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인류 위협하는 '공포의 균형'…핵은 에너지로만 써야
‘가공할 무기’와 ‘청정 에너지’는 핵의 두 얼굴이다. 플루토늄과 우랴늄이라는 원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핵의 용도가 달라진다. 고효율 청정에너지로 불리는 원자력으로 삶을 풍요롭게 할 수도 있지만 핵무기로 둔갑 땐 지구촌에 공포의 대상이 된다. 핵 보유로 전쟁을 억지하겠다는 일명 ‘공포의 균형’은 위험한 발상이다. 공포나 두려움을 가중시켜 상대방의 행위를 제어하는 상호억제체제지만 한순간의 판단착오로 인류를 파멸로 몰아갈 수 있는 위험한 균형이다. 핵위협 없는 지구촌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다.

#자정으로 향하는'운명의 날 시계'

‘운명의 날 시계’는 핵과학자들이 핵으로 인한 인류 멸망의 긴박감을 경고하기 위한 상징적 장치다. 이 시계가 자정에 가까울수록 인류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의미한다. ‘운명의 날 시계’를 관장하는 미국 핵과학자회보(BAS)는 지난 1월10일 이 시계의 분침을 1분 앞당겨 자정 5분 전으로 조정했다. 2010년 1월14일 11시54분으로 맞춰놓은 시계를 ‘인류 멸망위험’쪽으로 1분만큼 이동시킨 것이다. 미국의 폭스뉴스는 북한의 지속적인 핵 개발과 함께 핵 확산 가능성도 한 원인이 됐다고 보도했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서울에 모인 것은 자정으로 향해가는 ‘운명의 날 시계’를 조금이라도 늦추거나 되돌리기 위함이다.

핵군축, 핵비확산, 핵안보는 결국 인류를 핵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평화로운 지구촌을 건설하려는 노력들이다.

# 아슬아슬한'공포의 균형'

러시아와 미국은 대표적 핵무기 강국이다. 러시아는 핵탄두 수가 1만1000여개에 달하고 미국은 8500개 정도다. 군사대국을 꿈꾸는 중국은 240개 정도로 러시아와 미국에는 훨씬 못 미친다. 프랑스와 영국은 중국과 엇비슷한 수의 핵탄두를 갖고 있다. 국경을 맞대고 핵경쟁을 벌이는 인도와 파키스탄은 각각 100개 안팎이다. 전문가들은 보유 여부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도 80개 정도의 핵탄두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이들 국가는 현재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랴늄 2000t 정도를 갖고 있어 맘만 먹으면 수백개의 핵탄두를 쉽게 만들 수 있다.

군사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 핵무기 보유국들에 적대적인 국가나 단체는 핵무기를 보유해 이들 국가에 맞서고자 하는 욕구를 갖는다. 이른바 ‘공포의 균형’이다. “네가 쏘면 나도 쏜다”는 공포감을 조성해 선제적 공격을 못하게 압박한다는 논리다. 핵무기가 중심이 되는 공포의 균형은 일반적인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과는 다르다. 힘의 균형은 말 그대로 경제력이나 (재래식)군사력 측면에서 비슷한 힘을 갖춰야 되지만 공포의 균형은 핵무기 수가 균형이 이루지 않아도 성립된다. 북한이 10개의 핵탄두만 있다고 가정해도 80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미국과 공포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핵무기의 살상력이 그만큼 엄청나기 때문이다. 테러단체들이 핵무기를 보유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바로 이런 불균형의 유혹 때문이다.

# 핵주권론의 함정

국가나 테러단체들이 핵을 보유하고 싶어하는 것은 한마디로 효율성과 파괴력 때문이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재래식 무기를 만드는 대신 핵무기를 보유하면 국방비를 줄이면서도 군사대국임을 뽐낼수 있다. 선제공격이 아니라도 예상되는 적대국가들의 공격으로부터도 ‘단단한 방어막’을 칠 수도 있다. 북한 이란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과 테러단체들이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핵을 보유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유다. 또 하나는 핵무기의 상품화다. 핵무기를 기술력이 미약한 국가나 특정 단체에 팔아 돈을 벌겠다는 속셈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보유를 가장 경계하는 것도 이런 우려가 짙게 깔려있다.

핵보유를 정당화하려는 핵심논리는 ‘핵주권론’이다.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영국 등 강대국들은 버젓이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다른 국가들에 이를 만들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다. 언뜻 일리가 있는 듯한 말이다. 하지만 핵은 한 국가의 주권을 넘어 인류의 평화라는 좀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핵주권론대로 지구촌 모든 국가들이 핵무기를 보유한다면 어떨게 될까. 누구도 세상이 그만큼 평화로워졌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주권론의 함정은 책임론이다. 평화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책임의식없이 주권론만을 주장하는 것은 의무는 회피한 채 권리만 주장하는 격이다. 북한의 핵으로 한반도 정세가 그만큼 더 불안해진 것이 이를 반증한다. 핵은 어떤 경우에도 평화를 위협하는 무기로 쓰여서는 안된다. 궁극적으로 지구상의 모든 핵은 무기가 아닌 에너지로만 사용돼야 한다. 핵무기의 비확산도 중요하지만 세계 평화를 위해 핵보유국들도 지혜로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논술 포인트>

청정에너지와 무기라는 핵의 이율배반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보자. 지구촌이 핵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지혜를 모야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 ‘공포의 균형’이란 의미와 이의 함정을 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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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눈물

[Cover Story] 인류 위협하는 '공포의 균형'…핵은 에너지로만 써야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미국은 독일 나치의 항복을 받아낼 결정적 카드에 골몰했다. 강력한 원자폭탄을 만들어 독일에 결정타를 가한다는 ‘맨해튼 프로젝트’가 탄생한 배경이다. 당시엔 독일이 이미 원자폭탄을 만들었다는 루머가 돌고 있는 상황이어서 미국의 상황은 절박했다. 미 정부는 국내의 내로하하는 물리학자들을 총동원해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프로젝트의 과학기술 총책임을 맡았다. 명석한 두뇌의 오펜하이머는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독재정권을 혐오했다.

그는 핵무기의 살상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유대인 인종청소를 자행하는 나치 독일을 응징하고 유럽을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키는데는 핵무기가 최선이라는 데 미 정부와 의견을 같이했다. 독일은 핵무기 개발 이전에 손을 들었다. 새로운 목표물을 찾던 미국에 진주만을 급습한 일본이 걸려들었다.

오펜하이머는 미 정부로부터 가급적 치명타를 입혀 전 세계에 핵무기의 위력을 과시할 지역을 선정하라는 명을 받았고, 결국 일본 히로시마가 비극의 땅이 되었다. 피해는 오펜하이머 자신도 놀랄 정도로 상상을 초월했다. 그는 핵무기로 중무장하려는 미국을 향해 위험성을 경고하는데 앞장섰다. “내손에 피가 묻었다”며 핵이라는 신무기에 들뜬 당시 트루먼 대통령에게 핵무기 제조를 눈물로 만류했지만 그는 ‘철없는 울보’ 정도로 치부됐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화려한 명성을 얻는 그는 그후 아이젠하워가 이끈 공화당 정부에 의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인물이라는 딱지까지 붙으면서 끝없이 추락했다. 핵이라는 무기를 인류에게 쥐어주었지만 정작 본인과 인류에겐 비극의 씨앗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