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선거때면 확산되는 反기업 정서… 재계, 시름에 빠지다
여야가 대기업 개혁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양상이다. 강성 지도부가 등장한 민주통합당이 먼저 현 정부 들어 폐지된 기업의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부활을 공약으로 제시하며 포문을 열자 한나라당도 가세하는 모양새다. 여야 모두 반기업 정서를 표로 연결시키기 위한 정책 발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기업도 새로운 시대에 맞춰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선거철마다 표를 얻기 위한 의도성을 갖고 정치권이 재계를 압박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든다는 지적도 많다.

#출자총액제한제 부활하나

[Focus] 선거때면 확산되는 反기업 정서… 재계, 시름에 빠지다
한명숙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대기업의 독식이 사회 양극화를 부추겼다며 이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현 정권 들어 폐지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상위 10대 대기업에 한해 부활시키는 한편, 일감 몰아주기 근절 등 공정거래법을 강화하고 중소기업 고유 업종 지정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은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순자산액의 일정비율을 초과해 국내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한 제도이다. 박영선 최고위원은 최근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재벌을 못 살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재벌에 대한 특혜로 중소기업, 영세상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빵 두부 콩나물 등 모든 걸 재벌의 손자 손녀들이 다 회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막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작년에 꾸민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를 통해 대기업 정책을 적극적으로 제시한다는 방침이다.

한나라당도 출총제를 어느 정도는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라는 취지에서 폐지한 출총제가 대주주들의 사익을 위해 남용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게 출총제 부활로 비쳐지자 당일 오후 본회의 전 기자들에게 “출총제를 부활하는 건 아니고 문제가 있으니 보완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앞서 “일방적으로 한 집단을 죄인으로 매도하고 편을 가르는 것엔 반대하며, 문제가 있다면 고쳐나가는 게 맞다”며 민주당의 재벌관에는 선을 그었다. 한나라당은 출총제 부활 대신 공정거래법 강화나 국민연금의 주권 행사 등을 통한 해법에 무게를 싣고 있다.

#포퓰리즘 흐를 가능성 높아


여야는 지금까지 카드 수수료율 인하(여야 공통)와 전·월세 이자율 절반 보전(한나라당), 부가가치세 간이과세 기준을 연 매출 4800만원에서 8000만원 이하로 상향 조정(민주당) 등 기업과 시장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의 실효성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카드사들이 손익 분기점을 넘으려면 평균 1.8%의 수수료는 받아야 한다”며 “1.5%로 일괄 적용하면 적자가 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월세 이자율을 절반으로 낮추려면 주택금융공사가 20조원가량 보증을 서야 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자율은 대출자의 신용도 등 리스크 요인이 고려돼 책정된다”며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주택금융공사가 모두 메워줘야 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모럴해저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한나라당은 이를 발표하기 전에 정부로부터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들었지만 무시하고 발표했다. 이제까지 나온 건 예고편에 불과하다. 한나라당은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방지 △하도급제도 전면 혁신 △프랜차이즈 불공정 근절 △덤핑 입찰 방지 △연기금의 주주권 실질화 등의 방안도 의제로 올렸다. ‘성과공유제’ 도입도 검토 대상이다. 민주당은 무상시리즈를 확대할 예정이다.

#초긴장하는 재계

재계는 깊은 시름에 빠졌다. 4월 총선, 12월 대선을 앞두고 재벌 개혁의 목소리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어서다. 야당은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과 법인세 인상 등을 내걸며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위원장은 출총제 보완을 시사하면서 “대주주가 사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총선에서 여야 어느 쪽이 이기더라도 칼날은 피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재계에 팽배해 있다. 한 대기업 동반성장담당 임원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기득권을 어느 정도 내놓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어느 선까지 양보해야 하는지 답답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들이 안방에서 손쉬운 돈벌이에 치중하지 말고 본업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해외시장에서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싸워 우리 경제영토를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고 경기불황기를 맞아 일자리 창출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며 “재벌 개혁 정책이 기업가 의욕을 떨어뜨려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재후/허란 한국경제신문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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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총제 시비, 투자·일자리 도움될지 검토해야"

재계를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이승철 전무(사진)는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논의 등에 대해 “투자에 도움이 되는지 제대로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포퓰리즘적 요소는 없는지 철저히 따져본 후에 정책화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 강도 높은 대기업 개혁 방안이 쏟아져 나오는데.

“대기업에 비판적인 정책이 많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아이디어 차원에서 각종 대책을 내세우는 것은 곤란하다.”

대응하지 않다가 실기하는 건 아닌가.

“출총제 등은 법제화할 수 없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출총제를 한다는 것은 기업들의 해외 투자를 장려하는 것이다. 해외 투자엔 출총제 제한이 없지 않은가. 옛날 폐쇄경제시대도 아니고, 우리 맘대로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렇다면 재계의 대응책은 없나.

“지금 대응책을 내기는 이르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없고 아이디어 차원이다. 과거 제도를 그대로 부활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수정해서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출총제 등이 법제화된다면.

“어떤 정책이든지 그것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고 서민생활에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기준을 갖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 출총제도 구체적인 안이 나오면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의 관점에서 검토하고 의견을 낼 것이다.”

김현석 한국경제신문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