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당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

민주주의(民主主義)라는 단어는 19세기 일본 지식인들이 영어 ‘democracy’를 번역한 것이다. democracy는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인 ‘민(民)’을 뜻하는 ‘demos-’에 ‘정치체제’를 뜻하는 ‘-cracy’를 결합한 단어다. 왕정, 귀족정, 신정 등과 달리 국민들이 스스로 나라를 통치하는 제도라는 얘기다. 번역어에 사상이나 이념을 뜻하는 ‘주의(主意)’를 붙이기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당시 일본 지식인들이 굳이 ‘주의’라는 표현을 써 번역한 것은 ‘민(民)’이 나라의 주인으로 스스로 통치한다는 생각 자체가 일본인들에게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체제 이전에 그 기반이 되는 이념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보았던 셈이다.

이러한 사정은 서양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투표로 대표를 뽑는 근대적 민주주의는 18세기 말에야 시작됐다. 국민 누구나 1인 1표를 행사해 대표자를 뽑고 중요한 사안에 대한 의견을 표시하는 보통선거제는 1889년 뉴질랜드에서 처음 도입됐다. 서양에서도 민주주의는 고정된 정치체제라기보다는 운동이나 이념으로서의 특징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떠한 민주주의여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정치학에서 핵심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Cover Story] 완벽하진 않아도…최선의 선택은 민주주의

# "선거 끝나면 다시 노예로…"

오늘날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핵심적인 딜레마는 ‘정치적 대표성’의 문제다.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거를 통해 뽑힌 인물들이 과연 민의를 얼마나 잘 대변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직업 정치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권자와 사뭇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갖고 있다. 또 이들 정치인과 그들이 속한 정당은 모호한 슬로건을 내세우고 다른 정치인·정당들과 차별화를 시도한다. 차별화 과정에서 선명성 논쟁이 붙어 오히려 사회 균열을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권자의 다양한 정치적 욕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민에 의한 통치’라는 이상이 점점 왜곡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른바 ‘주인과 대리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인데 대리인(정치인)들이 주인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근대 민주주의의 태동기부터 계속 제기돼왔다. 선거를 통해 통치를 맡을 사람들을 뽑는 대의민주주의가 사실상 또 다른 과두정(소수에 의한 지배체제)에 불과하다는 게 핵심이다. 장 자크 루소는 18세기 자산계급이 투표를 통해 의회 의원을 뽑는 영국에 대해 “영국의 인민들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일 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어버린다”고 말했다. 독일 정치학자 로베르트 미헬스는 20세기 초 독일 사회민주당을 분석하면서 대중 정당도 소수 엘리트들의 의사만 대변한다고 주장했다. 미헬스는 노동계급 출신의 지도자들이 정당을 통해 ‘탈노동자화’된 엘리트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 떠오르는 '청중 민주주의'

대중매체에 의존하는 현대 민주주의가 유권자들을 수동적인 존재로 퇴보시킨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프랑스 정치학자 베르나르 마냉은 서구 민주주의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청중 민주주의(audience democracy)’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청중 민주주의란 시민이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출하지 않은 채 후보들이 제기한 쟁점에 반응하는 수동적 청중이 되었다는 뜻이다. 마냉은 “대중매체를 통한 의사소통 기술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이른바 미디어 전문가의 통치시대”가 등장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이미지 정치는 일반화돼 있다. 지난해 9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장 선거 출마를 발표하는 자리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참석했다. 산에서 내려오느라 수염을 깎고 나올 시간이 없었다고 설명했지만 면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이면 충분하다. 기존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에게 가능한 한 정치인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고 한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무상급식 찬반 투표를 앞두고 수염을 깎지 않고 나타나 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선언했다. 그만큼 고뇌가 깊었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수염이었다.

# 투표뿐만 아니라 토론도 중요

미국의 정치철학자 로버트 노직은 국가 기능이 과대해진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당화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제도는 자유를 위한 틀을 유지시키는 제도, 즉 개인의 자율성이나 권리를 유지할 수 있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만들어낸 완벽한 정치체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체제를 찾기가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각에선 ‘숙의(熟議)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숙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본질은 다수결이나 투표가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해 토론하고 함께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행동이라고 본다. 따라서 각 개인들이 잘 구성된 공론장에 참여해 정제된 결론을 낼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청소년 때부터 합리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민주적 소양을 갖추도록 교육하는 게 중요하다.

조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claymore@hankyung.com

후원 : KDB 대우증권


< 논술 포인트 >

바람직한 민주주의의 요건이란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해보자. 현대 민주주의의 한계는 무엇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게 필요할지 토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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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어떻게 발전해왔나…

[Cover Story] 완벽하진 않아도…최선의 선택은 민주주의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갖춘 나라는 그리스의 도시 국가 아테네였다. 기원전 5세기께 아테네는 자유민들이 직접 정치적 의사 결정과 재판에 참여하고, 추첨에 의해 공직을 맡는 정치제도를 도입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군사제도와 관련돼 있다. 아테네는 대규모 함대를 건설하면서 자유민이 보유 재산에 관계없이 모두 똑같은 자리에 타게 됐다. 일종의 피의 대가였던 셈이다. 자유민의 숫자는 3만명 정도로 아테네 주민의 10%에 불과했다.

중세에 접어들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고대 민주주의는 18세기 서구를 뒤흔든 시민혁명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왕과 귀족이 없는 세상을 꿈꿨던 부르주아지들은 아테네와 로마의 민주주의를 새로운 정치제도의 모델로 삼았다. 미국의 경우 대서양을 건넌 이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직접 입법과 행정을 논의했던 전통도 강력했다.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이를 자세히 묘사했다.

민주주의의 또 다른 전통은 봉건시대에 출현한 신분제 의회에 있다. 신분제 의회는 국왕의 과세에 대해 귀족, 성직자, 도시민이 각각 신분별로 모여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최초의 정당도 17세기 영국 의회에서 생겨났다.

재산과 성별에 상관없이 참정권을 부여하는 보통선거제는 19세기 중반 이후 점진적으로 도입됐다. 1830년대 영국에서 보통선거권을 주장한 차티스트 운동은 보통선거권·법에 의해 정해진 정기적 선거·인구 비례 선거제·국회의원 세비 지급 등을 주장했다. 민주주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