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경제민주화…명분과 현실의 딜레마
명분은 역사를 바꾸는 근원적 힘이다. 정의 자유 평등 민족은 혁명의 빌미가 된 대표적 명분들이다. 종교나 이념이 역사를 다시 쓴 사례도 무수하다. 명분은 대중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다. ‘신(神)을 위하여’라는 깃발아래 200년간 지속된 십자군전쟁, ‘민족을 위하여’라는 구호아래 자행된 유대인 학살 등은 명분의 힘을 잘 설명한다. 명분은 때로 사고를 이분법적으로 몰아간다. 선과 악, 진리와 거짓, 보수와 진보를 확연히 구분짓는다. 합리적 생각의 입지를 좁게 만드는 것은 명분의 최대 약점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경제민주화다. 민주화라는 말에선 ‘자율’이라는 이미지가 연상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한마디로 양극화 해소를 위해 대기업이나 부자를 ‘규제’하자는 것이 골자다.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이나 영업시간 제한은 경제민주화라는 명분으로 취해진 대표적 조치다.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순환출자 금지 등도 경제민주화 법안에 포함될 수 있는 후보 리스트다. 정치권은 ‘대기업과 부자 규제’라는 카드가 유권자들의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물론 시대의 키워드는 공생(共生)이다. 빈부격차를 줄이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다. 중소기업들이 더 건실해져야 경제의 바탕이 튼튼해지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은 물론이다.

경제민주화의 명분은 ‘양극화 해소’다. 하지만 양극화 해소가 아무리 시대적 명분이라 해도 시장경제의 근본까지 흔들어선 안된다. 자율과 창의는 시장경제의 바탕이다. 효율과 경쟁을 인정해 생산성을 높이고 커진 파이(富)를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시장경제다. 시장을 지나치게 규제하면 자율과 창의가 위축되고 궁극적으론 시장경제의 존립기반이 붕괴된다. 높은쪽을 낮춰 키를 맞추기보다 낮은쪽을 높여 균형을 잡는 것이 공생의 지혜다.

시장은 창조적 파괴의 연속이다. 언제나 부흥하는 업종과 쇠퇴하는 업종이 공존한다. 성장하는 업종을 억누르기보다 쇠퇴하는 업종을 지원해 공생하는 방안을 찾아야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도 같은 이치다. 글로벌경제 침체, 빈부격차 확대로 시장경제가 도전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시장경제는 수정·보완의 대상이지 결코 용도 폐기물은 아니다. 경제학자 폰 미제스는 “시장경제는 진정한 의미의 경제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라는 명분에 취해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4,5면에서 경제민주화의 내용 및 평등과 경제발전의 상관관계 등을 상세히 살펴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