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는 언제나 옳을까?

지구촌 어느 곳에든 둥지를 트는 ‘언더도그마’(약자는 무조건 선하다는 맹목적 믿음)는 정치·경제적으로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대기업을 무조건적으로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것, 부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 권력을 타도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도 그 근저에는 언더도그마가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객관적 사실이 우선이다. 기업의 크고 작음, 권력의 강하고 약함, 부(富)의 많고 적음 자체가 선악을 구별하는 절대적 잣대가 되는 것은 곤란하다. 이성과 합리는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성과 합리적 판단이 언더도그마에 밀려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사회는 소위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으로 흐르게 된다.

#1등 기업은 언더도그마 주타깃

[Cover Story] 대기업을 보는 편견…포퓰리즘 영향도 크죠!
크고 강한 것을 악하다고 보는 언더도그마는 기업을 보는 관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기업이 커질수록 그 기업은 언더도그마의 타깃이 된다. 일본의 도요타자동차가 대표적 케이스다. 2009~2010년 세간의 이목을 끈 리콜(제품에 결함이 있을 때 해당 제조회사가 그 제품을 수리해 주는 것) 사태로 도요타 주식은 폭락하고 회장은 허리를 굽혀 소비자들에게 용서를 구해야했다. 도요타는 이전에도 수차례 리콜을 실시했다. 하지만 2009년처럼 집중포화를 맞은 적은 없었다. 이유는 뭘까. 해답은 도요타가 너무 커졌다는 것이다. 그해 초 도요타가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서면서 언더도그마의 타깃이 된 것이다.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가 입수한 내부 문건에 따르면 도요타는 2007년에 이미 업계 1위가 되는 데 따른 언더도그마주의자들의 비난을 예상했다고 한다. 2010년 7월, 당시 애플사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회사 창립 이래 유례없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자세를 낮춰 아이폰4의 수신불량 문제를 인정했다. 2008년에도 애플 제품에 수신문제가 있었지만 그때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이유는 뭘까. 언더도그마의 저자 마이클 프렐은 “2010년 5월, 애플이 시가총액에서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회사였던 마이크로소프트(MS)를 추월했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한다. 애플이 덩치가 커지고 힘이 세지면서 ‘오버도그’(강자)가 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대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 이에 대한 책임은 물론 기업에도 있겠지만 언더도그마적 시각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언더도그마 악용하는 정치권

언더도그마는 흔히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도구다. 자신들을 약자라고 생각하는 다중과 강자라고 여겨지는 소수를 대립시킴으로써 다중의 표를 얻는 수법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인들은 대중으로부터 표를 얻기 위해 인기영합적인 슬로건을 제시한다.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언더도그를 ‘싸움이나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 또는 패배가 예상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사회 약자와 실패자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더도그마의 마력 때문에 정치인들은 정작 자신들의 이미지에 ‘언더도그’ 타이틀을 달고 싶어한다. 유권자들이 자신을 약자로 인식할수록 소위 ‘동정표’가 몰린다는 판단에서다.

정치적 언더도그마는 때로 경제에도 부담을 준다. 경제원리를 무시하고 대중의 표심만을 노린 정책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프렐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도 언더도그마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정치인들이 인기를 얻기 위해 자격이 미달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주택담보대출을 해주도록 금융권을 압박함으로써 금융불안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저축은행 사태도 따지고 보면 언더도그마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갈등의 골 메워야 건강한 사회

언더도그마가 극성을 부리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사회에 합리성이나 이성적 사고의 공간이 그만큼 좁기 때문이다. 언더도그마가 극으로 치달으면 약자의 살인행위나 테러행위조차도 때론 미화된다. 힘있는 자에 의해 행해진 일은 음모론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인간의 존엄성이 대중심리에 의해 한순간에 매몰될 수도 있다. 언더도그마가 확산되는 것은 ‘공감 능력’ 때문이라고 프렐은 지적한다. 약자에 대한 아픔을 이해하는 공감이 강할수록 ‘약자는 선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공감 능력은 획일적인 전체주의 국가보다는 개인주의적 사회에서 더 강하다고 말한다. 소통을 통해 남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커질 때 공감 능력도 확대된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소통이 잘되는 민주적인 사회일수록 언더도그마를 더 경계해야 하는 셈이다.

언더도그마를 누그러뜨리는 최선의 방법은 물질적이든 심리적이든 약자와 강자 간 갈등의 골을 메우는 것이다. 빈부격차 축소, 가진 자의 도덕성 회복,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생, 인간과 자연의 조화 등이 언더도그마의 천적들이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약자는 항상 옳다’는 언더도그마가 기업관을 왜곡시키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정치인들은 언더도그마를 어떻게 악용하는지 토론해 보고, 언더도그마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해 보자.

*참고 자료:언더도그마(마이클 프렐 지음, 지식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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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작고 겸손합니다"… 기업들의 몸 낮추기 마케팅

[Cover Story] 대기업을 보는 편견…포퓰리즘 영향도 크죠!
언더도그마는 회사의 마케팅 전략에도 영향을 미친다. 회사와 소비자 사이에서도 힘의 차이는 항상 존재해왔다. 회사는 크고 힘이 세지만, 소비자는 작고 힘도 약하다. 회사가 너무 큰 것처럼 행동하면 회사의 거대함은 언더도그마주의자들에 의해 비난의 대상이 된다.

언더도그마주의자의 비난을 피하는 대기업의 첫 번째 전략은 ‘겸손해지기’다. 도요타가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가 됐을 때 도요타 대변인 폴 놀라스코는 한껏 자세를 낮췄다. “우리 목표는 세계 자동차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 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입니다”라고. 광고 문구도 겸손해진다. 세계 최고, 글로벌시장 장악 등 오버도그를 연상시키는 표현은 줄어들고 ‘믹서기 한 대와 꿈만으로’(음료회사 낸터킷 넥타스), ‘작게 생각하라’(폭스바겐) 등 고객들이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문구가 늘어난다. 작고, 겸손하고, 정성을 다한다는 이미지를 담는다. 언더도그마에 대응하는 기업들의 또 다른 전략은 언더도그마주의자들의 불씨를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다. 잠재적 공격시점을 파악해 이를 막기 위한 사전 홍보전략을 짜는 것이다. 도요타가 2009년 미국 내에 공장을 짓고 현지 근로자를 고용하면서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기업은 국력’이라는 공식은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진리다. 기업이 덩치가 크고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사물을 보는 합리적 시각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