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몰락과 탐욕의 대가

지난 4일 서울 선릉역 인근에 있는 솔로몬저축은행은 예금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하루 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금융당국이 조만간 저축은행 몇 곳을 퇴출시킬 것이라는 소식이 퍼지자 예금을 빼내려는 이들이 몰렸기 때문이었다. 금융감독원은 6일 솔로몬 한국 미래 등 4곳의 저축은행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지기 전인 4일 솔로몬저축은행에는 문을 열기 1시간 전부터 100여명의 예금자들이 줄을 섰다. 오후 1시쯤에는 접수대기표 번호가 1100번까지 찍히면서 발급이 중단되기도 했다. 다른 저축은행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저축은행 서울 을지로 본점은 번호표를 500장 발급하다가 기계가 고장나 직원들이 손으로 번호를 매겨 대기표를 나눠주기도 했다. 이에 따라 예금자들이 맡긴 돈을 찾기 위해 한꺼번에 몰려드는 ‘뱅크런(bank run)’ 현상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4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되고 저축은행 구조조정안이 발표된 후 월요일인 7일, 저축은행 고객 창구는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었다. 경기저축은행 관계자는 “예금 인출 사태에 대비해 4000억원을 마련했고 저축은행중앙회에서 1800억원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준비했지만 다행히 심각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계열사에서 빠져나간 돈은 390억원으로 집계됐다. 평상시보다 4~5배 많은 수준이지만 월요일에 예금 인출 규모가 많고 3, 4일에 3000억원 이상 돈이 빠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양호한 수준이라는 것이대체적인 평가다.

[Cover Story] 영업 정지됐지만…'뱅크런' 줄인 이유는?

#대공황 때 생겨난 예금자보호법

저축은행들의 잇단 퇴출에도 대규모 인출 사태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예금자보호제도 덕분이다. 예금자보호제도는 은행이 문을 닫아도 예금자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보험’ 제도다. 은행이 문을 닫더라도 예금을 보장받을 수 있어 안심하고 돈을 맡기는 것이다.

금융회사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돈을 맡긴 사람들이 안심하고 계속 예치할 수 있어야 은행 영업이 가능하다. 만약 건전한 은행이 부실해질지 모른다는 소문이 퍼져 한꺼번에 많은 예금자가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몰려들게 된다면 은행은 파산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은행의 예금 창출 기능 때문이다. 즉 은행은 예금자가 맡긴 돈 가운데 일부만 남기고(이를 지급준비금이라고 한다) 나머지를 대출해 주기 때문이다. 만일 지급준비금 이상으로 예금 인출 요구가 들어오면 은행은 대출을 회수해야 하는데 이는 즉각 실행하기가 불가능하다. 은행은 부실 여부와 상관없이 ‘파산할 위험이 높다더라’는 소문만으로 파산될 수 있는 것이다. 즉 파산 소문이 나 예금을 인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사람들 사이에 퍼지면 뱅크런 현상이 나타나 금융회사의 연쇄 파산을 몰고 올 수 있는 것이다.

은행의 이런 특성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국가는 예금자보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예금자보호제도는 1933년 세계 대공황 당시 미국이 처음으로 채택했다. 우리나라도 예금자보호법을 만들어 은행들에 예금보험공사의 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있다. 평소에 보험료를 내고 만일 은행이 부실화됐을 때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 예금보험공사 비축금 '바닥'

이번 저축은행 부실에 대해 일부에서는 예금자보호제도 자체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예금자보호제도를 운영하는 기관인 예금보험공사는 은행들로부터 매년 예금액의 일부를 보험료로 받아 적립금으로 쌓는다. 만약 부실화되는 은행이 나타나면 적립금으로 예금을 대신 지급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예금보험공사가 은행들의 개별적인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1인당 5000만원까지 보장해준다는 점이다. 은행별로 부실 위험 차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민용 은행이라며 저축은행도 대형 일반은행처럼 1인당 예금을 5000만원까지 보장하다 보니 예금자로서는 이자율이 높은 저축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저축은행에 돈이 몰리고 돈이 몰린 저축은행은 수익률이 높은(위험이 큰) 건설투자(프로젝트 파이낸싱)로 돈을 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부 저축은행은 예금 유치를 위해 회사를 쪼개 운영하기도 했다. 회사별로 5000만원까지 예금을 보호해 주는 예금자보호제도의 맹점을 이용해 저축은행1, 저축은행2 방식으로 회사를 별도로 운영한 것이다. 위험에 따라 보상이 달라져야 한다는 금융의 기본이 무시되는 바람에 이런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문을 닫는 저축은행이 늘어나자 예금보험공사의 비축금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 예금보험공사는 지난달까지 16개 저축은행을 정리하는 과정에 15조7000억원의 자금을 쏟아부었다. 영업정지된 4개 저축은행의 구조조정에도 6조원 이상 자금이 추가로 들어갈 전망이다. 저축은행이 그동안 납부한 보험료에 비하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는 것이다. 기 납부 보험료를 초과해 지원되는 공적자금은 국민 세금으로 충당될 수밖에 없다. ‘위험만큼 보상한다’는 금융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아 국민이 그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다.

조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claymore@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예금자보호제도가 없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이야기해 보자. 이번 저축은행 부실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예금자보호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일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토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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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5천만원까지 원금·이자 보장

예금자보호제도 운영 어떻게…

솔로몬 등 대형 저축은행 4곳의 영업정지 조치가 발표되면서 예금자보호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예금자보호제도는 1인당 5000만원까지 원금과 이자를 보호해주겠다는 취지로 운영된다. 하지만 5000만원 상한선을 넘는 금액에 대해서는 보장해주지 않는다. 5000만원 초과액은 향후 자산 매각, 경영진의 은닉 재산 환수 등으로 마련된 재원으로 일부분을 보전하게 된다. 과거 비슷한 사례에서 파산 배당률은 40% 정도다. 원금과 이자 합계가 7000만원이라면, 5000만원은 예금보험공사에서 받고 나머지 2000만원 가운데 40%인 800만원가량은 파산 배당금으로 돌려받는 셈이다. 단 파산배당은 몇 년에 거쳐 여러 번에 나눠 지급된다.
[Cover Story] 영업 정지됐지만…'뱅크런' 줄인 이유는?

금융당국은 영업정지된 저축은행들에 45일간의 자체 정상화 기회를 줬다. 이 기간 내에 정상화가 안 되면 제3자에 매각하거나 예금보험공사가 임시로 설립한 가교저축은행으로 예금자의 계약을 이전토록 한다. 3~4개월이 소요되는 이 과정이 지나야 5000만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다. 이 사이에 긴급 자금이 필요한 예금자들은 가(假)지급금을 신청할 수 있다. 가지급금은 예금액이 5000만원 이하는 1인당 2000만원 한도로 지급된다. 5000만원 초과 예금자에 대해서는 5000만원 한도 내에서 원금의 40%까지 지급한다. 가지급금 신청은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인근 6개 은행, 300여개 영업점에서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