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민주주의 꽃피우는 '선거'…  올바른 선택은 유권자의 몫
선거는 민주주의의 척도다. 올바른 선거제도는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킴은 물론 경제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취약한 선거제도에선 자유, 인권, 다양성, 법치, 도덕, 관용, 비폭력 등 사회의 미덕도 뿌리를 깊게 내리기 어렵다. 선거가 정치적 제도지만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는 파급력은 엄청나다. 선거제도가 하드웨어라면 유권자는 소프트웨어다. 잘 갖춰진 하드웨어에 어떤 내용을 채우느냐는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굴절많은 우리나라 선거제도

우리나라 최초의 선거는 고구려 건국초기 주몽을 동명성왕으로 추대하던 시기라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그 후 신라의 화백제도나 백제의 정사암회의 등도 다수결과 비밀의 원칙이 지켜진 일종의 선거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근대적 의미의 우리나라 선거는 1948년 7월17일 제헌헌법에 따라 그달 20일 치러진 대통령선거다. 하지만 이는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한 것이 아니라 국회 간접선거로 초대 대통령을 뽑았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고, 1952년 직선제로 치러진 2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 대통령이 74.6%라는 압도적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선거는 1948년 5월11일 치러진 총선이다. 이때의 투표율은 무려 95.5%에 달했다. 억압된 유권자들의 민의가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맘껏 분출된 결과다. 63%에 그쳤던 2007년 대선 투표율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에서 내각책임제가 실시된 건 제2공화국이 유일하다. 1960년 4·19로 탄생해 이듬해 5·16 때까지 짧게 존속한 제2공화국 땐 민·참의원 합동회의에서 간선제로 윤보선 대통령을, 장면 총리를 각각 선출했다. 박정희 등 5·16 주체세력은 국민투표를 통해 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제3공화국을 출범시켰다. 직선제 헌법에 의거해 1964년, 1967년 대선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당선됐다. 1969년엔 대통령 3선연임을 골자로 하는 개헌을 단행했고 박 대통령은 1971년 7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72년 10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골자인 유신헌법을 제정해 박 대통령은 8, 9대 대통령에도 선출됐다. 1979년 10·26사태로 박 대통령이 사망하자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을 10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해 12·12사태로 정국주도권을 장악한 전두환 당시 국보위 상임위원장은 통일주체국민회의 투표로 1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80년 10월 임기 7년 단임과 대통령 간선제가 골자인 헌법개정안을 공포하고 1981년 2월 대통령선거인단 투표에 의해 12대 대통령에 다시 당선됐다. 1987년 6·29선언으로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로 헌법이 다시 개정되고 그해 12월 노태우 대통령이 13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며 제6공화국 시대를 열었다. 그 후 김영삼 대통령(14대), 김대중 대통령(15대), 노무현 대통령(16대)을 거쳐 현재 이명박 대통령(17대)에 이르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제도는 짧은 역사에 비해 굴곡이 심한 편이다. 그만큼 정치적 역정이 험난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역사는 유권자가 바꾼다

역사는 선거가 바꾼다. 선거의 주인공은 유권자다. 깨어 있는 유권자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국가의 부(富)를 키운다. 정의, 법치, 자유, 배려 등 사회의 미덕이 자라나는 토양도 결국 유권자가 가꾼다. 단순히 당선을 위해 외쳐대는 구호, 국가보다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책, 국가의 지속적 번영을 해치는 현혹적 수사 등을 구별하는 혜안을 갖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유권자가 자신들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대중의 어리석음’이라는 함정에 빠진다. 다수결이 민주주의를 이끄는 기본원리지만 다수결이 중요한 진짜 이유는 수의 많음보다는 다양함 때문이다. 현혹적 구호에 매몰된 다수는 자칫 국가의 백년대계를 흔든다.

공명한 선거는 또 하나의 과제다. 자유 보통 비밀 직접이라는 선거의 4대 원칙이 지켜지는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은 정치권의 몫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 자유당 정권시절 3·15 부정선거 등 선거사에 아픔의 얼룩이 있다. 구조적 부정선거가 아니라도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권력도 민주주의라는 포장으로 민의를 왜곡시킨다. 화려한 수사로 유권자를 유혹하는 무책임한 정치권도 때때로 선거의 본질을 흐린다. 표면적으로 선거의 4대 원칙이 지켜지는 러시아를 참된 민주주의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권위적 권력구조와 편향적인 대중매체 때문이다. 정치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진짜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것은 자유롭고 공명한 선거”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4·11 총선을 대한민국을 정치·경제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핵심 잣대다.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는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논술 포인트

우리나라의 선거제도 변천과정을 살펴보고 선거와 정치발전의 관계를 생각해 봅시다. 공명한 선거를 위한 정부와 유권자의 역할을 논의해 봅시다. 다가오는 4·11총선의 의미를 깊이 있게 토론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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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를 자기 입맛에 맞게 제멋대로…

'게리맨더링'이 뭐지?

선거구는 특정 정당은 물론 정치인에게도 상당히 중요하다. 따라서 선거구를 어떻게 결정하느냐의 문제는 정치권의 핵심 논란이 된다.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정하는 것을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라 한다. 반대당이 강한 지구의 의원 수를 줄인다거나 자기당에 유리한 지역적 기반을 멋대로 결합시켜 당선을 획책하는 것을 말한다.

선거구를 정함에 있어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하면 선거의 공정을 기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런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선거구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법률로 정하도록 돼 있으며, 이러한 원칙을 선거구법정주의라고 한다. 게리맨더링이란 용어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였던 엘브리지 게리가 1812년 선거에서 자기 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정했는데 그 부자연스러운 형태가 샐러맨더(salamander·불속에 산다는 그리스 신화의 불도마뱀)와 비슷한 데서 유래했다. 게리맨더링은 불도마뱀과 주지사의 이름을 합성해 생긴 말이다. 당시 미국 공화당은 5만164표를 얻어 29명의 당선자를 낸 데 비해 야당은 5만1766표를 얻고도 11명의 당선자밖에 내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정수가 300명으로 늘어난 것도 ‘게리맨더링’을 놓고 여야 간 시각차 때문에 생긴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해당사자가 결정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정당에 독립적인 외부 인사들로 선거구획정위원회를 19대 국회 초기부터 구성해 기준을 정하고 선거구 획정 상태를 꼼꼼히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