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비장한 각오로 ‘새해 결심’을 세운다. 가장 흔한 결심 중 하나가 금연일 것이다. 금연은 나와 남의 건강을 동시에 이롭게 하는 유익한 결심이다. 물론 중독성이 강해 3일을 채 버티기 어렵지만 말이다.

1907년 1월에도 국민 모두가 담배를 끊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었다. 1905년 일본은 을사조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당시 개화파 지식인을 중심으로 교육·산업을 장려해 민족의 실력을 향상시켜 국권을 회복하자는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었다. 이준 등은 서울에서 헌정연구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1906년 대한자강회로 확대 개편했다. 대구에서는 1906년 김광제의 건의에 따라 거상 서상돈 등이 돈을 모아 광문사(廣文社)를 만들어 신교육구국운동을 추진했다. 광문사는 신교육을 위해 필요한 교과서, 계몽잡지, 신문, 교양서적을 발간해 보급하기 위한 인쇄소 역할을 했다. 1907년 1월 광문사 부사장인 서상돈이 국채보상 문제를 들고 나섰다. 당시 서상돈의 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채 일천삼백만원을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허급(달라는 대로 허락하여 베풀어 줌)할 것인데, 지금 국고금으로는 갚지 못할지라. 우리 이천만 동포가 담배를 석 달만 끊고 그 대금 매삭(매달, 다달이) 매명하(한 사람마다) 이십전씩만 수합하면 그 빚을 갚을 터인데 … 중략 … 어찌 힘 아니 드는 담배 석 달이야 못 끊을 자 어디 있으며 설혹 사람마다 못 끊더라도 일원으로 천, 백원까지 낼 사람이 많을 지어니 무엇을 근심하리오. 나부터 팔백원을 내노라.”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국채보상운동이 실패한 이유는 담배 못 끊어서?

국채 팔아 일본에 큰 빚져

우리나라는 일본에 총 1300만원에 해당하는 빚을 지고 있었다. 이는 국채를 통해 조달되었다. 1895년 주한일본공사 이노우에가 한국의 각종 이권을 독점하고 내정간섭을 하기 위해 330만원의 차관을 주었다. 1905년에는 1월에는 한국의 방만한 화폐 유통을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이자율 연 6%에 6년 거치 5년 상환 조건으로 300만원을 빌려주었다. 그해 6월에 연 7%의 이자율로 다시 200만원, 1906년 3월에는 연 6.5%의 이자율로 1000만원의 차관을 주었다.

채권은 국가나 공공단체, 기업 등이 원금상환과 이자지급을 조건으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차용증서이다.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의 본질은 정부의 부채인 셈이다. 물론 누구나 빚을 질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빚을 지는 것이 이로울 수도 있다. 이는 ‘국채보상기성회 취지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저 빚을 빌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큰 사업, 큰 식산(殖産:생산물·재산을 늘림)이 있어 백성을 이롭게 하고 나라를 일으킬 수 있는 일이 눈앞에 있는데도 자본으로 이용할 것이 없으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꾸어서 그 일을 이루는 것이니 이 법은 원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만일 이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여 한 번 빌리고 두 번 빌려 그칠 줄 모른다면 나라 형세가 나중에는 어느 지경에 이를 것이리오?”

채권 발행을 통해 재정지출을 늘리면 채무가 커지지만, 생산적인 부분에 투자하고 이를 상환하는 순환구조가 마련된다면 빚을 진다는 것 자체로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대사를 그르치거나 빌린 돈을 허투루 쓴다면 후일 누군가 희생을 치러야 한다. 거듭된 사업실패에도 대사를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채권을 계속 발행한다면 나라 빚은 점차 늘어나고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이할 수도 있다. 2012년 현재 나랏빚 문제로 힘겨워하는 남유럽 국가의 모습을 우리 선대는 이미 1907년에 우려하고 있었다.

담배 끊어 나라빚 갚자고?

심지어 당시 발행된 채권은 민족의 미래와 발전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러·일전쟁 이후 대한제국을 독점적으로 ‘요리’할 수 있게 된 일본이 식민지 건설을 위해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고 차관을 줌으로써 정치·경제를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채권을 이용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을 위한 빚이 아니라 재정 종속화를 위해 시도된 왜곡된 국채였다.

그러나 담배를 끊어 그 돈으로 빚을 갚자는 선조들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국채보상연합회의 소장을 역임한 김종한이 친일단체인 일진회에 가입했으며, 대한자강회는 강제로 해산됐다. 국채보상기성회 총무 오영근은 보상금 횡령사건으로 구속되었으며 국채보상운동에 꾸준히 지지를 보내왔던 매일신보사의 사장 어니스트 베델(Ernest Thomas Bethell)과 총무 양기탁도 구속되었다. 1910년 한국의 국채는 4500여만원에 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담배 수요의 가격 탄력성은…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국채보상운동이 실패한 이유는 담배 못 끊어서?
담배라는 재화의 특성(중독성)을 생각해 본다면 국채보상운동 성공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 건강을 걱정하는 정부가 담배 가격을 인상해서 담배소비를 줄이려고 해도 소비가 크게 줄지 않는 재화가 담배다. 담배는 중독성으로 인해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작은 재화이기 때문이다.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1보다 작은 경우 비탄력적이라고 하는데,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담배수요의 가격 탄력성은 대체로 0.1~0.7 사이에서 추정되었다. 이런 담배를 3개월 동안 애국심으로 끊어보겠다는 시도는 어쩌면 처음부터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담배에 높은 세금을 책정하고 여기서 거둔 세금으로 국채를 상환해 나갔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절약의 대상이 꼭 담배여야만 했을까?

차성훈 <KDI 전문연구원 econcha@kdi.re.k>


< 경제용어 풀이 >

▨국채

정부가 공공목적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중앙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국채,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는 채권은 지방채라고 부른다. 현재 발행되는 국채는 국고채권, 국민주택채권, 외화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등 3종류다.

▨수요의 가격 탄력성

가격이 변화함에 따라 수요량이 변하는 정도를 나타낸 것으로, 수요량의 변화율을 가격의 변화율로 나눠서 구한다.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1보다 크면 탄력적이고, 1보다 작으면 비탄력적, 1이면 단위탄력적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