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핵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켄타우로스는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인간이면서 괴수였다. 온전한 인간도, 온전한 괴수도 아니고 해칠 능력이 있으면서도 선(善)을 추구한 존재였다. 마치 화학의 양면성처럼….”

1981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철학하는 화학자’ 로알드 호프먼의 말이다. 폴란드 출신 미국인인 그는 화학을 켄타우로스에 비유해 과학의 양면성을 지적한다. 과학은 문명의 열쇠이면서 때론 재앙의 근원이 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개발된 질소 비료는 농업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하지만 ‘공기에서 식량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된 이 연구는 끔찍스런 독일군의 유대인 학살에 악용됐다.

‘깨끗한 에너지(원자력)’와 ‘가공할 살상무기(핵무기)’는 과학의 결정체격인 핵의 두 얼굴이다. 핵은 공기를 오염시키지 않는 고효율 청정에너지다. 하지만 인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공포스런 살상무기로 둔갑하기도 한다. 핵은 자원고갈의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잘못 다루면 인류문명의 싹을 틔운 불처럼 한순간에 화마(火魔)로 변한다.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핵에너지의 위험성을 일깨워준 대표적 사례다.

핵무기는 지구촌의 또 다른 공포다. 핵은 가공할 공격무기이면서 가장 효율적인 방어무기다. 군사대국임을 자부하는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은 막강한 핵무기를 자랑한다. 그들은 핵무기가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을 키운다고 생각한다.

핵이 유용한 협상카드라는 믿음도 강하게 깔려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핵개발을 고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약소국가나 테러집단도 핵무기 보유에 강한 유혹을 느낀다. 약소국가는 핵주권론을 내세우고, 테러집단은 핵을 적대적 강대국에 대항할 유일한 무기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들이 어우러져 지구촌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핵무기 상호보유가 전쟁억지력이 된 상태)이라는 위험한 발상이 자리한다. 하지만 공포의 균형은 엄청난 리스크를 수반한다. 경찰에 쥐어진 권총은 치안의 도구지만, 강도가 든 권총은 살상 무기다. 핵무기없는 평화로운 지구촌은 인류 모두가 꿈꾸는 세상이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26, 27일)는 두 얼굴을 가진 핵을 얼마나 안전하고 유익하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글로벌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는 자리다. 특히 이번 회의는 분단과 갈등의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는 한반도의 중심 서울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에 드리운 핵의 공포를 걷어내고 평화의 기운을 돋우는 축제의 한마당이 되기를 기원한다. 4, 5면에서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의미와 ‘무기와 에너지’라는 핵의 양면성을 자세히 알아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