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 '코리안'…Boys, be ambitious!

국제기구에서 한국인들의 활동이 눈부시다. 2006년 초 당시 반기문 외교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만 해도 세계인들은 그저 무모한 도전쯤으로 여겼다.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대한민국이 아시아를 대표하기엔 영토의 크기나 국력에서 게임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그해 10월 지구촌은 한국인의 저력에 깜짝 놀랐다. 한국이 유엔에 가입한 지 불과 15년 만에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된 것이다. 김용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이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던 세계은행 총재직에 지명된 것도 한국인이 이룬 또 하나의 쾌거다. 이로써 세계 국제기구 ‘빅3’(유엔 세계은행 IMF) 중 두 곳을 한국인이 차지하게 됐다. 한국인이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열정과 지식이 바탕이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면서 국제사회가 한국인에게 문호를 넓혀주고 있는 것도 한 이유다.

[Cover Story] '코리안'의  눈부신 약진…유엔 이어 세계은행도 꿰차다

#코리안, 국제기구 중심으로

유엔이나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 등은 대표적 국제기구다. 유엔은 글로벌 정치지형을 좌지우지하는 실질적이면서도 상징적인 기구다. IMF는 경제위기 국가들에 구세주이자 때론 저승사자와도 같은 존재다.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에 경제개발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자금을 장기 저리로 제공하는 것이 주업무다. WTO는 국제 무역질서의 심판자다. 이 중 ‘세계기구 빅3’로 불리는 곳은 유엔 세계은행 IMF다.

2006년 10월 반기문 외교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됐을 때 대한민국은 환호했다. 그가 이룬 쾌거는 한국인을 넘어 아시아인의 자랑이었다. 국제사회에서 코리안의 약진을 상징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코리아라는 국가브랜드 가치도 함께 높아졌다. 앞서 2003년엔 이종욱 박사가 세계보건기구(WHO) 제6대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김용 총장이 세계은행 총재에 지명된 것은 국제사회에서 ‘코리안’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케이스다. 이종욱 전 총장, 반기문 총장 등의 글로벌 리더십이 호평을 받은 것도 국제사회가 한국인에게 문호를 활짝 개방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계의 국제기구 장악은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경제발전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글로벌 지식·열정으로 정상

국제무대에서 한국인의 활약은 국제기구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지식을 전파하는 학자, 병원에서 의술을 펼치는 의사, 정치인, 예술인 등 분야도 다양하다.

특히 부모님을 따라 어릴 적에 미국으로 이민 온 한인 1.5세대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한 김용 총장을 비롯해 한국인 최초로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한 성 김, 미국 벨연구소 역대 최연소 및 최초 외부인 출신 소장인 김종훈, 석지영 하버드 로스쿨 종신교수, 세계적 패션디자이너 두리 정 등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인 1.5세대다.

한인 1.5세대 성공 스토리의 키워드는 목표의식, 열정, 다문화, 글로벌 지식 등이다. 김용 총재 지명자는 자신의 성공을 실용과 거대담론이라는 두 줄기로 설명한다. 그가 브라운대에 다닐 때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철학이나 정치학을 공부하겠다”는 그의 대답에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해도 좋지만 (의대)인턴은 끝마쳐라. 한국계로서 미국에서 살려면 기술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어머니는 “위대한 것에 도전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실용과 이상의 조화가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이민 1세대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과 적극적 동기부여, 언어소통도 1.5세대의 강점이다. 한인 1.5세대의 성공 키워드는 자신의 꿈을 국제무대에서 펼쳐보려는 한국의 청소년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공식이다. 압축하면 도전 정신과 열정이다. 밤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던 김종훈 소장이 공학박사를 2년 만에 마치고 미국 내 400대 부자 반열에 오른 것은 도전정신의 가치가 얼마나 무한한지를 잘 보여준다.

#대한민국 브랜드도 원군

한국인의 국제무대 진출은 물론 개인의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이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용 총장이 미국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수전 라이스 유엔주재 대사, 존 케리 미 상원의원,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세계은행 총재에 지명된 것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것을 의미한다. 국제사회에서 한 국가의 위상을 좌우하는 것은 경제력이 핵심이다. 정치·문화도 국가 브랜드의 주요 요소다.

국제사회에서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도 한국인의 국제무대 진출에 기회가 된다는 분석이다. 한국인의 국제기구 진출은 국제사회에서 ‘코리안’의 이미지를 높이고 이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을 더 넓혀주는 선순환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논술 포인트>

한국인들이 국제무대에서 활약이 두드러진 이유를 토론해 보자. 국제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자.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브랜드를 높이는 방안을 논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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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계 첫총장… 결핵·에이즈치료 공헌

김용 세계은행총재 내정자는…

[Cover Story] '코리안'의  눈부신 약진…유엔 이어 세계은행도 꿰차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 내정자는 아시아인으로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또 한번의 역사를 쓴 인물이다. 세계은행 66년 역사에서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던 총재직을 아시아인이 차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2009년 미국 아이비리그(동부 명문 대학)의 다트머스대 총장에 오를 때도 미국 사회에서 인종의 장벽을 깨고 200여년이 넘는 미국 아이비리그 역사에서 ‘최초의 아시아인’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김 총재 내정자의 부친 김낙희 씨(별세)는 6·25전쟁 당시 17세의 나이로 혈혈단신 북한에서 피란와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와 아이오와대학 치의학 분야에서 활동했다. 모친 김옥숙 씨는 경기여고 수석 졸업생으로 역시 아이오와대학에서 퇴계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땄다. 김 총재 내정자가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한 것은 5살 때다.

김 총재 내정자의 삶은 한마디로 열정과 도전이었다. 하버드대 의대에 재직할 당시 중남미와 러시아 등의 빈민지역에서 결핵 치료를 위한 신규 모델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뒀다. 2004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을 맡아 30만명이던 후진국의 에이즈 누적 치료자 수를 130만명으로 획기적으로 늘렸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2006년 타임), ‘미국의 최고 지도자 25명’(2005년 US 뉴스 앤 월드리포트) 등에 선정됐고, ‘천재상’으로 불리는 맥아더펠로상(2003년)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지역에서 자라면서 설움도 겪었다”며 “이를 보다 큰 비전과 용기로 바꿔 도전하면서 극복했다”고 했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