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선거는 민주주의 ‘초석’
문명과 거리가 먼 원시시대 지도자의 핵심 자질은 '힘'이었다. 활쏘기, 말타기, 사냥 등은 힘의 핵심요소였다. 힘을 가진 자가 통솔력이라는 리더십까지 갖추면 자연스럽게 지도자로 추대됐다. 리더십이 없는 자가 힘에만 의지해 지도자가 되면 그 집단이나 사회엔 큰 재앙이었다.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보다 '힘'이라는 윈리가 지배하던 시대의 한계이자 아픔이었다.

선거의 역사는 2500여년 전 그리스가 출발점이다.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귀족회의에서‘아르곤’이라는 임기 1년의 집정관을 선출해 통치를 맡겼다. 투표권이 귀족에만 주어졌지만선거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다. 영국은 1215년대헌장으로 귀족들의 권리가 보장되면서 의회정치가 시작됐다. 하지만 당시 영국 의회는 시민들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소수 귀족층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 차티스트운동(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민중운동)과 여성의 선거권 요구 등으로수차례 선거법이 바뀌면서 1927년에야 남녀에게 동등한 선거권을 부여했다. 여성선거권은1893년 뉴질랜드에서 처음 인정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선거는 1948년 5·10 총선거다.길고 긴 지구촌의 역사 속에서 선거의 4대원칙(자유, 평등, 보통, 비밀)이 지켜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 안팎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초석이다. 다수결과 다양성의 원칙을 근간으로 사회나 국가가 민의(民意)에 의해 조직되고 운영되도록 하는 민주주의의 길잡이다. 또한 선거는 국가운영을 좀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만드는 시스템이다.따라서 선거는 자유, 평등, 보통, 비밀이라는 기본원칙이 철저히 존중되고 지켜져야 한다. 지난 4일 대통령 선거를 치른 러시아에 민주주의라는 수식어가 그리 어울리지 않는 것은 ‘자유선거’라는 원칙이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발판이지만 민주주의자체를 담보하지는 못한다. 페리클레스시대는 아테네 직접민주주의 전성기였다. 하지만상당수 그리스인들은 자유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지 않고 사적인 일에만 관심을 쏟았다. 이런 사람을 ‘이디오테(idiotes)’라고 불렀다. 오늘날 바보(idiot)란 뜻은 여기서 나왔다.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도 “다수가 내리는결정이 대체로 옳다고 전제하는 것이 민주주의지만 시민 대다수는 문제를 해결할 지식과지혜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유권자의 지혜롭고 냉철한 판단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꽃피운다는 얘기다.자유 평등 인권 법치 비폭력 등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정치인들의 ‘공약(空約)’을 꿰뚫어보는 혜안은 유권자의 몫이다. 4·11 총선은우리나라 민주주의 토대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주는 시험장이다. 4, 5면에서 우리나라선거제도의 변천사와 이익집단에 포위돼가는 민주주의 위기를 상세히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