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참여해야 'SNS 왜곡' 막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주에도 빛과 어둠이 있는데 인류가 만든 제도에 밝음과 어둠이 없을 수 없다는 점에서 논란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게 마련이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인간이 문제를 만들었다면 해결책도 인간이 가지고 있다고 했다. 결국 밝음은 계속 이어가고 어둠은 줄일 수 있다는 얘기가 성립되지 않을까.

SNS가 가진 순기능은 정보의 공유와 권력의 분산, 참여민주주의 확대라고 요약할 수 있다. 요즘 활짝 꽃을 피운 트위터와 페이스북, 카카오톡은 과거 특정 세력에 의해 독점됐던 정보를 빛의 속도로 불특정 다수들에게 전파되도록 했다.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첫 총성을 가장 빨리, 가장 정확하게 전한 매체는 기존 언론매체가 아니라 트위터로 대변되는 SNS였다. 아랍의 민주화 과정에서 벌어진 유혈사태는 거의 같은 시간대에 지구촌으로 전해졌고 세계는 독재자와 싸우는 아랍시민들에게 응원을 보냈다. 자연재해 같은 위기상황도 생방송으로 세계 SNS 시민들에게 전해줘 구호물자를 보내게 했다. 지금 우리는 방에 앉아서, 혹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이라크 바그다드, 중국 베이징, 브라질 상파울루, 심지어 남극 상황을 알 수 있게 됐다. 이것은 순전히 기술발전에 따른 혜택이다.

권력 분산은 SNS가 기존 권력자들에게 미치는 가장 위협적인 요소일지도 모른다. 과거 권력은 특정 세력과 집단에 집중됐다. 정치권력은 집권세력과 정치인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SNS는 개인이 권력견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SNS 시민들은 특정 정당의 당 대표 선거에 모바일 선거인단으로 대거 참여, 정당권력의 향방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요즘 정당들은 예외없이 SNS 선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참여민주주의가 스마트폰의 마법 때문에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십만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트위터들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여론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다.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은 과거에 볼 수 없던 속도로 재빨리 견제되고, 심지어 휴지가 되기도 한다. 아랍의 봄 같은 시민봉기도 SNS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SNS로 인해 발생한 문제점도 적지 않다. SNS 이용자들 중 40대 이상의 인구가 적다는 점에서 자칫 여론이 20~30대 위주로 형성될 우려가 크다. 특히 10대들은 균형잡힌 시각보다 편향된 정보에 노출될 수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서 나돈 ‘치질수술 900만원 비용설’ 이 대표적인 것이다. 트위터는 1%의 극소수만이 적극적으로 팔로잉해 여론을 호도한다는 지적도 그중 하나다. 트위터에 문외한인 40대 이상 어른들의 균형잡힌 의견이 더해져야 참다운 SNS 문화가 꽃 필 것이라는 생각이다.

SNS 시대는 이제 대세다. 참여자들은 모두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활동해야 한다. 권력자들은 시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무엇보다 40대 이상의 어른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SNS를 배워야 한다. “요즘 시대의 문맹은 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SNS를 모르는 것”이라는 점과 “요즘 시대의 예절은 SNS 예절”이라는 점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학생들은 학교에서,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SNS 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원진 생글기자(자운고 2년)wonjin949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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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

‘학교 폭력으로 인한 중고등학생의 연이은 자살, 금품 갈취, 협박 등….’

최근 우리나라는 학교폭력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물론 학교 폭력이 예전에도 사회의 주요 이슈가 된 적이 있었지만 지금 만큼 논란이 거세지는 않았다. 예전보다 학교 폭력은 더 교묘해졌으며 흉악해지고 있다. 현재 학교 폭력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 것은 그만큼 심각하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학교 폭력의 심각성은 겉으로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롯되는데, 대부분의 학교 폭력은 일이 커지고 나서야 확인된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학교 폭력이 발견된 이후에도 즉각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않아 피해 학생들에게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힌다는 것이다. 학교 폭력으로 생겨난 정신적 상처는 학생들의 꿈을 시들게 하고 삶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파괴하며 개인의 인생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또한 학교 폭력은 피해자에게만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사회의 축소판이라 일컬어지는 학교에 폭력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머지않아 현재의 사회가 폭력성을 가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들이 아무런 조치 없이 그대로 사회에 들어설 경우 사회는 질서를 유지하는 본연의 기능을 잃고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 받지 못하는 약육강식의 정글로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실존적인 삶을 파괴하고 사회의 후생 손실을 발생시키는 학교 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은 마련되지 않았지만, 학교 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 폭력 문제에 대한 학생, 학부모, 교사를 포함한 사회 전체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이 모인다면 학교 폭력은 근절될 수 있다. 학생들은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적극적으로 교내 폭력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참여해야 하며 학부모들은 자녀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선생님들은 반 전체에 화합의 가치관을 심어주어야 하며 학생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중재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정부 역시 개인의 변화와 더불어 학교 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알맞은 제도를 만듦과 동시에 학생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캠페인도 마련해야 한다.

사회의 지식과 과학 기술은 나날이 개선되고 발전하지만 안타깝게도 학교 폭력에 대한 의식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의식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학교 폭력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만일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원한다면 학교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학교 폭력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학교와 사회가 상호작용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준형 생글기자(대전외고 2년) showw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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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는 대한민국 교육의 하향 평준화

며칠 전 모 걸그룹의 멤버가 방송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언급하여 네티즌으로부터 개념돌이라고 칭찬받았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내용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어 중학교를 나왔다면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하는데 마치 혼자만 대단한 것을 알고 있는 양 칭찬을 받은 것이다. 비싼 세금 내고 학교 다니는데 여전히 밥 먹으러 학교 가는 학생들이 넘치는 모양이다.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동안 학교에서는 경제, 정치, 지리 등 일반적인 사회 상식과 더불어 여러 이슈를 담은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도덕 교과서를 통해 사람된 도리에 대해서도 꾸준히, 상세하게 가르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웬만한 시사 이슈에 대해 한두 마디 이상하고,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의 사정은 그렇지가 않다.

문제는 교육 실태다.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수업만 받다 보니 틀에 박힌 교과서적 사고만 하는 것이다. 높은 성적으로 좋은 학교에 다니는데도 문제해결 능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학업 성취도는 최상위권인 데 비해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은 최하위로 지식만 있고 지혜는 없음이 전 세계에 드러났다.

참여도가 낮은 수업, 학생들의 수동적인 자세 외에도 상황은 심각하다. 학교생활 지도가 어렵고 보람이 없어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교사가 늘고 있다. 때가 되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퇴직의 이유가 ‘보람 없어’인 것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은 무지하고 모자라서 학교에 다닌다. 8세에 이미 친구와 싸우면 안 되고, 장애인은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하며, 부모님께 효도해야 하는 등의 인간적 소양을 갖추었다면 학교에 나갈 필요가 없다. 아이들을 다루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교사에게 의지가 없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달라지겠나.

학교 폭력을 추방하자는 의미에서 ‘멈춰’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이미 틀어져 버린 아이들은 단순히 멈추라는 말 한마디로 되돌릴 수는 없다. 좀 더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학교는 교육 체계를 개선하여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차원의 수업을 해야 하며, 교사는 열정과 끈기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무엇보다 학부모가 ‘설마, 내 아이가…’가 아니라 ‘내 아이부터’ 라는 사고방식을 갖추어야 한다. 지금 고치지 못하면 10, 20년 후에도 우리 국민은 여전히 부패에 찌든 사회에 허덕일 것이다.

제갈현 생글기자(이화여자외고 1년) gus0gy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