 대중 교통수단의 실내도 예년보다 ‘따끈해질’ 전망이다. 집에서 에어컨 빵빵 틀고 있으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기도 힘들다. 올 하반기 중 가정 및 기업용 전기료는 두 자릿수씩 대폭 오를 예정이다. 원전 대신 화력발전 비중을 높이면서 전력회사들의 발전비용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Cover Story] 일본 열도도 절전 중…"전기사용 15% 줄여라"

#원전 멈춘 일본, 전국적 절전운동

일본은 작년에도 전국적인 절전캠페인을 벌였다. 3월11일 일본 열도를 덮친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전 등이 멈춰섰기 때문이다. 올해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작년에는 전체 원자로 가운데 20% 정도가 정상 가동됐지만 올해는 기껏해야 2기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일본은 지진 전까지 전체 전력 공급량의 30%가량을 원자력에 의존해 왔다.

일본 정부도 각종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일단 절전대책. 대부분 지역에 다음달 2일부터 두 달간 2010년 대비 최대 15%의 절전 의무가 부과된다. 지역별로는 11기의 원전이 멈춰선 간사이(關西)전력 관할지역의 절전 목표치가 15%로 가장 높다. 규슈(九州)전력 홋카이도(北海道)전력 등에도 각각 5~10%의 목표치가 할당됐다. 간사이전력과 홋카이도전력, 시코쿠(四國)전력, 규슈전력 등 4곳은 지역별로 돌아가며 하루 두 시간씩 전기 공급을 중단하는 계획정전 계획도 세웠다.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대책도 마련했다. 복잡한 허가절차를 단순화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 기간을 줄이는 게 목표다. 원자력의 빈틈을 친환경에너지로 채우겠다는 의도다.

#"공장 못 돌리나"기업들 불안

[Cover Story] 일본 열도도 절전 중…"전기사용 15% 줄여라"
기업들의 고민은 더 깊다. 더운 건 어떻게든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전기가 모자라서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 문제가 커진다. 조금이라도 전기를 줄이려고 조기 출퇴근(서머타임)을 실시하거나 전력 소모량이 많은 평일에 쉬고, 대신 토·일요일에 근무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일본 최대 제약회사인 다케다약품공업은 지난달 말부터 휴일에도 쉬지 않고 공장을 돌리고 있다. 대표적인 연휴인 ‘골든위크’에도 공장 직원들은 전원 출근했다. 올여름 전력 부족으로 인한 생산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미리 재고를 확보해 놓자는 의도에서다. 오사카 공장과 연구소에는 50억엔(약 700억원)을 들여 자가 발전기도 설치하기로 했다. 신일본제철은 여름철 조업시간을 전력 수요가 적은 야간으로 바꾸기로 결정했고, 유통업체인 다이에 등 상당수 기업들은 근무시간을 한시간 앞당기는 자체 서머타임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긴테쓰(近鐵)백화점은 점포 조명의 약 60%를 전기 사용량이 적은 발광다이오드(LED)로 교체했다.

지방자치단체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절전세’ 도입까지 고려 중이다. 주민들로부터 한 달에 1000엔 정도의 세금을 걷어 절전에 협력한 기업에 장려금을 준다는 발상이다. 절전에 동참하는 가정만 살 수 있는 ‘절전 도전 복권’ 같은 아이디어도 나왔다. 교토부는 올여름 전력 사용률이 97%를 넘으면 병원 등을 제외한 나머지 기관의 직원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낼 생각이다.

#내수 침체에도'쿨 비즈'호황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는 법. 일부 업종은 오히려 절전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일본 신사복 업계는 오히려 호황이다.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내수 침체에도 불구하고 순이익 규모가 늘어나는 추세다. 원전 사고 이후 전국적인 절전 캠페인으로 시원한 신사복인 ‘쿨 비즈’를 찾는 고객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일본 신사복 전문업체의 아오키(AOKI)는 지난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에 70억9000만엔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전년도 35억8000만엔에 비해 거의 두 배로 증가한 것으로 창사 이래 최대 규모다. 또 다른 신사복 업체인 아오야마의 경상이익도 80%가량 늘었다. 각종 방충 제품을 파는 업체들도 일제히 증산에 나섰다. 예년에 비해 해충약과 방충망 등을 찾는 고객이 크게 늘었다. 절전을 위해 에어컨을 끄는 대신 창문을 열어 놓으려는 집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냉동식품 제조회사들은 급속 해동이 가능한 제품의 생산량을 잇따라 늘리고 있다. 창문에 손쉽게 코팅을 할 수 있는 필름과 창문에 다는 대나무발 등도 인기 품목 반열에 올랐다.

도쿄=안재석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yagoo@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에너지원으로 원전이 갖는 장단점을 논의해 보자. 지난해 원전사고 이후 일본의 에너지 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자. 에너지 절약에 동참할 수 있는 방안을 토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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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원전 재가동 문제로 '시끌벅적'

[Cover Story] 일본 열도도 절전 중…"전기사용 15% 줄여라"
작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 일본엔 모두 54기의 원자로가 가동 중이었다. 그러나 사고 이후 후쿠시마 원전 내 4개 원자로에는 폐쇄 결정이 내려졌고, 나머지 원자로도 차례차례 가동을 멈췄다. “불안해서 못살겠다”는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건강검진에 해당하는 ‘내구성 검사(스트레스 테스트)’를 무난하게 통과한 원자로들도 감히 재가동한다는 얘기를 꺼내기 힘든 분위기였다.

문제는 전력 부족. 원전을 포기하고서는 일본 전역에 충분한 전기를 공급하기 힘든 상황에 처한 것이다. 주민들의 반발과 안정적인 전력 공급 사이에서 고민하던 일본 정부는 최근 결단을 내렸다. 가동 중단 중인 일본 내 50기의 원자로 가운데 두 곳을 다시 돌리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재가동이 결정된 원자로는 일본 후쿠이현에 있는 오이원전 3, 4호기. 3~5주가량의 준비기간을 거쳐 3호기는 이르면 다음달 8일, 4호기는 24일에 정상 가동될 전망이다. 지난달 5일 홋카이도의 도마리원전을 마지막으로 모든 원자로가 가동 중단된 이후 두 달여 만에 ‘원전 제로’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오이원전에 이어 다른 원전을 추가 재가동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일본 정부는 원전의 내구성 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후보군을 추릴 계획이다. 홋카이도의 도마리원전과 시코쿠 지방의 이카타원전, 규슈 지역의 가고시마 원전 등이 유력 후보다. 일본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원전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더 높아지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 등 일본 시민단체 인사들은 최근 총리관저를 방문, 원전 재가동에 반대한다고 서명한 751만명 중 645만명의 명단을 제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