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현금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외부 지원이 절실한 처지이지만 그리스가 연립정부 구성에 연거푸 실패하면서 시장의 불안은 다시 커지고 있다. 연립정부 구성 실패로 다음달 총선을 다시 치러 긴축정책을 반대하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집권하게 된다면,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을 끊을 가능성이 높다. 이르면 7월 그리스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Focus] 그리스 나라 곳간 7월초 텅 빈다

#"지원 없으면 7월 초 현금 바닥"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최근 “그리스가 연립정부 구성에 계속 실패해 추가 금융지원을 받지 못하면 7월 초 현금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스 정부가 가진 현금은 현재 25억유로 정도인데 두 달 정도면 바닥날 것이란 얘기다. BOA메릴린치는 관광객 감소로 관광 수입 등이 줄게 된다면 이르면 6월 초에도 현금이 고갈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테오도로스 판갈로스 그리스 부총리도 선데이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6월 이후에는 자금이 바닥을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스가 디폴트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EU,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등 이른바 ‘트로이카’가 당초 약속한 2차 구제금융을 지원해주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EU 회원국들은 전제조건인 긴축안을 그리스가 이행하지 않으면 구제금융 지원을 중단하겠다며 압박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 타개를 위해 만들어진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은 최근 그리스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이유로 예정됐던 52억유로 가운데 42억유로만 그리스 정부에 주고 10억유로는 유보했다. 유럽 회원국들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그리스는 긴축에 반대하지 않는 연립정부를 서둘러 구성해야 한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지난 12일 “독일이 구제금융에 협조하는 것은 그리스가 (유럽 다른 나라들과) 합의한 개혁 수행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개혁을 하지 않으면 지원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차총선서 '시리자' 1당 유력

그러나 그리스 정치권은 EU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그리스 제1당인 신민주당, 제2당인 시리자에 이어 제3당 사회당(PASOK)도 연립정부(연정) 구성에 실패했다. 그리스는 총선에서 과반을 점한 정당이 없으면 1~3당에 차례로 각각 정부 구성 권한을 부여한다. 하지만 모두 실패하면 재총선을 치르도록 돼 있다.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그리스 대통령은 지난 15일 각 정당의 대표들을 만나 연정 구성을 위한 마지막 협의를 진행했지만 결국 이견을 줄이지 못했다. 다수 의석을 확보한 야당이 국민 저항을 이유로 긴축정책 수정을 공언하며 연립정부 참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리스는 극적 반전이 없는 한 내달 중순 2차 총선 실시가 불가피해진 상태다. 2차 총선이 치러지면 시리자가 제1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 한 민영TV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긴축에 반대하는 시리자가 1위를 달리고 있다. 시리자가 집권에 성공해 공약대로 긴축을 중단하고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EU와 IMF는 지원을 중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금 대거 인출…'뱅크런' 조짐

때문에 유로존에서는 이미 그리스 디폴트를 가정하고 ’플랜 B(비상계획)’ 마련에 들어갔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리스가 유로존 첫 이탈국가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뤽 코엔 벨기에 중앙은행장은 지난 14일 “필요하다면 그리스는 유로존과 평화적으로 갈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OA메릴린치는 “그리스가 다음달 총선에서 친 유로 연립정부를 만드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라면서 “하지만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하고 유로존에서 탈퇴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연정 구성에 거듭 실패하면서 그리스 은행권에서는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해 자국 통화인 드라크마를 다시 쓸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하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6일 그리스 예금자들이 14일 하루 동안 7억유로(1조350억원)의 예금을 인출했다고 보도했다. 총선이 실시된 지난 6일 이후 14일까지 50억유로의 자금이 은행에서 빠져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 매수 주문량은 8억유로에 달했다.

EU회원국들과 그리스는 구제금융을 통한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희망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는 15일 베를린에서 올랑드의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정상회담을 갖고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아있길 원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스 역시 유로존에 남기를 희망하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대표는 10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를 유로존에 존속시키기 위해 트로이카와 협상할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과연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면서 세계경제에 큰 짐을 지울지 아니면 유로존에 잔류하면서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동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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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시트'는 현실화될까?

유로존 탈퇴 가능성 75%로 상향

[Focus] 그리스 나라 곳간 7월초 텅 빈다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퇴출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그리스가 무질서하게 유로존에서 퇴출될 것이란 비관론은 여전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리스 경제 회복을 위해선 유로존 탈퇴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미국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13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다음달 그리스가 총선을 다시 치르면 긴축 반대를 주장하는 시리자가 정권을 잡을 것이고 채무불이행(디폴트), 유로존 이탈의 수순을 거칠 것으로 예상했다. 유로존을 탈퇴하고 드라크마화로 복귀하면 그리스는 무역경쟁력과 실업률이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CNBC에 따르면 씨티그룹 이코노미스트들은 최근 ‘그렉시트’(Greece+ 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을 50%에서 75%로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을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고 보고 있다. 그리스 국민들이 유로존에 남기를 원하고 있는 데다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그리스가 유로존에 잔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일간지 엘레프테로스 티포스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80% 이상은 그리스가 유로존에 계속 남아야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53.6%는 정부의 긴축 정책을 지지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원하고 있다. 드라기 총재는 1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ECB는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는 것을 절대적으로 원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그렉시트 이후 유로존 전체에 미칠 충격파를 염려한 것이란 분석이다.

독일 일간 디벨트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시 ECB의 손실분은 1600억유로에 이르고 민간 부문까지 고려하면 손실액이 1조유로(1480조원)로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