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장 동력 얻어
#GDP 10년간 5.6% 증가

#안보+경제의 포괄적 동맹
한·미 FTA 국회 비준
한·미 FTA 국회 비준

[Cover Story] 세계경제 영토 60% 선점… 경제대국 길 열었다
1853년 미국 페리제독 함대가 일본에 나타났다. 함포를 쏘며 개항을 요구하는 구로후네(黑船)를 찬탄의 눈으로 바라보는 젊은 사무라이가 있었다. “저 배에 타보고 싶어. 고작 네 척의 군함으로 일본 전체를 떨게 만들다니.”

일본 근대화의 영웅 사카모토 료마의 일대기를 다룬 NHK 대하드라마 《료마전》의 한 장면이다. 료마는 개항을 반대하는 막부 세력에 암살됐지만 조슈번과 사쓰마번의 동맹을 중재하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메이지유신의 기틀을 놓았다. 일본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개항을 택했기 때문이다. 반면 쇄국을 고수했던 한국은 일본에 뒤처졌고 이후 고난의 역사를 겪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150년이 흐른 지금 한·일 양국은 각각 FTA와 TPP라는 두 번째 개항을 요구받았다. 이번에도 ‘매국노’니 ‘망국론’이니 반대세력이 들끓었지만 한국은 일본보다 빨리 움직였다. 한·미 FTA가 22일 국회에서 비준됨에 따라 한국은 세계 1·2위 경제권역인 유럽연합(EU)·미국과 동시에 관세 없이 교역하게 됐다. 세계경제 규모의 60%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반면 일본은 자유롭게 통상할 수 있는 지역이 17%에 불과하다. 다급해진 일본은 비상 의원 총회를 소집하는 등 사실상 미·일 FTA로 불리는 TPP 협상에 팔을 걷어붙였다. 한국은 150년 만에 일본에 앞설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잡은 것이다.

#신성장 동력 얻어

FTA는 기본적으로 양국 간 관세장벽을 없애고 투자를 자유롭게 하는 경제협력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칠레, EU 등 44개국과 7건의 FTA를 발효시켰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FTA의 필요성을 제시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인용된 비유는 “토끼는 한 평의 풀밭으로 만족하겠지만 사자는 넓은 초원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경제는 지금 넓은 들판으로 나가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EU·미국·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까지 세 곳과 FTA를 체결한 곳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멕시코·칠레 등 11개국이 우리나라보다 먼저 EU·미국과 동시에 FTA를 맺었지만 대부분 산업 기반이 약하다. 전문가들은 FTA 선점 효과가 선진국 문턱에서 성장 동력이 정체되고 유럽 재정 위기로 둔화 조짐을 보이는 우리 경제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경제단체들은 일제히 환영 성명을 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국회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며 “우리 기업들은 한·미 FTA가 일자리 창출과 서민 생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의 수출경쟁력 강화, 청년 일자리 창출, 물가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GDP 10년간 5.6% 증가

한·미 FTA의 가장 큰 효과는 공산품 관세 철폐다. 양국은 협정 발효 후 10년에 걸쳐 거의 모든 공산품에 대한 관세를 단계적으로 없애게 된다. 관세가 낮아지면 한국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추가로 생긴다. 자동차부품은 FTA 발효의 최대 수혜업종으로 꼽힌다. FTA 발효 4년 뒤부터 관세가 철폐되는 완성차와 달리 차부품은 2.5~10%의 관세가 즉시 없어져 내년부터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 자동차 메이커들의 한국산 부품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일본과 중국산 제품을 대체하는 효과가 클 것이라는 관측이다. 섬유와 의류, 전기·전자, 일반기계, 신발, 사무용 기기 등의 업종도 유망품목으로 분석됐다.

국내 소비자들의 선택권도 다양해진다. 관세 철폐에 따른 가격 하락과 소비자 선택폭 확대 등에 따라 단기적으로 5억3000만달러, 장기적으로는 321억9000만달러의 소비자 이익이 생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지난 7월 한·EU FTA 효과로 수입차 업계는 자동차 가격을 차종에 따라 최대 1000만원까지 내렸다. 전문가들은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직접투자도 앞으로 10년간 연평균 23억~32억달러가 추가 유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들은 한·미 FTA 경제효과로 향후 15년간 연평균 무역흑자가 27억7000만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했다. 노동연구원은 고용도 35만명 증가할 것으로 봤다.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앞으로 10년간 최대 5.66%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보+경제의 포괄적 동맹

한·미 양국이 FTA를 적극 추진한 배경에는 정치·안보상 협력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10월 국회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미 FTA는 경제 차원을 넘어 외교와 안보 차원에서도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불안정한 동북아 외교 안보 지형에서 중국 일본 러시아를 견제하는 방편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앞으로 한·미 동맹은 안보+경제의 포괄동맹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FTA의 핵심 키워드는 개방과 경쟁이다. 자원이 없는 한국에 개방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1970년대 이후 한국은 개방으로 산업 경쟁력을 키워왔다. 빗장을 열 때마다 “개방하면 죽는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한국은 경쟁에서 승리했고 세계 9위의 무역대국으로 거듭났다. 전문가들은 제조업과 정보기술(IT) 분야의 경쟁력을 충분히 활용한다면 이번에도 긍정적 효과가 훨씬 클 것으로 전망한다. 그럼에도 한·미 FTA 발효 이후 정치 선진화, 산업 구조개혁, 제도 선진화 등에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한·미 FTA가 경제교과서를 바꿀 만큼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만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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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 盧정권 2007년 합의… 4년 7개월 만에 통과

한·미 FTA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1월 신년연설에서 “개방과 경쟁을 통해 세계 일류로 가겠다”며 협상 의지를 천명한 후부터 시작됐다. 이어 2월에는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의회에 출석해 본격적인 협상 출범을 선언했다. 양국은 이후 총 여덟 차례의 공식 협상을 통해 2007년 4월 초 합의에 이르렀다.

그러나 양국 의회 비준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미국 민주당 인사들은 공화당 소속인 부시 행정부가 합의해준 한·미 FTA에 대해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를 들어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초 한·미 FTA에 별다른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 정책순위로 부상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6월 캐나다에서 열린 토론토 한·미 정상회담에서 처음으로 한·미 FTA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밝혔다. 백악관 내에서는 한·미 FTA를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기류가 확산됐다. 미국은 자동차 분야 등에서 추가 협상을 원했고 한국은 이에 응했다. 추가 협상이 지난해 12월 타결되자 오바마 행정부는 본격적인 비준 절차에 돌입했다. 미국 상·하원은 지난 10월 마침내 한·미 FTA 이행법안을 가결한다. 공이 한국으로 넘어오자 이번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 발목을 잡았다. 이 대통령이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재협상을 약속했음에도 야당 측은 물러서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22일 기습적인 본회의 단독 표결 처리에 성공함으로써 2007년 협상 타결 이후 4년7개월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