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한국 성공 경험 배우자"… 개도국  '우상' 으로
“고기를 주는 것보다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게 낫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지난달 30일 부산에서 열린 세계개발원조총회 연설에서 탈무드의 한 구절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 단순히 자금을 지원하는 데서 벗어나 기술과 경험을 제공해 자립 기반을 마련해주자는 메시지였다. 블레어가 강조한 ‘고기 잡는 법’은 사실 한국이 롤 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해외 원조를 받던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해 이제 원조국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원조국가협의회에 가입한 우리나라는 경제개발의 노하우를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 각국에 전달하고 있다.

우리의 대표적인 해외 원조 프로그램은 ‘새마을 운동’이다. 경기도 성남에 소재한 새마을 운동 중앙본부에는 요즘도 세계 각국에서 온 연수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새마을 운동을 배우고 간 각국 사회운동가는 84개국 5만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고국의 농촌에 적용해 꽃피우고 있다.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작은 마을 키부야는 그런 마을 중 한 곳이다. 콩고는 1인당 국민소득(GNP)이 163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로 인구 25%가 하루 1.25달러도 못 되는 돈으로 생활한다. 그러나 주민 400여명이 모여 사는 키부야 마을의 GNP는 600달러나 된다. 비결은 새마을 운동. 2004년 한국에서 새마을 운동을 배운 은쿠무 박사는 고향 마을을 부촌으로 탈바꿈시켰다. 주민들은 새로운 품종의 가축을 키우고 공동 구판장을 만들어 운영했다. 또 벽돌을 찍어 집을 새로 짓고 마을길을 넓혔다. 정부는 키부야 마을 외에 라오스 르완다 몽골 등 아프리카·아시아 각국에서 새마을 운동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새마을 운동이 개발도상국의 발전 모델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은 메콩강 지역에서만 쌀 수출량의 80%를 생산한다. 하지만 남북을 잇는 도로는 고속도로 하나뿐이다. 다리가 있으면 자동차로 5분이면 건널 거리를 3시간 넘게 우회해야 한다.

베트남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2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자금 조달이 문제였다. 이에 한국은 베트남에 2억달러의 차관을 이자율 연 0.05%의 낮은 금리로 제공하기로 했다. 2억달러는 우리나라 대외 원조 사상 최대 규모다.

한국은 정보통신·환경보호·노동인력관리 등의 개발 경험도 베트남에 전수하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지난 9월 베트남 정부의 요청에 따라 워크숍을 열고 양국 전문가 27명이 1년2개월간 진행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베트남은 경제사회개발 10개년 개발전략을 수립하고 있는데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참고해 세부계획을 세울 계획이다.

원조를 받는 국가가 자생력을 갖추려면 원조 국가가 기술을 철저히 제공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개발원조를 하면서 현지 기술자들이 기술을 완전히 익힐 때 까지 지도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미얀마에 아동병원을 건설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 병원 의사들을 한국에 초청해 선진 의료기술을 전파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1950년대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미국 미네소타대가 주도한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통해 선진 의료기술을 접한 것이 현재 한국 의료의 기틀이 됐다”며 “한국도 같은 형태로 개도국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술 지원은 모든 분야에서도 필요하다

경남 함안군은 지난 7월 자매결연한 몽골 울란바토르시 항올구의 농업전문가들을 초청해 우리의 시설원예기술을 가르쳤다. 연수생들은 엽채류 고추 오이 등 시설원예작물을 재배하는 기술을 배웠다. 몽골은 농산물의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이번에 배운 원예작물 기술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개발원조총회에서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은 “한국을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고 소감을 밝혔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뀐 한국이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들에는 희망이자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라는 의미다. 세계개발원조총회는 반세기 만에 원조하는 국가로 변신한 한국의 높아진 위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코리아의 브랜드 가치가 그만큼 올라간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원조는 단순한 자선행위가 아니라 현명한 투자”라고 강조한다. 경제개발 성공 경험을 개도국들과 함께 나누며 한국은 국제사회의 리더로 나서고 있다.

최만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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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첫 원조 받고 2009년 원조하는 나라로…

[Cover Story] "한국 성공 경험 배우자"… 개도국  '우상' 으로
해방 후 절대빈국이었던 한국은 선진국들의 원조를 마중물 삼아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경제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1969년 우리나라는 국제사회로부터 800억원 정도 규모의 지원을 받았다. 당시 정부 예산(3000억원)의 3분의 1에 가까운 금액이 선진국의 공적 개발원조(ODA)였다. 1945년 해방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원조금액은 모두 127억달러에 이른다. 한국이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공식적으로 자리바꿈하는 데는 14년이 걸렸다. 한국은 1995년 세계은행의 원조대상국에서 빠졌다. 이어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고 2009년 DAC의 신규 회원국이 됐다.

지난해까지 한국이 원조한 금액은 77억3400만달러로 추정된다. 연도별로 한국의 ODA 규모는 2006년 4억5000만달러, 2007년 7억달러, 2008년 8억달러, 2009년 8억2000만달러, 2010년 11억7000만달러로 꾸준한 증가세다. 하지만 국민순소득(GNI) 비율은 아직 0.12%로 DAC 회원국의 평균 0.31%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정부는 이 비율을 2015년까지 0.25%로 늘린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