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망성쇠(興亡盛衰)는 역사의 진리다. 영원할 것 같던 로마제국도, 대영제국도 이 진리를 비켜가지는 못했다. 달러제국을 건설한 미국 역시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입지가 위축되는 징후가 감지된다. 번창할 때 더 멀리 보고, 더 깊게 보며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작지만 강한 나라 일본은 한때 세계가 부러워하는 벤치마킹 모델이었다. 세계는 일본의 급속한 경제발전을 부러움과 시기의 눈으로 바라봤다. 도요타, 소니, 닌텐도는 지구촌 구석구석을 파고들며 ‘주식회사 일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전도사였다. 소니는 전자제품의 상징이었고 ‘도요타 배우기’는 경영의 필수 코스였다. 일본인들의 부지런함과 검소함도 경제발전에 기여한 핵심 덕목으로 여겨졌다. 1970~1990년 일본 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10%에 육박했다. 장밋빛 경제전망에 취한 기업과 개인들은 증시와 부동산시장에 돈을 쏟아부었고, 결국 1980년대 후반 터무니없이 부풀었던 버블(거품)이 폭발했다. 내리막길의 서막이었다. 일본은 1990년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0.3%로 추락하며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 일본 쇠락의 시대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버블 붕괴가 ‘잃어버린 20년’의 전주곡이지만 ‘잃어버린 세월’이 무한 길어지는 것에는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저출산, 고령화로 국가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다. 고령화로 사회의 노년층 부양 부담이 늘어나면서 국가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표 얻기에 급급한 정치권은 재원 대책 없이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공약을 쏟아낸다. “내가 하면 민생복지, 네가 하면 포퓰리즘”이라며 서로 삿대질만 해댄다. 어쩌면 이는 한국의 자화상이다. 글로벌 시장을 누비며 지구촌에 일본의 위상을 떨쳤던 기업들도 존재감이 약해졌다. 소니, 파나소닉 등 간판 전자기업들은 지난해 수천억엔대 적자를 냈다. 설상가상으로 무역수지도 31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는 200%를 넘는다. 연일 뉴스를 타는 ‘위기의 국가’ 그리스보다도 높은 수치다. 세계가 보는 일본은 한마디로 ‘만성 중증환자’다. 병(경기 부진)이 깊고 치료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회복에 대한 의지보다는 ‘그냥 이대로 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오늘의 번영이 결코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 정치권의 포퓰리즘은 국가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준다는 것, 쇠락의 시대가 오래 가면 비전 자체가 희미해진다는 것…. 이웃나라 일본의 추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들이다. 4, 5면에선 최근 심층취재를 위해 직접 일본을 다녀온 오형규 논설위원이 쇠락한 일본의 현상과 원인 등을 상세히 들려준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