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포퓰리즘에 무너진 나라들… 부도위기에도 "더 달라!"
아르헨티나 대통령궁 앞에서는 1년 내내 시위가 열린다. 피켓을 든 시위대는 도로를 점거한 채 임금인상, 생계지원금 증액 등을 정부가 해결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런 시위가 얼마나 많은지 ‘피케테로(piquetero)’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정부가 선심 쓰듯 이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다보니 국민들은 ‘떼를 쓰면 먹힌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60년 전 영국, 프랑스와 국민 소득이 비슷할 정도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국이었다. 하지만 포퓰리즘의 덫에 걸려 지금은 구걸로 연명하는 비참한 신세로 추락하고 말았다. 아르헨티나뿐만이 아니다. 그리스·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도 포퓰리즘에 빠져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다. 이들 국가는 과도한 사회복지와 강성 노조 득세, 이에 따른 성장동력 상실로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마저 빼앗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르헨티나, 부국에서 빈국으로

아르헨티나는 대학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는 몇 안되는 국가다. 국립 의료시설에서는 보험증이 없어도 누구나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복지제도의 뿌리는 ‘페로니즘’과 성녀 에비타로 유명한 후안 페론 전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0년대와 1970년대 집권했던 페론은 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복지 지출을 무분별하게 늘려 ‘포퓰리즘의 원조’로 불린다.

페론주의는 현재 아르헨티나를 이끌고 있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까지 이어지고 있다. 페르난데스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연금수령액을 70% 가까이 올렸다. 실업자 가정에는 매월 1100페소(31만원)의 자녀양육 수당을 주고 무주택 가정에는 700페소(20만원)의 집세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러한 분배 위주의 경제정책과 무분별한 복지지출이 계속되자 아르헨티나는 결국 빚더미에 올라 앉게 됐다. 정부예산으로 포퓰리즘 복지정책을 감당하지 못하자 아르헨티나는 외채를 끌어다 썼다. 그 결과 1970년 58억달러였던 외채가 2004년 28배인 1623억달러로 늘었다. 그런데도 복지정책은 계속 늘어나고 시위대의 요구는 끊이질 않는다.

연금의 함정 빠진 그리스

세계 4대 문명을 일궈낸 그리스는 최근 글로벌 경제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 IMF와 EU가 디폴트(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지만 여전히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1년 유로존에 가입한 그리스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고속성장을 이어갔다. 2004~2008년 연평균 성장률은 3.8%로 유럽에서 가장 높았다. 하지만 양대 정당이 정권을 잡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그리스는 연금천국이다. 근로자들은 60세 전에 은퇴해 퇴직 직전 5년간 월급의 80%를 연금으로 받는다. 임금 대비 연금액 비율은 평균 95%로 영국과 프랑스의 3배에 달한다. 2007년에는 연금으로 들어가는 돈이 150억유로를 넘어 EU가 지출을 줄이라고 권고했지만 정치인들은 해마다 더 많은 복지 혜택을 공약으로 걸었다. 그리스 정부는 매년 100억유로 이상을 의료복지 부문에 지출했다. 복지제도로 들어가는 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경제성장에 쓸 돈은 줄었다.

포퓰리즘의 망령이 나라 전체를 덮치자 경제성장률은 2010년 -4.5%로 급전직하했다. 부도 위기에 처한 그리스는 유럽 국가들에 손을 벌렸다. 하지만 구제금융 실사단이 그리스 민간기업의 최저임금 25% 축소와 보너스 삭감, 공무원 감원 등을 개혁안으로 내놓자 정치권이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그리스 최대 노동조합은 24시간 총파업에 돌입했다. 협상안을 거부하면 3월20일 만기인 145억유로의 부채를 갚지 못해 나라가 부도나는 데도 여전히 포퓰리즘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태국, 복지정책이 인플레 불러

한때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용’으로 꼽혔던 태국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태국의 에바페론’으로 불리는 잉락 칫나왓의 푸어타이당은 지난해 7월 최저임금 40% 이상 인상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압도적인 지지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칫나왓 정부는 초저가 임대주택 공급, 저소득자 신용카드 발급, 서민용 주택 건설 등 각종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냈다.공약을 실행하기 위해 정부는 막대한 빚을 질 수밖에 없고 시중에 풀린 돈은 물가를 밀어올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서민들은 당초 기대와 달리 쌀 등 생필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생활고만 심해졌다고 푸념을 늘어놓고 있다. 아르헨티나, 그리스, 태국 등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표와 인기에 눈이 먼 정치인들이 미래를 보지 못한 채 분배만 앞세운 공약을 내세웠고 이는 결국 국민 모두에 쓰디쓴 대가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올해 복지정책의 시험대에 오른 한국에 이들 국가의 몰락이 반면교사로 다가온다.

최만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bebop@hankyung.com


논술 포인트

아르헨티나, 그리스 등 포퓰리즘에 빠진 나라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아봅시다.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가 이들 국가들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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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출신 룰라, 시장경제 정책으로 성장·복지 다 잡아

[Cover Story] 포퓰리즘에 무너진 나라들… 부도위기에도 "더 달라!"
브라질 제1의 도시 상파울루는 2014년 월드컵 준비에 한창이다. 남미 경제의 심장답게 거리마다 자동차가 가득하고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상파울루는 새로운 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브라질의 역동성을 잘 보여준다.

브라질을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린 변화의 중심에는 2010년 말 퇴임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67· 사진)이 있다. 그가 후계자로 지명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나라를 이끌고 있지만 브라질 국민들은 여전히 룰라를 그리워한다. 룰라는 퇴임 직전까지 지지율 87%를 유지했다.

2003년 취임한 룰라 대통령은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포퓰리즘적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를 딛고 우파 정부의 시장 친화적인 정책들을 과감히 계승했다. 당시 많은 남미 국가에서 새로 집권한 좌파 정부가 포퓰리즘으로 치달았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인재 등용도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전임 정부의 고위 관료들을 등용함으로써 재계와 해외의 신뢰를 얻어냈다. 이와 함께 개혁정책을 통해 사회 양극화 해소에 나섰다. 그 결과 룰라 집권 직전인 2002년 2%대에 머물렀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7.5~8.0%까지 올랐다. 룰라 집권 8년 동안 연평균 GDP 증가율은 4%로, 이전 20년간 성장률의 두 배 수준에 달했다. 브라질의 고질적 문제였던 물가와 재정적자도 룰라 집권 기간에 해결됐다. 2000년대 초 연 12%에 달했던 물가상승률은 2010년 6% 이하로 떨어졌다. 룰라 집권 동안 1500만개의 새 일자리가 창출되고, 중산층 비율이 3600만명 늘어 그 비율이 42%에서 53%로 올라선 것도 성공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