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대학 유학생, 한국의 3분의 1
# 연애도 싫고, 결혼도 싫고… #"현재보다 미래가 더 걱정"

희망 잃은 일본의 젊은이
희망 잃은 일본의 젊은이
[Cover Story] 미래 체념한  '코쿤族' … "유학도 해외근무도  싫다"
2009년 니혼게이자이신문에 흥미로운 사진 두 장이 나란히 실렸다. 20년 사이 확연히 달라진 일본항공(JAL)의 입사식 모습이었다. 일본항공은 항공사답게 아리따운 스튜어디스들이 많아 연초 입사식 모습이 언론에 단골로 보도되는 기업이다. 1980년대 말에는 형형색색 화려했던 신입사원들의 복장이 2009년엔 스튜어디스조차 모두 어두운 단색으로 바뀐 것이다. 이 일화를 들려준 모리 지하루 요미우리신문 논설위원은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며 일본은 젊은 세대의 개성이 사라진 사회가 됐다고 진단했다. 지금 일본의 20대가 겪고 경험한 것이라고는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1년 9·11 테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대지진 등 혼란과 공포뿐이다. 젊은 세대가 누에고치(코쿤) 속에 안주하는 ‘코쿤족’이 돼가는 이유다.

일본의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보는 시각은 한마디로 실망과 우려 일색이다. 구보타 마사카즈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전무는 그런 심정을 잘 요약했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해외로 나가는 게 즐거웠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일본 안에서 만족하고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없다. 심지어 게이단렌 직원들조차 해외 근무를 권하면 인터넷으로 다 알 수 있으니 나갈 필요가 없다며 꺼린다.”

이런 코쿤족 현상은 유학 기피에서 두드러진다. 일본 대학생들은 보통 3학년 말부터 취업에 나서는데, 비싼 돈 들여 고생하며 유학해봐야 취업 기회만 놓친다는 것이다. 미국 국제교육연구소(IIE)의 2010년 통계를 보면 일본의 미국 대학 유학생 수는 2만1290명으로 전년보다 14.3% 줄어 세계 7위에 그쳤다. 반면 한국은 1.7% 늘어난 7만3351명으로 중국 인도에 이어 3위다.

일본 젊은 세대의 위축은 여성보다 남성에서 더 두드러진다. 혼자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와 온순하고 순응적인 ‘초식남’이 대세가 돼버렸다. 모든 젊은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직장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다. 게이단렌에 파견나온 김봉만 전경련 과장은 “직장인들이 ‘나홀로 점심’이 보통이고 연애나 결혼도 기피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가뜩이나 인구가 줄어 걱정인데 남성 미혼율이 30~34세 48%, 35~39세 31%에 달한다. 30대 전반은 둘 중 하나, 30대 후반은 셋 중 하나는 미혼이란 얘기다. 여성의 미혼율보다 15%포인트가량 높다. 저출산 문제도 한국보다 10여년 앞서 불거졌다. 이른바 1989년 ‘1·57 쇼크’ 이후 20여년간 온갖 수단을 동원했어도 합계출산율이 1.4명을 넘지 못한다. ‘1·57 쇼크’란 1989년 출산율이 1.57명으로 추락해 백말띠 해여서 출산을 기피했던 1966년(1.58명)보다도 낮아진 현상을 가리킨다. 다케이시 교수는 “사정이 더 심각한 지방자치단체들은 국적 불문하고 미혼 남녀들에게 선보는 자리를 마련해줄 정도”라고 귀띔했다. 한국은 합계출산율이 일본보다도 낮은 1.23명에 불과하다.

젊은이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은둔 현상은 일본의 미래 전망을 어둡게 만든다. 최근 일본에선 ‘중국화되는 일본’이란 책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이런 ‘히키코모리’의 뿌리가 봉건 에도시대에 있다는 게 요지다. 에도시대에는 300여개의 좁은 소국으로 분화돼 넓게 펼치지 못하고 축소 지향적이었다는 것이다. 나카지마 데쓰오 마이니치신문 논설위원은 “그동안 일본에선 혈통 중심으로 사람을 뽑아왔지만 이제는 시스템을 확 바꿔야 한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웃 일본의 추락은 강 건너 불 구경하듯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일본의 몰락은 한국에도 치명적인 쓰나미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국 간 교류와 교역 규모에 비춰볼 때 유럽 위기보다 충격이 훨씬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 구조에 비춰볼 때 지금의 일본은 10년 뒤 한국의 자화상이나 마찬가지다. 일본은 절대 따라가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反面敎師)이자 타산지석이다. 대지진 이후 갈수록 위축돼가는 일본에 대해 과거사를 떠나 좋든 싫든 ‘간바레, 닛폰(힘내라, 일본)’을 외쳐줘야 하는 상황이 돼가고 있다.

도쿄=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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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시스템 흔드는 고령화 … 연금은 시 ‘한폭탄’

일본은 지금 현역(15~64세) 3명이 고령자(65세 이상) 1명을 부양하지만, 두 살배기가 서른이 되는 2040년에는 현역 1.2명이 고령자 1명을 부양해야 한다.”(다케이시 에미코 호세이대 교수)
일본 복지시스템이 흔들리는 근본 원인이다. 고령화로 사회의 노년층 부양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반면, 인구가 줄고경제는 위축돼 미래는 더욱 암담하다. 가장 큰 문제가 연금이다. 일본 공적연금은의무가입이고, 그해 걷어 그해 지급하는부과방식이다. 한국 국민연금도 이 제도를 벤치마킹했다. 2004년 연금개혁 당시
‘100년은 안전하다’고 장담했던 공적연금이 10년도 안 돼 파탄 날 지경이 됐다. 고령층에 대한 과도한 혜택과 젊은층의 납부거부 때문이다.
연금 구조상 57세(1955년생) 이하는 납부액보다 수령액이 적어지는 역전현상이 발생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1985년생(27세)은 낸 돈보다 713만엔(1억700만원)을 덜 받게 된다. 65세가 돼 20년간 연금을 받을 경우 월 3만엔(45만원)씩 손해보는 셈이다. 실상이 이러니 연금납부율은 60% 안팎에 그친다. 국회의원
과 관료 중에도 미납자가 수두룩하다. 한국과 달리 연금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강제 구상권이 없는 탓이다. 특히 20대는 제대로 내는 사람이 4명 중 1명에 불과하다.‘단카이 세대(1947~49년생)’를 포함한 일본의 베이비부머(1947~51년생)는 1000만명을 넘는다.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65세가 돼 연금 및 노인의료 수급자가 된다. 통상 70대부터 의료비가 크게 느는데, 이들이 70세가 되는 5년 뒤부터 고령자의 의료비와 간병비 부담은 재정을 압박할 최대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