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혁명…인간은 행복만 할까?
인간 역사에서 정보를 기록하고 전파하는 수단인 ‘매체(medium)’는 큰 역할을 했다. 대표적 매체 수단인 문자는 입에서 입으로 구전(口傳)되는 데 그쳤던 정보들을 반영구적인 상태로 저장하고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했다. 활자 인쇄술은 문자로 된 지식을 대중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인쇄기로 찍어낸 책은 근대 민주주의의 모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등은 대중 문화의 양상 자체를 바꾸었다.
#수평적'네트워크 사회'도래
정보기술(IT)의 발전은 일각에서 새로운 매체 혁명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확산되면서 인간의 소통 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여기서 핵심은 메시지의 수용자였던 사람들이 메시지의 생산자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이제 이용자들은 스스로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며 동영상을 촬영해 다른 이용자와 공유한다. 여기에 대해 스페인 출신의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은 개인, 집단, 정부 등이 수평적으로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평범한 대중들이 모여 새로운 차원의 지적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집단 지성’이라는 표현은 IT가 인간성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 것이라는 낙관론을 대표한다. 미국의 뉴미디어 전문가 클레이 서키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개인들이 여가 시간을 활용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인지잉여’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어떤 것이 아주 많아지면 그 집단은 새로운 행동 방식을 보인다”고 강조한다. 위키피디어 등 집단 협업의 사례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는 게 서키의 주장이다.
#인간의'기술 종속'우려
한편에서는 IT가 새로운 인간 소외 현상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져가고 있다. 미국의 미디어 전문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디지털 기술은 이전에 나타난 기술들과 현저히 다르다”며 “디지털 기술은 그 자체로 정보를 담고 있으며 우리가 생활하고 일하는 방식의 미래를 특징짓고 있다”고 지적했다. IT 서비스가 사람들이 생각하고 소통하고 일하는 방식 자체를 규정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IT에 기반한 다양한 서비스들이 어떠한 형태로 이용자들에게 제공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고도로 프로그래밍된 세상에서는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거나 아니면 소프트웨어로 전락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최근 각광받는 SNS는 이를 잘 보여준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는 이용자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올리고 다른 이용자와 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설계한다. 트위터의 한 메시지의 길이를 140자 이내로 제한하며 다른 이용자들과 팔로잉·팔로어 관계만을 맺을 수 있도록 제한한다.
#'인간성'이 희미해지는 시대
전통적인 ‘인간성(humanity)’의 의미도 급속히 변질되고 있다. 어떤 학생이 스마트폰으로 SNS에 계속 접속해 현재 위치를 기록하고, 만난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올리며, 이를 화제로 얘기를 주고 받는다고 하자. 셰리 터클 MIT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단순히 ‘연결’을 위해 ‘대화’를 희생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인터넷과 실제 대화는 상당히 다르다. 전자는 프로그램 속에서 몇 가지 정해진 양식에 따라 메시지를 주고 받는 데 그치지만, 후자는 미묘한 언어적인 맥락과 비언어적 표현들도 중요하다. 스마트폰을 통한 연결에 몰두하면 할수록 실제 대화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터클 교수의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인간의 지적능력마저 타격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네이버 구글 등 검색 엔진을 이용해 해답을 찾지만 이들 검색 엔진이 어떻게 해서 그런 결과를 내놓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검색엔진은 이용자의 과거 검색 기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우연한 조우나 갑작스런 발견 같은 상황은 좀체로 나타나지 않는다. 레이니어는 “컴퓨터는 인간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다음 더 경직된 형태로 배출해서 그 경직성 안에 살 수밖에 없도록 강요한다”고 비판했다. 제한된 정보만으로 구성된 디지털 세계에서 나올 수 있는 창조성이란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윤리적인 무감각성도 심각하다. 2008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 연구진은 휴대전화로 인공심장조율기를 해킹해 환자를 살해하는 방법을 2년간 연구해 한 정보보안 콘퍼런스에서 발표했다. 세탁기나 스키를 이용해 사람을 죽이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다면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을 것이다. 레이니어는 “엘리트들 사이에서 ‘윤리적 환각’이 만연돼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과연 새롭게 떠오르는 디지털 세계에서 인간은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조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claymore@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정보기술(IT)이 발전하면서 나타난 인간 소외 현상에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이러한 현상들은 불가피한 것인지 각자의 생각을 얘기해 보자.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요구되는지 토론해보자.
