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는 언제나 옳을까?
인간은 흔히 ‘이성적 동물’에 비유된다. ‘만물의 영장’이라고도 불린다. 굳이 데카르트나 칸트 같은 철학자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은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확연히 구분된다. 인간이란 존재가 고귀한 것도 바로 이성이나 합리성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모든 현상을 이성적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편견이나 선입견은 이성을 흐리게 하는 ‘사고의 오물들’이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삶의 방식 역시 그만큼 복합하고 다양해진다. 선악이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는 갈수록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마이클 프렐의 저서 ‘언더도그마’(underdogma)는 ‘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는 맹목적 신념은 건강한 사회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언더도그마적 존재?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나라 속담은 인간의 한 속성을 잘 풍자한다. 독일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남의 불행에서 얻는 행복) 등 세계적으로 ‘남이 잘되는 것을 배아파하는’ 인간의 심리를 비꼰 말들은 무수히 많다. 러시아에서 전해오는 옛날 이야기는 이런 인간의 심리를 잘 묘사한다. 우연히 마술램프를 발견한 농부가 램프를 문지르자 요정이 나타나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 농부는 “이웃집에 젓소가 한 마리 생겼는데 가족이 다 먹고도 남을 만큼 우유를 얻었고 결국 부자가 됐다”고 말한다. 그러자 요정이 “그럼 이웃집처럼 젓소를 한 마리 구해드릴까요? 아니면 두 마리라도?”하고 묻는다. 농부가 대답한다. “아니, 이웃집 젓소를 죽여주면 좋겠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남의 행복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맹목적으로 약자를 선으로 보고, 강자를 악으로 보는 이분법적 생각(언더도그마)도 근본적 뿌리는 여기에 있다. 감동을 주는 영화의 기본 시나리오는 선한 약자가 악한 강자를 물리치는 것이다. 신데렐라, 콩쥐팥쥐, 다윗과 골리앗의 공통점은 강자는 악하다는 것이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대중에게 ‘나는 행복하다’는 말보다 ‘어릴 적 불행한 이야기’를 들고 나온다.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인간성’을 더 어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마이크 프렐은 미국의 오프라 윈프리를 불행한 과거를 얘기해 대중의 인기를 끄는 대표적 인물로 꼽는다. 강자(overdog)보다 약자(underdog)가 이미지 관리가 더 쉽다는 논리다.
#권력은 언제나 타도 대상?
약자는 무조건적으로 옳고, 강자는 항상 악하다고 맹신하는 ‘언더도그마’는 인간의 본성 때문만은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의 ‘강자=악, 약자=선’이라는 상투적 구도가 무의식적으로 이런 맹목적인 선악판단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또한 경험에서 축적된 무의식이 강하게 작용했을 수도 있다. 약소국들을 괴롭힌 강대국들의 역사, 노예를 억압한 백인들의 야만성, 가난한 자들의 인권을 유린한 부자들의 횡포, 중소기업을 압박한 대기업들의 뉴스 등이 강한자는 언제나 옳지 않다는 편견을 심화시켰을 수도 있다. 언더도그마는 약자에 대한 본능적 동정, 학습, 경험 등이 어우러진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약자에게 맹목적으로 동정심을 느끼고 강자에게 무조건적으로 반감을 갖는 사례는 이스라엘이 대표적이다. 유대인들이 수천년간 조국이 없어 ‘지구의 미아’로 이곳저곳을 떠돌땐 그들은 동정의 대상이었고 선(善)의 표본이었다. 하지만 2차대전 후 꿈에 그리던 나라가 세워지고 중동의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이스라엘 역시 ‘강자=악’이라는 구도를 깨지 못했다. 팔레스타인의 테러를 막기 위해 이스라엘이 쌓은 장벽은 ‘이스라엘 판 인종정책’이라고 분노했지만 이집트가 똑같은 이유로 세운 장벽은 ‘자국민 보호의 상징’으로 여겼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잠시 ‘동정을 받는 국가’가 됐지만 불과 몇 개월 뒤에는 언더도그마에 의해 테러리스트들보다 더 악한 국가로 내몰렸다. 언더도그마는 힘의 상징인 권력을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힘은 곧 악’이라는 맹목적 편견 때문이다.
#환경은 언제나 약자일까?
