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이민자는 가라" … 시험대 오른 유럽 다문화주의
“다문화와 이슬람에 대한 증오범죄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다문화주의에 분노를 폭발시킨 분명한 경고음이다.” 지난 7월 평화로움의 상징이던 노르웨이에서 극우인종주의자에 의해 저질러진 참극은 유럽 다문화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국가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유럽에는 한마디로 ‘이민자는 가라’는 정서가 팽배해 있다. 더불어 살자는 관용의 미덕이 경제난으로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의 아우성이 높아지면서 이주민에 대한 분노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 '다문화주의 실패' 공식인정

식민시대에 제국을 경영한 유럽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주로 옛 식민 국가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였다. 영국은 1950년대부터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프랑스는 알제리 튀니지에서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 1970년대 초 경기 침체에 따른 이민억제책으로 잠시 주춤하다 1980년대 들어 출산율이 급감하면서 다시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폈다. 현재 영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이민자는 440만명 정도로 영국 인구의 7%를 차지한다. 식민지를 갖지 않았던 북유럽 국가들은 2000년대 들어 급증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소말리아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식민지 종주국들은 자국 내 노동력 확보을 위한 목적이 강했으나 북유럽 국가들은 주로 인도주의 차원에서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이민을 받아들인 동기는 다르지만 유럽 이민자들은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유럽식 다문화정책은 한마디로 기독교가 이슬람을 껴안는 식인 셈이다. 나라별로 차이는 있지만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적극적인 복지정책 확대로 무슬림을 보듬었고 예산을 투입해서까지 언어를 가르쳐주고 일자리도 만들어줬다. 프랑스와 독일은 상대적으로 이민자들이 본국의 문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동화정책에 초점을 맞췄지만 포용하려는 의지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경제가 침체되면서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어지자 극우주의자들의 주도로 반이슬람 기운이 확산되는 추세이다. 무슬림에 대한 테러가 속출하더니 드디어 유럽 국각들은 더 이상 이민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다문화 실패를 공식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해 말 “함께 어울려 공존하자는 접근법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선언한 데 이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이민정책의 실패를 공식 인정했다. 난민 수용, 일자리 제공 등 인도주의를 외치던 유럽 국가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자 ‘거지들이 몰려왔다’는 식의 극우주의자들 목소리가 커지면서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네덜란드 출신 유럽의회 의원 에미네 보즈쿠르트는 “유럽 역사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앞으로 이슬람에 대한 증오로 우리 사회에서 이민자들과의 갈등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외국인 혐오가 정치판도 바꿔

무슬림 이민자에 대한 증오는 다문화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7년 덴마크 총선에서 다문화를 반대하는 극우 인민당이 13.9%를 득표한 데 이어 지난해 9월 스웨덴 총선에선 극우 정당이 처음으로 원내에 진입했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도 극우 정당이 전례없는 약진을 보였다. 2001년 미국의 9·11테러 사건은 잠재돼 있던 이슬람에 대한 백인들의 공포와 혐오를 분출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슬람이 기독교와 서구문명을 파괴하려 한다는 불안감이 급속히 확산됐고 이후 정치권은 이런 정서를 자극해 표를 얻었다. 프랑스와 벨기에는 공공장소에서 무슬림 여성들의 니캅과 부르카 착용을 금지시켰다. 스위스는 2009년 11월 국민투표로 이슬람 사원(모스크)의 상징적 건축물인 미나레트(첨탑) 건설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유럽의 우익세력이 이슬람권에 대한 증오세력을 부추겨 테러리스트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싱크탱크인 데모스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제도권 정치의 변두리에 머물렀던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이 유럽 정치지도에서 무시하지 못할 정당으로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유럽 주요 정상들이 다문화주의 실패를 선언한 것은 무슬림 이민자를 더 이상 받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극우 세력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유럽에서 다문화 정책이 실패한 것은 무엇보다 경제난이 큰 원인이다. 경제난으로 일자리가 줄고, 재정난으로 복지가 축소되면서 유럽인들에게 이슬람 이민자들은 보듬어야 할 동반자가 아니라 밥줄을 놓고 싸우는 경쟁자가 된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의 여유가 없어지고 관용이 사라져 결국 사회 갈등으로 표출되는 사례는 역사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도 그런 사례에 속한다.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 패배와 대공황 충격으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국민의 불만을 유대인으로 돌렸다. 당시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돈가방을 들고 가야 할 정도로 높은 물가상승률에 천문학적인 전쟁배상금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히틀러는 유대인을 불만 표출의 대상으로 지목해 정치적 입지를 굳혔던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인종 범죄도 따지고 보면 경제 문제가 뿌리에 깔려 있다. 곳간이 차야 관용이란 미덕이 나온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의 진리인 셈이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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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만,일본 등 '이중 언어' 교육 실시

다문화 성공의 열쇠는 '언어'

[Cover Story] "이민자는 가라" … 시험대 오른 유럽 다문화주의
언어는 다문화사회 정착의 핵심이다. 행복한 다문화사회는 언어 갈등이 없어야 가능하다. 대만은 결혼이민자가 많은 대표적 국가다. 대만에서 2009년 결혼한 신부 중 15%는 외국인이다. 대만에선 국제결혼이민자를 ‘신주민’이라고 부른다. 법률상으론 ‘신이민’으로 지칭한다. 신주민 자녀가 급증하면서 대만 정부는 2009년 ‘신이민 자녀교육 개선방안’을 마련해 지난해부터 이중언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학교마다 정식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주 2회 베트남 태국 필리핀어를 가르치고 있다. 2개 국어를 함으로써 또 하나의 자산을 갖게 되고 결과적으로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일본도 ‘모어교육’이라는 이중언어 교육을 하고 있다. 일본은 1980년대 이후 세계 각국에서 이주민이 몰려들면서 현재 외국인 등록자 수가 230여만명으로 일본 총 인구의 1.8% 수준이다. 국적 수는 190개국에 달한다. 이들을 뉴커머(new comer)라고 부른다. 2006년부터 뉴커머 외국인 아동에 대한 모어교육 지원사업을 펴고 있다. 모어교육은 국제학급 국제교실과 순회지도 형태로 실시된다. 가정커뮤니케이션의 회복, 제2언어인 일본어의 원활한 습득, 학습 능력 향상 등이 목적이다.

미국은 초기에 이민 온 소수민족들에 영어를 가르쳐 언어 통일을 꾀하려 했으나 실패한 이후 1968년부터 이중언어 정책을 추진했다. 1984년 긴급이민아동교육법(2008년 중단), 2001년 학생낙오방지법 등을 채택해 이민아동들이 보충적 교육서비스를 받도록 하고 있다. 유럽도 이주 학생들의 교육 성과를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언어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대만·일본 등 ‘이중 언어’ 교육 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