--------------------------------------------------------------
디지털 민주주의는 가능할까?
독일 정치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구조변동’이라는 책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토대인 ‘공론장’의 형성 과정을 추적했다. 하버마스는 여기서 상공업이 발전하면서 성장한 부르주아지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문예비평과 시사토론을 하던 ‘살롱’을 공론장의 시초로 보았다. 그는 여기서의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공중(le public)’으로 결집한 사적 개인들의 영역”이 생겨났다고 본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IT 기술의 확산으로 개인들이 자유롭게 모여 제약 없이 토론하는 이상적 공론장이 생겨날 것이라는 예측을 하버마스의 이론을 빌려 내놓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민주주의’의 등장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먼저 인터넷에서는 정치적인 의견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부족(tribe)’을 형성하는 힘이 더 세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실제로 국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들에서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거의 말을 섞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합리적인 토론을 벌인다는 공론장의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인터넷을 통해 집단적 의사 결집이 가능한지도 논란거리다. 현대 민주주의는 개인들의 정치적 의지가 정당이나 정치인을 중심으로 집단적으로 모여 작동한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타협하는 과정에 가깝다. 개인의 의사를 인터넷을 통해 직접 반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환상이란 얘기다. 더구나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주요 정책들은 전문가들의 연구와 토론을 거쳐 입안되기 마련이다. 디지털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은 인터넷의 ‘집단지성’이 이 과정에 주도권을 쥘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인간 역사에서 정보를 기록하고 전파하는 수단인 ‘매체(medium)’는 큰 역할을 했다. 대표적 매체 수단인 문자는 입에서 입으로 구전(口傳)되는 데 그쳤던 정보들을 반영구적인 상태로 저장하고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했다. 활자 인쇄술은 문자로 된 지식을 대중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인쇄기로 찍어낸 책은 근대 민주주의의 모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등은 대중 문화의 양상 자체를 바꾸었다.
#수평적'네트워크 사회'도래
정보기술(IT)의 발전은 일각에서 새로운 매체 혁명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확산되면서 인간의 소통 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여기서 핵심은 메시지의 수용자였던 사람들이 메시지의 생산자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이제 이용자들은 스스로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며 동영상을 촬영해 다른 이용자와 공유한다. 여기에 대해 스페인 출신의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은 개인, 집단, 정부 등이 수평적으로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평범한 대중들이 모여 새로운 차원의 지적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집단 지성’이라는 표현은 IT가 인간성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 것이라는 낙관론을 대표한다. 미국의 뉴미디어 전문가 클레이 서키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개인들이 여가 시간을 활용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인지잉여’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어떤 것이 아주 많아지면 그 집단은 새로운 행동 방식을 보인다”고 강조한다. 위키피디어 등 집단 협업의 사례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는 게 서키의 주장이다.
#인간의'기술 종속'우려
한편에서는 IT가 새로운 인간 소외 현상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져가고 있다. 미국의 미디어 전문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디지털 기술은 이전에 나타난 기술들과 현저히 다르다”며 “디지털 기술은 그 자체로 정보를 담고 있으며 우리가 생활하고 일하는 방식의 미래를 특징짓고 있다”고 지적했다. IT 서비스가 사람들이 생각하고 소통하고 일하는 방식 자체를 규정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IT에 기반한 다양한 서비스들이 어떠한 형태로 이용자들에게 제공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고도로 프로그래밍된 세상에서는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거나 아니면 소프트웨어로 전락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최근 각광받는 SNS는 이를 잘 보여준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는 이용자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올리고 다른 이용자와 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설계한다. 트위터의 한 메시지의 길이를 140자 이내로 제한하며 다른 이용자들과 팔로잉·팔로어 관계만을 맺을 수 있도록 제한한다.