언더도그마는 환경과 인간을 대립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강자인 인간은 언제나 약자인 환경을 파괴만 한다고 생각한다. 극단적 언더도그마는 인간과 대자연의 균형을 바로 잡으려면 지구상의 인구가 절대적으로 줄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울 에를리히는 1968년 베스트셀러 ‘인구 폭탄’이라는 책에서 “인구대책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출산율을 낮추는 산아제한이고, 또 하나는 기아나 전쟁, 전염병 등을 통해 사망률을 높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환경보다는 인간의 가치를 더 아래에 둔 것이다. 그는 세상에는 인간이 편안하게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기에 충분한 공간과 지혜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자연과 인간은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며 함께 살아가야 할 지구촌의 동반자다. 자연과 인간이 갈등할 때 맹목적으로 인간만이 옳지 않다는 생각 역시 언더도그마적 편견일 수 있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약자가 무조건 옳다는 생각이 어떤 오류가 있는지를 논의해 보자. 선악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잣대가 확산되는 이유를 생각해 보고 현상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도 토론해 보자.
*참고 자료: 언더도그마(마이클 프렐 지음, 지식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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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도그마의 속성은 '이성의 마비'
이스라엘 지도 크기 바꿔 봤더니 …
언더도그마의 특징은 합리적 사고는 무시하고 사실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2007년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의 조지프 반델로는 언더도그에 관한 아주 간단한 실험을 했다. 실험 대상자를 A, B 두 그룹으로 나눈 다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을 양측의 시각으로 설명한 한쪽짜리 글을 읽게 했다. 그런 다음 A그룹에는 이스라엘이 커보이는 지도를 보여주고, B그룹에는 이스라엘이 작아보이는 지도를 보여줬다. 같은 국가에 대해 같은 정보를 제공하고, 유일하게 다른 점은 지도의 크기였다.
지도를 보여준 뒤 실험 참가자들에게 “어느 쪽을 언더도그(약자)로 보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스라엘이 커보이는 A지도를 받아본 참가자들은 70%가 팔레스타인을 언더도그로 판단했다. 반면 B지도를 본 그룹은 62.1%가 이스라엘을 언더도그라고 답했다. 이번에는 같은 참가자들에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고 물었다. 이스라엘이 큰 지도를 본 A그룹의 53.3%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했고, B그룹의 76.7%는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이 실험은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판단할 때 사실 이외의 다른 요인들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두 그룹에는 동일한 정보가 담긴 정보가 제공됐지만 사실과는 관계없는 지도의 크기에 따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이는 성서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정확히 모르면서도 ‘(몸집이 훨씬 왜소한)다윗이 옳고 선이다’는 선입견을 갖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간은 흔히 ‘이성적 동물’에 비유된다. ‘만물의 영장’이라고도 불린다. 굳이 데카르트나 칸트 같은 철학자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은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확연히 구분된다. 인간이란 존재가 고귀한 것도 바로 이성이나 합리성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모든 현상을 이성적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편견이나 선입견은 이성을 흐리게 하는 ‘사고의 오물들’이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삶의 방식 역시 그만큼 복합하고 다양해진다. 선악이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는 갈수록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마이클 프렐의 저서 ‘언더도그마’(underdogma)는 ‘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는 맹목적 신념은 건강한 사회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언더도그마적 존재?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나라 속담은 인간의 한 속성을 잘 풍자한다. 독일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남의 불행에서 얻는 행복) 등 세계적으로 ‘남이 잘되는 것을 배아파하는’ 인간의 심리를 비꼰 말들은 무수히 많다. 러시아에서 전해오는 옛날 이야기는 이런 인간의 심리를 잘 묘사한다. 우연히 마술램프를 발견한 농부가 램프를 문지르자 요정이 나타나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 농부는 “이웃집에 젓소가 한 마리 생겼는데 가족이 다 먹고도 남을 만큼 우유를 얻었고 결국 부자가 됐다”고 말한다. 그러자 요정이 “그럼 이웃집처럼 젓소를 한 마리 구해드릴까요? 아니면 두 마리라도?”하고 묻는다. 농부가 대답한다. “아니, 이웃집 젓소를 죽여주면 좋겠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남의 행복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맹목적으로 약자를 선으로 보고, 강자를 악으로 보는 이분법적 생각(언더도그마)도 근본적 뿌리는 여기에 있다. 감동을 주는 영화의 기본 시나리오는 선한 약자가 악한 강자를 물리치는 것이다. 신데렐라, 콩쥐팥쥐, 다윗과 골리앗의 공통점은 강자는 악하다는 것이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대중에게 ‘나는 행복하다’는 말보다 ‘어릴 적 불행한 이야기’를 들고 나온다.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인간성’을 더 어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마이크 프렐은 미국의 오프라 윈프리를 불행한 과거를 얘기해 대중의 인기를 끄는 대표적 인물로 꼽는다. 강자(overdog)보다 약자(underdog)가 이미지 관리가 더 쉽다는 논리다.
