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길을 잃다
“월가 점령 시위는 미국과 자본주의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맥락에서 봐야 한다. 마르크스의 주장대로 언젠가는 혁명이나 어떠한 방법을 통해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갈 수도 있다.” 한 청년이 운영하는 인터넷 블로그에 올려져 있는 글이다. 이 청년은 상의를 벗고 선탠을 하는 사진을 올려 놓고 태연스럽게 공산주의 혁명을 얘기하고 있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글로벌 경제위기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조차 흔들고 있다. 인터넷에는 이런 류의 블로그와 글들이 넘쳐난다. 자본주의는 1%의 부자가 99%의 가난한 이들을 수탈하는 구조이며, 이 같은 불평등한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폭력도 정당화한다.

무엇이 위기를 극복하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인가? 금융자본을 해체하고,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며, 정부가 시장에 깊숙이 개입해 세금을 두 배, 세 배 더 거둬 복지에 지출하는 게 잘 사는 길인가?

지금으로부터 80여년 전에도 요즘과 똑같은 논쟁이 벌어졌다. 월가가 무너진 당시 대형 금융회사들은 경제위기를 야기한 주범으로 거센 공격을 받았다. 반(反)기업 정서가 만연했고, 불완전한 시장에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 결과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금융회사의 업무 영역을 제한한 글래스-스티걸법이 탄생했다. 교역상품에 60%의 고율 관세를 물린 스무트-홀리법도 제정됐다. 하지만 “네 이웃을 가난하게 만들지언정 나부터 살고 보자”는 보호무역주의는 세계 무역을 급감시킴으로써 오히려 위기를 증폭시켰다. ‘데자뷔’라고 해도 좋을 만큼 현재의 상황도 그때와 비슷하다. 시장경제는 잔인하고 이기적이며, 부자들은 타인을 희생시켜 더 부유해지고, 자유무역과 세계화는 다른 나라의 경제를 파탄낸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경제위기로 사회에서 중산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얇아지면서 소수의 극단주의자(radical)들이 세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 보면 자본주의 덕분에 우리는 100년 전보다 ‘극적’이라고 표현해야 할 만큼 수준 높은 생활을 누리고 있다. 경제학자인 스티븐 무어와 경영학 교수인 줄리안 사이먼에 따르면 20세기 초 이후 기대수명은 대폭 늘어나고 농업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서민들의 소비재 구매력이 크게 높아지고 환경오염은 대폭 줄었다. 자본주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를 가져다줬을 뿐 아니라 독재자들을 억압하고 민주주의와 평화를 증진하는 데도 기여했다. 무어 교수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조차도 한 세기 전 록펠러 일가에서도 불가능했던 풍요로운 선택권을 누리고 산다”고 말한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과연 실패한 제도인가? 신자유주의는 탐욕과 소득 불평등을 부추기는 독약일 뿐인가? 미국 경제잡지인 포브스를 발행하는 스티브 포브스 회장은 “우리는 지금 시장경제의 수혜자가 자본주의를 매도하는 역설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한다. 4,5면에서 시장경제에 쏟아지는 비판과 오해, 그리고 기로에 선 민주주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길을 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