#'인간성'이 희미해지는 시대
전통적인 ‘인간성(humanity)’의 의미도 급속히 변질되고 있다. 어떤 학생이 스마트폰으로 SNS에 계속 접속해 현재 위치를 기록하고, 만난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올리며, 이를 화제로 얘기를 주고 받는다고 하자. 셰리 터클 MIT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단순히 ‘연결’을 위해 ‘대화’를 희생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인터넷과 실제 대화는 상당히 다르다. 전자는 프로그램 속에서 몇 가지 정해진 양식에 따라 메시지를 주고 받는 데 그치지만, 후자는 미묘한 언어적인 맥락과 비언어적 표현들도 중요하다. 스마트폰을 통한 연결에 몰두하면 할수록 실제 대화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터클 교수의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인간의 지적능력마저 타격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네이버 구글 등 검색 엔진을 이용해 해답을 찾지만 이들 검색 엔진이 어떻게 해서 그런 결과를 내놓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검색엔진은 이용자의 과거 검색 기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우연한 조우나 갑작스런 발견 같은 상황은 좀체로 나타나지 않는다. 레이니어는 “컴퓨터는 인간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다음 더 경직된 형태로 배출해서 그 경직성 안에 살 수밖에 없도록 강요한다”고 비판했다. 제한된 정보만으로 구성된 디지털 세계에서 나올 수 있는 창조성이란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윤리적인 무감각성도 심각하다. 2008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 연구진은 휴대전화로 인공심장조율기를 해킹해 환자를 살해하는 방법을 2년간 연구해 한 정보보안 콘퍼런스에서 발표했다. 세탁기나 스키를 이용해 사람을 죽이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다면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을 것이다. 레이니어는 “엘리트들 사이에서 ‘윤리적 환각’이 만연돼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과연 새롭게 떠오르는 디지털 세계에서 인간은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조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claymore@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정보기술(IT)이 발전하면서 나타난 인간 소외 현상에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이러한 현상들은 불가피한 것인지 각자의 생각을 얘기해 보자.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요구되는지 토론해보자.
--------------------------------------------------------------
디지털 민주주의는 가능할까?
독일 정치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구조변동’이라는 책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토대인 ‘공론장’의 형성 과정을 추적했다. 하버마스는 여기서 상공업이 발전하면서 성장한 부르주아지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문예비평과 시사토론을 하던 ‘살롱’을 공론장의 시초로 보았다. 그는 여기서의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공중(le public)’으로 결집한 사적 개인들의 영역”이 생겨났다고 본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IT 기술의 확산으로 개인들이 자유롭게 모여 제약 없이 토론하는 이상적 공론장이 생겨날 것이라는 예측을 하버마스의 이론을 빌려 내놓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민주주의’의 등장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먼저 인터넷에서는 정치적인 의견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부족(tribe)’을 형성하는 힘이 더 세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실제로 국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들에서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거의 말을 섞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합리적인 토론을 벌인다는 공론장의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인터넷을 통해 집단적 의사 결집이 가능한지도 논란거리다. 현대 민주주의는 개인들의 정치적 의지가 정당이나 정치인을 중심으로 집단적으로 모여 작동한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타협하는 과정에 가깝다. 개인의 의사를 인터넷을 통해 직접 반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환상이란 얘기다. 더구나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주요 정책들은 전문가들의 연구와 토론을 거쳐 입안되기 마련이다. 디지털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은 인터넷의 ‘집단지성’이 이 과정에 주도권을 쥘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