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클럽' 진입…대한민국, 7대 강국으로

지난 3월25일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는 경기 여주군에 위치한 한강 이포보를 찾았다. 잉락 총리는 이포보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이포보에 큰 관심을 보였다. 심명필 4대강살리기추진본부장이 “기둥 위쪽의 계란 모양 구조물은 수문(가동식)을 들어올리는 권양기(hoist)”라고 설명하자 그는 자국 수행원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행한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에게 “저 속에 들어가 볼 수 있느냐”고 부탁하기도 했다.

잉락 총리가 이포보를 방문한 이유는 한국의 성공적인 물 관리 현장을 보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태국은 지난해 8월 홍수로 전 국토의 70%가 물에 잠기는 큰 피해를 입고 대규모 치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을 벤치마크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이다. 잉락 총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은 외국의 본보기 국가로 떠 오르고 있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베우기 위해 많은 국가에서 한국을 찾았으나 최근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사회 모든 분야에서 한국의 사례를 배우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Cover Story] "소프트파워 배우자"…외국인들 '한국 성장모델' 열공

#'소프트파워'강해지는 한국

이는 한국의 강한 ‘소프트파워(soft power)’가 외국에 어필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소프트파워는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조지프 나이가 1989년 창안한 개념. 나이는 소프트파워를 “강압이나 대가 지급 없이 매력을 통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하면서 문화, 정치, 이념, 정책 등을 소프트파워로 분류했다. 군사력이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하드파워(hard power)’라면 소프트파워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게 나이의 설명이다. 미국의 경우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사회적 유동성 등의 이념이 중요한 소프트파워라고 지적한다.

한국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소프트파워가 보잘것 없었다. 휴대폰 텔레비전 자동차 등을 값싸고 질좋게 만들어 파는 ‘경제국가’에 불과했다. 조금 잘 살지만 전쟁과 분단, 그리고 북한 등 안보 위협이 상존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확산되었고 이에 따라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을 배우려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운영하는 국제정책대학원 학생 가운데 절반은 외국인이다. 한 해 150명가량의 외국인이 한국식 정책 입안 과정을 배우고 현지로 돌아가 정부와 기업에서 활동한다. 일본 최대 디자인 기관 ‘일본산업디자인진흥회’는 조직을 한국디자인진흥원(KIDP)과 유사하게 개편한 후 영문 명칭까지 한국과 유사한 ‘JIDP’로 바꾸려다가 지나치다는 지적에 ‘I’를 뺀 ‘JDP’를 택하기도 했다.

#한국만의 경험이 경쟁력 키워

한국을 본보기로 삼는 이들은 한국 고유의 역사적 경험에 주목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면서 역동적인 문화를 일구어낸 저력이 다른 나라에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군부 독재를 종식하고 민주주의로 이행하고 있는 이집트와 미얀마 지식인들은 한국을 벤치마킹의 대상이자 닮고자 하는 모델로 꼽는다. 이들은 특히 1987년 이후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이집트 국립도서관은 지난해 6월 한국 관련 자료를 별도로 볼 수 있는 한국자료실을 개관했다. 도서관의 장서담당 총책임자인 제인 압둘 하디 국장은 “민주화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이집트인들이 한국에 대해 갖는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 음악과 드라마가 성공한 가장 큰 이유로는 다양한 형식과 적극적인 현지화를 꼽을 수 있다. MBC의 한 관계자는 “한편에는 가난한 집 딸이었다가 왕의 수석 요리사가 되는 500년 전 이야기 ‘대장금’이, 다른 한편에는 서울의 멋진 동네에 섹시한 남자들과 함께 카페에서 일하는 여자의 이야기 ‘커피 프린스’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지 시청자의 입맛에 맞는 드라마를 공급해줄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프랑스 언론인 프레데릭 마르텔은 가수 보아가 일본어 중국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로 노래를 발표하면서 나라별로 이미지를 바꿔나가는 모습을 보고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세계화되면서도 현지 실정에 맞추는 것)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분석했다.

#세계가'본받고 싶은 나라'돼야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국가브랜드지수를 조사한 결과에서 한국의 국가브랜드 ‘실체지수’와 ‘이미지지수’는 각각 15위, 19위에 머물렀다. 아직은 ‘본받고 싶은 나라’는 아니라는 뜻이다. 국제 사회에서 제대로 된 선진국으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그만큼 사회 전반적인 발전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정운찬 전 총리는 이에 대해 “국격(國格)을 갖춰야 비로소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된 선진국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claymo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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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억명 넘어야 내수에 의존할 수 있어

[Cover Story] "소프트파워 배우자"…외국인들 '한국 성장모델' 열공
한 나라 경제에서 인구는 핵심 변수 가운데 하나다. 인구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산업구조와 경제발전 모델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은 한 나라의 경제가 무역에 의존하지 않고 내수만으로 운영될 수 있기 위해서는 인구가 1억명이 넘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세계화가 진전되고 국제 무역이 활성화되더라도 마찬가지다. 생산과 소비를 담당하는 국민이 국경을 쉽게 넘나들기 힘들기 때문이다.

인구가 1억2800명인 일본은 세계 2위 규모의 내수 시장으로 자체적인 경제 생태계가 구축되어있다. 일본 기업들은 이런 내수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승리한 뒤 해외에 진출했다. 국민소득(GDP)이 2조6500억달러(2011년 기준)로 3억1300만명의 인구를 가진 미국도 내수 지향적인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경제가 주목받는 주된 이유도 인구 때문이다.

다른 한편에는 수백만명의 인구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강소국’들이 있다.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국가의 경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몇 가지 산업에 의해 움직인다. 핀란드의 경우 세계적인 휴대폰 기업인 노키아가 전체 GDP의 4%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프랑스 독일과 같은 ‘강중국’형 발전 전략을 모색해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강중국은 인구가 5000만~1억명 정도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서유럽 선진국들이 있다. 이들 국가는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하는 기업들도 많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해서 탄탄한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