#권력은 언제나 타도 대상?
약자는 무조건적으로 옳고, 강자는 항상 악하다고 맹신하는 ‘언더도그마’는 인간의 본성 때문만은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의 ‘강자=악, 약자=선’이라는 상투적 구도가 무의식적으로 이런 맹목적인 선악판단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또한 경험에서 축적된 무의식이 강하게 작용했을 수도 있다. 약소국들을 괴롭힌 강대국들의 역사, 노예를 억압한 백인들의 야만성, 가난한 자들의 인권을 유린한 부자들의 횡포, 중소기업을 압박한 대기업들의 뉴스 등이 강한자는 언제나 옳지 않다는 편견을 심화시켰을 수도 있다. 언더도그마는 약자에 대한 본능적 동정, 학습, 경험 등이 어우러진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약자에게 맹목적으로 동정심을 느끼고 강자에게 무조건적으로 반감을 갖는 사례는 이스라엘이 대표적이다. 유대인들이 수천년간 조국이 없어 ‘지구의 미아’로 이곳저곳을 떠돌땐 그들은 동정의 대상이었고 선(善)의 표본이었다. 하지만 2차대전 후 꿈에 그리던 나라가 세워지고 중동의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이스라엘 역시 ‘강자=악’이라는 구도를 깨지 못했다. 팔레스타인의 테러를 막기 위해 이스라엘이 쌓은 장벽은 ‘이스라엘 판 인종정책’이라고 분노했지만 이집트가 똑같은 이유로 세운 장벽은 ‘자국민 보호의 상징’으로 여겼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잠시 ‘동정을 받는 국가’가 됐지만 불과 몇 개월 뒤에는 언더도그마에 의해 테러리스트들보다 더 악한 국가로 내몰렸다. 언더도그마는 힘의 상징인 권력을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힘은 곧 악’이라는 맹목적 편견 때문이다.
#환경은 언제나 약자일까?
언더도그마는 환경과 인간을 대립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강자인 인간은 언제나 약자인 환경을 파괴만 한다고 생각한다. 극단적 언더도그마는 인간과 대자연의 균형을 바로 잡으려면 지구상의 인구가 절대적으로 줄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울 에를리히는 1968년 베스트셀러 ‘인구 폭탄’이라는 책에서 “인구대책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출산율을 낮추는 산아제한이고, 또 하나는 기아나 전쟁, 전염병 등을 통해 사망률을 높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환경보다는 인간의 가치를 더 아래에 둔 것이다. 그는 세상에는 인간이 편안하게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기에 충분한 공간과 지혜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자연과 인간은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며 함께 살아가야 할 지구촌의 동반자다. 자연과 인간이 갈등할 때 맹목적으로 인간만이 옳지 않다는 생각 역시 언더도그마적 편견일 수 있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약자가 무조건 옳다는 생각이 어떤 오류가 있는지를 논의해 보자. 선악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잣대가 확산되는 이유를 생각해 보고 현상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도 토론해 보자.
*참고 자료: 언더도그마(마이클 프렐 지음, 지식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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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도그마의 속성은 '이성의 마비'
이스라엘 지도 크기 바꿔 봤더니 …
언더도그마의 특징은 합리적 사고는 무시하고 사실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2007년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의 조지프 반델로는 언더도그에 관한 아주 간단한 실험을 했다. 실험 대상자를 A, B 두 그룹으로 나눈 다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을 양측의 시각으로 설명한 한쪽짜리 글을 읽게 했다. 그런 다음 A그룹에는 이스라엘이 커보이는 지도를 보여주고, B그룹에는 이스라엘이 작아보이는 지도를 보여줬다. 같은 국가에 대해 같은 정보를 제공하고, 유일하게 다른 점은 지도의 크기였다.
지도를 보여준 뒤 실험 참가자들에게 “어느 쪽을 언더도그(약자)로 보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스라엘이 커보이는 A지도를 받아본 참가자들은 70%가 팔레스타인을 언더도그로 판단했다. 반면 B지도를 본 그룹은 62.1%가 이스라엘을 언더도그라고 답했다. 이번에는 같은 참가자들에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고 물었다. 이스라엘이 큰 지도를 본 A그룹의 53.3%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했고, B그룹의 76.7%는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이 실험은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판단할 때 사실 이외의 다른 요인들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두 그룹에는 동일한 정보가 담긴 정보가 제공됐지만 사실과는 관계없는 지도의 크기에 따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이는 성서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정확히 모르면서도 ‘(몸집이 훨씬 왜소한)다윗이 옳고 선이다’는 선입견을 갖는 것과 같은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