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폭행당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
동양의 대표적 사상가 공자는 공동체의 핵심을 어질 인(仁)으로 생각했다. 또 정치는 덕(德)을 갖춘 사람이 의(義)로운 마음으로 공동체의 구성원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자에게 인은 정치윤리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공자보다 150년쯤 뒤에 태어난 서양의 대표적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의 목적이 시민의 미덕을 키우는 것이라고 믿었다. 끊임없이 선(善)을 장려하는 것이 정치인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공자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과 선이라는 덕목을 실현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자가 그의 정치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14년 동안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돈 것은 이상을 현실에 접목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생겨났지만 근대적 의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추첨을 통해 지도자를 뽑았고, 여자와 노예는 정치 참여가 원천적으로 배제됐다. 민주주의는 혁명과 타협이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 뿌리가 넓고 깊어졌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1863년)은 근대적 민주주의 개념을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한마디로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고, 주인인 국민의 행복을 위해 정치적 행위가 이뤄지는 제도다.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고,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것이 본질이다. 평등은 인간이란 존재 자체의 존엄성과 고귀함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민에 의한 정치’는 국민들의 정치 참여를 말한다. 현실적으로 국민 모두가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일일이 관여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표자를 뽑아 국가의 통치를 맡기고, 의사결정을 일임한다. 의회정치는 대의민주주의의 대표적 형태다. 정당정치는 집권이 목적인 정당이 국민의 뜻을 대신해 정치 행위를 하는 것으로, 의회정치의 핵심이다.

최근 통합진보당의 부정 선거, 폭력 사태는 한국 정당정치의 뿌리가 얼마나 허약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밖으로는 ‘공동의 선(善)’을 외치면서도 정작 자신들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독선에선 비애감마저 느껴진다. 민주주의 다수결 원칙도 자신들에게 불리하면 철저히 배제한다.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슬로건은 표를 얻기 위한 현혹적인 구호일 뿐이다.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이합집산 과정에서 정당의 이념쯤은 헌신짝처럼 버려진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한국의 정치가 나아지기를 기대한다. 우리 역시 공자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정치의 본질이 선하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4, 5면에서 정당정치가 불신받는 이유와 민주주의 역사 등을 상세히 살펴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